목사님 칼럼

광음여류(光陰如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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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nuary 1, 2011

今方(금방) 이 창가에 차 한 잔을 들고 앉자 지는 해를 애달파 한 듯한데, 하얀 눈 싸인 그 창가에서 그 찻잔을 들고 또다시 한 해를 보내며, 애달파 물과 같이, 바람과 같이, 광음과 같이 빠르게 흐르는 세월이 야속해 잡아 세워보지만 마치 광풍처럼 밀려나간 가슴속 빈자리는 그냥 빈 그대로 흐르는 세월 속에 묻히고, 지나던 사슴이 창 너머에 멈춰 서서 나에게 묻는다. “너는 호랑이와 더불어 경인년이 어땠냐고” 나는 부끄러워 후회만이 남는다며 사슴을 보내버리고 말았다. 돌아보기조차 민망한 시간들을 들추어 세어보니 MENE, MENE, TEKEL, UPHARSIN.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세어보고 달아보아도 부족한 것뿐이고, 다가오는 토끼를  품을 가슴이 조차 남아있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부여잡고 달아나는 사슴을 물끄러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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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服(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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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ptember 4, 2010

며칠째 비가 내려 을씨년스럽다. 마음이 여기엔가 잡혀있어 빠져 나오지 못하고 깊은 웅덩이로 더 빠져간다. 누이의 訃音(부음)에 한 걸음에 달려가 마지막을 함께 못한 죄책감이 나를 더욱 우울하게 한다. 아무리 천국이 좋다지만 生과死 이별의 아픔은 만나자고 약속한 날이 성큼 다가오자 내 마음을 망설이게 하며 발걸음을 주춤하게 한다. ‘오월에 온다며 잘 하고 있을게 그 때 만나, 김 목사’ 그 마지막 누이의 음성이 아직 魂이 살아 생명력 있는 것 같은데,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 靈前 앞에서의 만남은 인간의 言語로는 표현할 수없는 아픔이요, 아쉬움이요, 괴로움이었다. 그곳에 생각과 호흡이 멈추어 서서 고뇌하는 나에게 어느 날 꿈에 셋째 누나가 찾아왔다. 검정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걱정스런 모습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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素望(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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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pril 5, 2010

처마 끝자락에 고드름이 녹아떨어지며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니 앞마당 풀잎이 살짝 고개를 내밀어 인사를 한다. 모처럼 그리워 애달파 하는 곳에서 들리는 소식이 나를 더욱 애달프게 한다. 셋째 누이가 혈액 암으로 투병중이라고 한다. 전화를 하니 “김 목사, 나 괜찮아, 나이 들어오는 거야” 한다. 걱정이 앞선다. 잘 견디고 이겨야 할 텐데, 사순절 새벽을 깨우며 더욱 간절하게 구하여 본다. 예수님께서 그 병실에 찾아가 함께 하여 주시길. 소망이란 어떤 일을 바란다는 뜻인데 바라본다는 것은 마음속에 소망을 품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바라보는 자에게 성령의 역사를 베풀어 주신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면 젊은이에게는 환상을, 늙은이에게는 꿈을 주겠다고 하셨다. 환상이라는 것도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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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빛 진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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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ebruary 27, 2010

이내 돌아오리라 무작정 나선 길이 三十 年 客地(객지)의 客이 되어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인생살이를 하나씩 뒤돌아 정리하자니 오래전 약속을 지키지 못한 洞內 사거리 모퉁이 구멍가게 아줌마가 생각난다. 급하면 달려가 푼돈이나 融通(융통)하여 쓰던 가게의 구수한 사투리로 “총각, 末日(말일)까지는 줘야 혀”하던 주인아줌마, 그런데 그 末日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떠나 오랜 세월을 보내고, 어느 해인가 구멍가게를 찾아 칠천 원을 돌려주고자 했는데 흔적조차 없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그 흔적이 歲月(세월)속에 묻혀 잊어지지 않고 가슴 깊은 곳에 남아 있어 아주 가큼 생각나게 하는 것은 오래 동안 서로 信賴(신뢰)속에 나눈 사랑의 힘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더욱 그리운 것은 시골 동내 교회 목회를 하며 한 성도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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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 number one (빛 진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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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nuary 19, 2010

아주 큰 굴뚝이 보이는 왼쪽 길을 따라 내려가면 숲속사이에 예쁘게 지어진 apt가 있고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조그마한 냇물이 있고 절경인 냇가에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살며 오가던 추억이 새롭다. 근 10년이 지나 다시 그 길을 따라 내려가다 그 시절이 생각나 돌아보니 그때 그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향기에 취해 멀리 나가 있는 아들이 그립니다. 힘든 사춘기를 보내고 대학에 간 아들이 방학이라 데리러 오라는 전화가 와 Parking장에 들어서니 양손에 운동화 여섯 짝을 마치 보물처럼 들고 서 있다. 중고등학교를 다 마칠 때까지 새 운동화 한번 사주지 못하고 입은 옷까지도 세탁소하시는 권사님이 보내 주는 헌옷도 마다하지 않던 녀석이 운동화가 恨이 되었던지 용돈 조금 준 것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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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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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ecember 30, 2009

