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아홉은 어디 있느냐?

  • By 담임목사
  • Comments Off on 아홉은 어디 있느냐?
  • August 29, 2009

이 말은 예수님께서 10명의 문둥이를 고쳐주셨는데 그 중 한 사람만 예수님께 와서 감사할 때 예수님께서 물으신 말씀이다. 예수께서 열 명의 문둥병자를 치료해 주셨으나 다시 돌아와서 감사를 드린 자는 사마리아인인 문둥병자 한 사람뿐이었다. 사마리아인인 문둥병자는 감사할 줄 알았기 때문에 육체적인 병 고침 뿐만 아니라 영적인 구원의 큰 은총을 받을 수 있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눅17:19) 우리 믿는 성도들은 구원의 은혜를 날마다 감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나의 생활 자체가 하나님 앞에 감사드릴 조건이고, 나의 존재 자체가 이미 감사의 조건임을 깨달아야 한다. 감사 없는 신앙생활은 거짓된 신앙생활이다. 그리고 감사는 더 큰 감사를 낳는다. 감사는 더 큰 축복을 주시기 […]

Read More

容恕(용서)

  • By 담임목사
  • Comments Off on 容恕(용서)
  • July 19, 2009

英 語로 forgive라고 한다. 國語사전에 죄나 잘못한 일을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덮어 주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덮어 두는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고 기억 속에서 상처를 지우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말씀을 전하면서 자주 “원수를 사랑하라” “용서하라”고 외치지만 스스로 돌아보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舊約聖書 창세기에 보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인 가인을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보호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창4:15) 그 후로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수없이 용서해 주셨다. 이런 影響(영향)으로 유대 사회에서는 세 번까지 용서하는 것이 관례처럼 통용되고 있었다. 때문에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베드로가 자랑스럽게  “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

Read More

주기도문

  • By 담임목사
  • Comments Off on 주기도문
  • June 19, 2009

아주 오랜만에 사택에 전화 bell 소리가 들린다. “김 동진 목사님이십니까?“ 예, 제가 김 목사입니다.” 아, 저는 이런저런 목사인데 아무개 집사님 夫婦를 아십니까?” 아, 그럼요 잘 알지요. 제가 책임지고 보장합니다. 오래 전에 시무했던 교회의 안수집사님 夫婦다. 주저하지 않고 ‘ I guarantee’라고 대답한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얼마나 나를 믿고 신뢰하면 자기를 보증할 사람으로 나를 택했나, 생각하니 감사할 뿐이다. 은퇴를 하시고 큰 아들 집으로 이사를 가신다고 하시기에 아니 장로 임직해야지 어디 가시냐고 했더니 “목사님 제가 성경을 세 번 읽었는데 저는 집사까지입니다. 장로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거절을 하셔서 집사님께 어디를 가시던지 기왕이면 우리교단 교회로 나가시지요. 부탁을 했다. 그 부탁 때문에 바로 집 앞에 교회가 있는데 […]

Read More

청개구리

  • By 담임목사
  • Comments Off on 청개구리
  • June 9, 2009

英語로 ‘a green frog’라는 청개구리를 ‘비가 오려고 할 때 몹시 욺.’ 그리고 ‘매사에 엇나가고 엇먹는 짓을 하는 사람의 별명’이라고 국어사전에 설명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 自殺이라는 衝擊的(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모습은 永訣式장에서 人山人海를 이루고 우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나는 울고 있는 군중들의 모습에서 마치 비 내리기 전 울고 있는 청개구리의 우는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 古典 洪吉童傳(홍길동전)에 나오는 군중을 생각했다. 그들은 나라님보다 홍길동이라는 義賊(의적)을 더 추앙하고 좋아했다. 왜냐하면 貪官汚吏(탐관오리)의 부정한 재물을 훔쳐다가 나누어 주기 때문이었다. 장터에 모인 군중들은 홍길동을 외친다. 路祭(노제)를 위해 모인 군중들은 자살한 대통령이 홍길동이길 원해서 소리 내어 외치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조심스런 말이긴 하지만 이 […]

Read More

어머니

  • By 담임목사
  • Comments Off on 어머니
  • May 7, 2009

一年에 한 번씩 형식적으로 지나쳐 버리는 어머니 주일이 다시 돌아온다. 벌써 27년 전에 아무 생각 없이 무기력하게 어머니를 보내고 아직까지 平安한 마음으로 어머니께 꽃 한 송이 드리지 못한 恨의 서러움에 눈물지며 어머니의 사랑이 가슴속 깊은 곳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어 어머니를 소리 없이 불러본다. 뇌출혈로 쓰러져 뇌사상태의 어머니가 미국에서 달려 온 아들이 다가가자 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시곤 이내 숨을 거두시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어머니가 손가락으로 이 부족한 아들에게 하시고자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헤아려도 평생을 두고 깨닫지 못했는데 이제 나이 들어 나의 삶을 돌아보며 어머님의 마지막 당부의 말씀은‘참아라.’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 어머니 때문에 忍耐(인내)를 배웠고, 그 어머니 때문에 참고 참아 견디며 […]

