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너머

Published March 7, 2009 by 담임목사 in 목사님 칼럼

내가 꿈을 꾸며 사춘기를 보낸 洞內 조그마한 오솔길 같은 언덕 이름이다. 밤차를 타고 이사를 와서 첫 새벽 창가에 비친 풍경과 문을 열고 나가 마신 공기, 그 아름다움과 신선함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움에 뒤 돌아보게 한다. 언덕 아래로 탱자나무 울타리, 우물가, 선 너머 가는 오솔길, 소나무가 울창한 산, 한 폭에 산수화 같은 아름다움 속에서 나는 꿈을 꾸며 선 너머로 오가는 한 소녀를 짝사랑하여 훔쳐보며 부끄러워 몸을 숨었던 고목나무, 그 고목나무 그늘아래 앉아 동무를 만나 인생을 이야기하며 사춘기를 보낸 곳이다.

다리를 건너가면 오른쪽에 공원이 있고, 위로 올라가면 병원이 있고, 왼쪽으로는 여자중고등학교가 있고, 아래쪽에는 남자중고등학교가 있고 선 너머 가는 길을 사이에 두고 탱자나무 울타리 언덕위에 내가 살던 집이 있었다. 아침, 저녁이면 단풍 같은 싱그러운 젊음들이 줄지어 넘나들어 생기가 넘치는 오솔길이었다.

나는 그 선 너머를 꿈과 희망을 품고 넘기도 했고, 절망과 실패를 앉고 실의 빠져 넘어 가기도 했으며, 때로는 탕자와 같이 넘기도 했고, 탕자 같이 돌아가는 자가 되어 넘어가기도 했다. 그 선 너머 언덕위로 사랑하는 어머니를 영영 보내야 했지만 아직도 포근한 어머니의 모습이 간절하여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워 나를 그 언덕에 그냥 머물러 서 있게 하는 그런 곳이다.

목회를 잘할 요량으로 Pastoral consulting을 받았는데 Consulter가 무조건 목회를 쉬라고 조언을 한다. 이유는 치유되지 않는 상처가 심령 깊은 곳에 남아 있어 칼같이 표현된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이야기다. “혹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잠언12:18)라는 성경을 인용하며 나를 설득한다. 지혜로운 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해할 수도 해답을 찾을 수도 없다.

해답을 찾아 기도원으로 들어갔다. 무작정 금식기도를 시작했다. 3일 지나자 코가 막혀 냄새가 들어오지 않는다. 물만 마시며 5일째, 몸 안에서 올라오는 악취가 더 이상 나지 않는다. 열흘이 지나면서 정신이 들락거린다. 그 때도 성령은 침묵하고 있다. 성전에 앉아 기도하다가 정신을 놓고 말았다. 그리고 꿈을 꾼다. 선 너머의 기억들이 하나 둘씩 떠 올린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덮어 감추었던 부끄러운 일들이 희미하게 지나간다.

언덕 위에 우리 집은 언덕 아래 우물에서 물 길어다 먹어야 했다. 위로 두 누이는 시집을 가서 없고 그 아래 두 누이가 있고 아래로 동생이 둘이 있었다. 장남인 나는 아침새벽 기도회를 마치면 열두 지게를 길어다 놓고 학교에 가야 했다. 지방 신학원의 원장이시던 아버님의 사례비가 쥐꼬리만 해서 다섯 형제 학비는 물론이고 먹고 입는 것까지 힘들던 시절이다. 학교에서 돌아보면 나무를 했다. 아궁이가 다섯인데 겨울 네 군불을 때고 밥하고 더운물 데워서 온 식구가 세수하고 빨래를 한다. 끝없이 떨어지는 낙엽을 모아 말려 창고에 드려야 하고 그것으로 부족해서 탱자나무 가지까지 모아야 한 겨울을 낫다.

봄이 되니 어머니가 양을 한 마리 끌고 오신다. 빨리 키워 젓을 짜신단다. 집에 오면 양을 매고 양 먹일 꼴까지 해야 했고, 얼마 후에 이번에는 돼지새끼 한 마리를 가지고 오신다. 250근 나가면 팔아서 학비로 쓴단다. 저녁을 먹고 나면 언덕 넘어 병원에서 구정물을 지어 오면 하루해가 저물었다. 구석구석 텃밭에 호박이며 체소며 상추며 고추를 심어 가꾸어야 했다. 아버님은 다방에 찻값을 모르시고 평생을 동사무소 한번 안 가신 분이다. 그런 지아비를 가진 억척스런 어머니를 따라가기에는 나는 너무 벅차고 늘 힘이 들었다.

어느 날인가 방과 후에 구정물을 가지려 병원에 갖다. 구정물통을 머리에 이고 나오는데 수위아저씨가 원장이 퇴근한다며 나를 밀쳤다. 구정물이 쏘다져 온 몸에 냄새가 진동을 한다. 언덕을 내려와 집으로 가는 길에 여학생들이 코를 막고 킥킥대며 웃고 지나간다. 분하고 창피한 마음에 자신의 自我(자아)를 잊어버리고 그 언덕에서 부끄러움을 감추고 분한 마음을 참고 견디며 사춘기를 보내야 했다.

금식 15일째를 지나자 기억들이 하나 둘씩 희미해져 간다. 그리고 그 기억들이 빠져 나간 자리에 평안함이 찾아온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지금까지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서 있는 선 너머의 기억들은 급하고 과격한 성격으로 때로는 복수심으로 나의 삶을 지배해 오고 있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이제 그곳을 떠나 지시한 땅으로 가라 하신다. 한 걸음 한 걸음씩 길을 걸으며 분함을 삭히고 서있는 그곳에 변형된 예수님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어떤 말이나 글로는 표현 할 수없는 평안함이 느껴진다. 순간 베드로가 생각난다.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저희에게 나타나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막9:4-5)베드로의 말처럼 그냥 그곳에 머물러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20일째 자정에 주님이 오셔서 가라고 하신다. 조금만, 조금만을 절류하며 애절하게 외치는 나에게 주님은 분함도, 아픔도, 상처도, 배신도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버리고 나가 나를 따르라고 하신다.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함께 하시겠단다. 나는 그렇게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을 떠나보내고 깨어나 쟁기 잡는 손을 놓고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 거듭난(Born again) 사람이 되었다. 지금도 주님은 매일 새벽마다 찾아오셔서 말씀하신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9:62)

나는 오늘도 주님의 전에 나가 간절하게 기도한다. 아직도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들 그래서 롯의 衙內(아내)처럼 영적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자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날마다 떠나는 자처럼 빈손 들고 주님을 향해 외친다. 주여, 채워주시옵소서. 그럼 주님은 이네 찾아오신다. 그리고 불과 구름기둥으로 나의 영혼을 충만케 하신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언16:3절)

목양실에서 김 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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