東洋적인 思考로 말하자면 소는 저물어 가고 호랑이가 새 날을 여는 길목에 쓸쓸함이 가슴을 파고든다. 창가를 멍하니 바라보며 左右를 살펴보아도 오라는 곳도, 갈 곳도 없고, 찾은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지만, 그래도 마음은 그리운 사람들에게로 떠나보내고 텅 빈 가슴을 쓰다듬으며 차 한 잔을 손에 들고 빈 마음을 추수이며 소를 보내고 호랑이 맞이할 생각에 마음이 설래 인다. 떠나가는 소에게 물었다. 네가 보기에 지난해는 어떠냐고? 그리고 호랑이에게 물었다. 네가 보기에 새해는 어떠냐고? 소와 호랑이가 이네 나에게 네 생각은 어떠냐고? 되묻는다. 시편23편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는 성경구절로 대답을 대신 했다. 흰 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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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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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vember 13, 2009

어느 날 잠자리에서 머리가 너무 아파 깨어보니 새벽2時다. 다시 잠을 청하며 누워 있는데 머릿속이 진동을 치며 짓눌러서 뒤척이고 있는데 전화 bell이 울린다. 병원 중환자실인데 wife 집사가 뇌수술을 받아야 하니 급히 좀 와달라고 한다. 눈앞이 캄캄하다. 급히 운전을 하며 ‘주여, 살려만 주십시오.’를 계속 반복하며 중환자실에 들어서니 환자가 생각과는 달리 의식도 있고 말도 한다. 오전 중에 수술한다는 말을 듣고 새벽예배를 드리러 교회를 향하며 ‘주여,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도를 했다. 그리고 이내 마음은 평안한데 머리는 계속해서 견디기 힘들 만큼 통증이 온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병원에 들어서니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며 helicopter를 기다린다고 한다. 아, 살아구나 생각하며 뒤따라 병원에 도착하니 환자가 생각과는 달리 평화롭다. Open surge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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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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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ctober 29, 2009

한국의 유명한 농구 감독이 선수 시절 아까징기를 배에 바르고 배탈이 다 나았다며  시합에 나섰다는 글을 잃으면서 까마아득한 옛날이야기를 생각해 냈다. ‘아까징기’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기억하고 아는 사람 지금도 있나 싶었다. 아마 그리 흔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옛날 어릴 때, 머리가 아파도 바르고, 배가 아파도 바르는 萬病通治약이었다. 또 하나 萬病通治약으로 딘데 바르는 연고가 있었다. 아마 vaseline이 아닌가? 싶다. 그 시절 그것들은 우리에게는 요술방망이 같은 것이었다. 웬만한 병은 그것으로 다 고치고, 神秘스럽기까지했다.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이니 네다섯 살 때 일이다. 당시 이빨이 아프면 치과에 가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던 때이다. 이빨이 아파 울면 어머니가 입 몸에 손을 대고 기 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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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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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ctober 22, 2009

어느 기독교 신문에 ‘당신은 몇 살까지 살까?’라는 설문에 대답을 하니 99살까지 살 수 있다고 답이 나왔다. 나는 ‘바로 어떻게 살지?’ 라는 걱정이 앞선다. 장수의 복을 누리는 것은 좋지만 은퇴하고 30년을 뭐먹고 사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잠을 설치고 새벽기도를 나가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기도를 했다. ‘하나님, 장수의 복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기왕이면 먹고 살 것도 주시지요.’라고 기도를 했다. 그런데 그 주일날 집사람이 먼저 집으로 가라고 한다. 다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온 집사람이 좋은 집을 보고 왔는데 사겠다는 것이다. 웃고 말았다. 왜냐하면 불가능한 꿈이기 때문이다. 나는 credit이 전혀 없다. 물론 Bank account 도 없다. 그래서 집사람이 마음에 상처나 받지 않았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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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옷

  • By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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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ptember 5, 2009

나는 위로 누이가 넷이 있고 아래로 남동생이 둘이 있다. 바로 위에 누이가 나보다 두 살이 많고 동생은 세 살이 적다. 위에서 내려온 누이 옷을 항상 어머니가 수선을 해서 내 옷으로 만들어 주셨다. 어릴 때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입었지만 사춘기에 접어  들면서 여간 창피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입고 나면 더 이상 입을 수 없어 동생은 늘 새 옷만 입었다. 내 기억으로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새 옷을 입어보지 못한 것 같다. 요즈음 집사람이 동내 cafe에 자주 가서 헌 옷을 사온다. 소위 Brand maker라는 polo를 사와서 입으라고 윽박지른다.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여자 옷인데 자꾸 입으라고 하여 여간 곤욕스러운 것이 아니다. 속으로 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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