Read More

새벽기도

  • By 담임목사
  • Comments Off on 새벽기도
  • April 18, 2009

요즈음 들어 Alarm소리에 새벽을 깨운다. Alarm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 시계를 끄기를 17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았는데 올해 들어 새벽을 깨우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歲月의 흐름은 어찌할 수 없나보다. 걷기 전부터 생활이 되어버린 새벽기도회다. 일어나 이부자리를 개어 놓고 온 식구가 둘러 앉아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돌려가며 읽고 기도하고 주기도문으로 마치고 저녁이 되면 이부자리를 펴고 똑같이 예배를 드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 生涯(생애) 가장 기억에 남은 새벽예배는 아주 오래 전에 첫 눈이 내리던 어느  날 겨울 山行에 나서서 천막을 치고 잠을 청해보지만 잠 이루지 못하고 추위와 싸우며 뒤쳐 이는데 어디선가 새벽종소리가 들린다. 종소리 나는 곳으로 따라 들어가니 흙벽돌로 짓은 예배당 안에 가마니가 […]

Read More

사라 (Sarah)

  • By 담임목사
  • Comments Off on 사라 (Sarah)
  • April 17, 2009

집사람이 모처럼 친정 동생 집에 나들이를 가겠다고 한다. 村사람이라 비행기를 갈아타는 것도 불안하고 9.11 테러 이후에 비행기 여행이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고 보안검사 때문에 일찍 공항에 나가 신발까지 벗어야하고 불쾌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혼자 일주일동안 잔소리 안 듣고 먹고 싶은 것도 실컷 먹을 요량으로 약간의 용돈과 라면 한 box를 사주는 조건으로 합의를 했다. 공항에 내려주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신라면 두 개에 달걀 두 개를 넣어 끊어 먹고서야 아내가 걱정스러워 불안하다. 잘 도착했나? 다 늦은 저녁때가 돼서야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불안함과 두려움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날 미국 전역에서 비행기 여행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불쾌하고 […]

Read More

무리 (떼 혹은 집단)

  • By 담임목사
  • Comments Off on 무리 (떼 혹은 집단)
  • March 27, 2009

 ‘무리’라는 말을 국어사전에 여럿이 모여 한 동아리를 이룬 사람들, 짐승의 떼, 공동으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떼, 집단’이라는 의미이다.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무리는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는 노아 홍수 이후에 바벨탑을 쌓던 무리이다. 그리고 가나안을 향하는 이스라엘 가운데 섞어 있는 무리,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무리,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을 돌로 치려 둘러 서있는 무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무리, 마가 다락방에 모인 무리, 초대교회 안에 유대파의 무리, 헬라파의 무리, 스데반을 돌로 처 죽인 무리, 이 밖에 성경에는 샐 수 없이 많은 무리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

Read More

선 너머

  • By 담임목사
  • Comments Off on 선 너머
  • March 7, 2009

내가 꿈을 꾸며 사춘기를 보낸 洞內 조그마한 오솔길 같은 언덕 이름이다. 밤차를 타고 이사를 와서 첫 새벽 창가에 비친 풍경과 문을 열고 나가 마신 공기, 그 아름다움과 신선함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움에 뒤 돌아보게 한다. 언덕 아래로 탱자나무 울타리, 우물가, 선 너머 가는 오솔길, 소나무가 울창한 산, 한 폭에 산수화 같은 아름다움 속에서 나는 꿈을 꾸며 선 너머로 오가는 한 소녀를 짝사랑하여 훔쳐보며 부끄러워 몸을 숨었던 고목나무, 그 고목나무 그늘아래 앉아 동무를 만나 인생을 이야기하며 사춘기를 보낸 곳이다. 다리를 건너가면 오른쪽에 공원이 있고, 위로 올라가면 병원이 있고, 왼쪽으로는 여자중고등학교가 있고, 아래쪽에는 남자중고등학교가 있고 선 너머 가는 길을 사이에 두고 탱자나무 […]

Read More

信心(신심)

  • By 담임목사
  • Comments Off on 信心(신심)
  • March 2, 2009

‘옳다고 믿는 마음. 종교를 믿는 마음’을 信心(신심)이라고 한다. 英語로는 ‘ Reverence for God.’고 한다. 기독교적으로 하나님을 숭배하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가리켜 우리는 Christian 혹은 성도라고 부른다. 原語로 이 마음을 kardiva(kardia)라고 하는데 신앙적으로는 인간의 내면생활의 中心처이고, 종교생활의 근원이며, 하나님께서 역사(일)하시는 장소이고, 이곳에서 또한 윤리적 태도 및 행위가 결정되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이 사실을 사도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3:16)라고 했다. 이 信心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다. California, Monterey 市에서 목회를 할 때이다. Pebble beach라는 아름다운 洞內가 있고 17 mile Drive 라는 절경인 바닷가 있고 온화한 기후가 年間 계속되고 살기에 너무나 좋은 환경이라 […]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