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 (떼 혹은 집단)

Published March 27, 2009 by 담임목사 in 목사님 칼럼

 ‘무리’라는 말을 국어사전에 여럿이 모여 한 동아리를 이룬 사람들, 짐승의 떼, 공동으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떼, 집단’이라는 의미이다.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무리는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는 노아 홍수 이후에 바벨탑을 쌓던 무리이다.

그리고 가나안을 향하는 이스라엘 가운데 섞어 있는 무리,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무리,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을 돌로 치려 둘러 서있는 무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무리, 마가 다락방에 모인 무리, 초대교회 안에 유대파의 무리, 헬라파의 무리, 스데반을 돌로 처 죽인 무리, 이 밖에 성경에는 샐 수 없이 많은 무리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교회사를 살펴보면 성경에 나타난 형태의 무리들의 흔적들이 기독교역사속에 수 없이 많이 기록되어 있고, 또한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거룩한 공회 안에도 이런 무리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요 우리의 현실이다. 이민교회 안에도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이런 때를 지은 무리들이 있다. 서로 자기들의 무리 속으로 들어오라고 야단이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자기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목회가 편할 날이 없다. 혈연, 학연, 지연으로 혹은 세대별, 직업별 다양한 때를 지은 무리들이 교회 안에 있다.

추위가 한풀 겪기는 3월이 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왜냐하면 常會가 시작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남의 욕을 아주 심하게 하는 선배 목사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김 목사, 내가 교회가 커서 장로가 있나 가만히 있으면 사람 취급을 못 받아” 쌍스러워 보이던 선배 목사의 말이 생각나서 마음이 착잡하고 날이 갈수록 선배 목사가 이해가 되니 목회자의 윤리와 Christian의 양심과 도덕적 의무까지도 저버린 것 같아 항상 이때가 되면 안과 밖에서 서성거리기 일쑤다.

언젠가 노회를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공항 대합실에 앉아 있는데 어느 장로님이 하는 말이 생각난다. “올 때마다 이건 아니다 싶어 시험이 들어 돌아가는데 한번 두 번 참석하다보니 자신도 무리 속에 섞어 가고 있어 괴롭다”고 하면서 다시 오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그 장로님은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언젠가 노회를 얼마 앞두고 좀 크다는 교회 목사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 김 목사, 전에 어디 집회할 교회가 있다고 했지 잘 기억이 안 나서”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기억이 없다. “기억이 없는데요.” 했더니 “다른 교회인가” 하면서 전화를 끊는다.

노회 참석을 했더니 그 목사님 눈치가 이상하다. 친하게 지내는 목사님께 “아니, 아무개 목사 눈치가 이상해 무슨 문제 있나.” 했더니 웃으면서 “혹시 전화 안 왔어 어디 집회할 곳 있다고 했다며” 그걸 어떻게  “노회 때만 되면 항상 그래 신경 쓰지 마” 교회가 크니 총대 숫자가 많고, 큰 것 좋아하는 무리가 많다보니 주위에 사람도 많이 모이고 무리의 힘을 남용하는구나 싶어 웃어넘기고 말았다.

임원선거를 시작으로 총대선거 그리고 총회 부서별 공천까지 심지어 헌의안건까지 법과 원칙이 무시되고 보이지 않는 어떤 무리의 힘이 결정을 한다.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속세 말로 왕따 당하지 않으려고 소리를 내다보면 성령이 소멸됨을 스스로 느낄 수 있고 그 후유증은 한 동안 계속 된다. 시장 잡배들보다도 못한, 아니 시골 장터에 불한당보다도 못한 사람들이 저 마다 돌을 들고 서서 온갖 權謀術數(권모술수)다 부린다.

마음이 상해 돌아왔는데 돌을 든 무리들이 서로 자기 편 안 들어 준다고 의심하며 전화로 E-mail로 사람을 견디기 힘들게 한다. 한 무리는 고소를 한다. 저주를 한다고 야단이고 또 한 무리는 자신들의 힘을 誇示(과시)하기에 여념이 없다. 스스로의 利益(이익) 때문에 不義(불의)를 보고도 외면한다는 편견과 오해가 심히 괴롭다. 떠나 온 교회 원로 장로님께서 매일 E-mail로 좋은 정보를 보내주시는데 몇 칠전에 이런 글을 보내주셨다.

대강 이런 이야기다. 어느 수도원에서 두 수도사가 싸운다. 한 수도사는 구구단 2×8=16 이다 하고 또 한 수도사는 2×8=17이다 해서 서로 자기가 맞는다고 우기며 싸우는데 좀처럼 싸움이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두 수도사는 원장 수도사에게 찾아가 누가 맞는지 알아보자며 원장 수도사를 찾아갔다. 自初至終(자초지종) 다 듣고 원장 수도사가 화를 불같이 내면서 2×8=16 이라는 수도사를 잡아 묶고 곤장 10대를 치라고 한다. 볼기짝에 불나도록 얻어맞는 수도사가 아무리 생각해도 원장 수도사의 공정하지 못한 처사에 분한 마음을 참을 수가 없다.

원장 수도사를 찾아가 ‘아니 원장님 초등학교도 못 나오셨나요? 어떻게 2×8=17입니까?’ 따져 묻으니 원장님께서 “이 놈아, 2×8=17이라 우기는 놈하고 싸우는 놈이 더 어리석고 나쁜 놈이다.”라고 대답을 하신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고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평안을 찾았다. 서로 자신들이 옳다고 우기는 두 무리가 2×8=17이라 우기며 싸우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늘도 자신을 돌아보며 애쓰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 주신 양무리 가운데 있기 위함이고 양무리를 늘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는 선한 목자가 되고자 새벽을 깨운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양무리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자 되어 인치심 받고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계7:9-10)라고 외치는 무리가 모인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하게 소망하여 본다.

목양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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