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Sarah)

Published April 17, 2009 by 담임목사 in 목사님 칼럼

집사람이 모처럼 친정 동생 집에 나들이를 가겠다고 한다. 村사람이라 비행기를 갈아타는 것도 불안하고 9.11 테러 이후에 비행기 여행이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고 보안검사 때문에 일찍 공항에 나가 신발까지 벗어야하고 불쾌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혼자 일주일동안 잔소리 안 듣고 먹고 싶은 것도 실컷 먹을 요량으로 약간의 용돈과 라면 한 box를 사주는 조건으로 합의를 했다. 공항에 내려주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신라면 두 개에 달걀 두 개를 넣어 끊어 먹고서야 아내가 걱정스러워 불안하다.

잘 도착했나? 다 늦은 저녁때가 돼서야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불안함과 두려움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날 미국 전역에서 비행기 여행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불쾌하고 두렵고 불안했을 것이다. 거기에 따르는 경제적 손실 또한 엄청난 액수이다. 알카에다의 테러는 끝없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중동 Palestine의 영토분쟁은 그 끝을 알 수 없다. 雪上加霜으로 전 세계가 경기침체로 암울하다.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 舊約聖書 創世記에 나오는 ‘사라’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본명은 사래인데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과 결혼을 했고 남편을 따라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이주를 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12:2) 는 말씀을 믿고 미지 땅으로 왔는데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자녀를 생산치 못하자 자기 여종 하갈을 남편 아브라함에서 첩으로 주어 아들 이스마엘을 얻었다. (창16장)

그런데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창17:15-17) 라고 부정을 했지만 하나님의 약속대로 사라가 잉태하여 이삭이 출생하였다.

‘사라’의 아들 ‘이삭’이 젖 떼는 날, 오늘로 말하면 돌잔치가 같은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하갈의 아들이 이스마엘이 자기 아들이삭을 희롱하자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고 강박해서 결국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고 말았다.(창21장)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씨받이로 여종 하갈을 이용했다는 것과 질투와 이기심 때문에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아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느 날 사라는 이런 생각을 한다. 이제 늙어 죽을 때가 되었는데도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아들 소식이 없자 씨받이 생각을 하고 하갈을 씨받이로 아브라함에게 준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생기자 여느 여인처럼 예사롭게 여기고 씨받이 이용한 여인과 자식을 내쫓고 말았다.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지만 성경과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數千 年 동안 이삭의 후손과 이스마엘의 후손의 싸움은 끝없이 계속되어 왔다. 9.11 테러 때 세계 최대도시 New York에 資本主義의 상징처럼 서있던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릴 때 나는 하갈의 한 맺힌 눈물과 이스마엘의 분노를 보는 것 같았다.

앞서 이야기한 달걀 이야기를 할까 한다. 우리가 자랄 때 달걀은 참으로 귀했다. 저의 아버님께서 日帝强占기와 6.25 동란을 겪으시며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오래 고생을 하셨다. 아마 저의 어머니의 지극정성이 아니면 96세를 못 사셨을 것이다. 억척스럽고 극성스러운 어머니께서 거의 평생 동안 보약을 해 주셨다. 그 당시 비타민은 아주 귀했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구해 오셨고 매끼니 하얀 쌀밥에 달걀 하나를 넣어 잡수셨다.

매끼니 꼭 한 숟가락 밥을 남기시는데 달걀을 약간 묻혀 있었다. 아들 세 중에 끝까지 기다리는 자가 남은 것을 먹을 수 있었다. 남긴 것은 먹을지언정 단 한 번도 달걀 먹을 생각을 안했다. 당연히 달걀은 아버님께서 드시는 것으로 생각했고 그 어떤 먹을 것도 아버님께서 드셔야 먹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빨리 켜서 장가가 아버지가 되고 목사가 되어 달걀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목사가 되면 달걀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어쩌면 목사 된 하나의 理由중 하나일수 있다. 늘 목회자를 섬겨야 한다고 어머님께서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되고  목사가 되자 세상이 바뀌었다. 달걀은 子息의 먹은 것으로 좋은 것도 子息 차지가 되었다. 모두가 그것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말을 좀 할양 싶으면 세상이 변했는데 고리타분하게 군다는 반응이다.

교회를 가는 길목에 양로원이 있어 주일날 오후에 잠깐 들려 아무도 찾지 않은 노인 한분을 소개받아 이야기도 하고 식사도 도와드리고 성경도 읽어 드리고 기도도 해드리고 했다. 감사하다는 말만 하시던 어른이 어느 날인가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다. 아들 하나를 두고 스무 살에 남편과 사별하고 과부가 되어 자식 하나 바라보며 고생 고생하여 자식을 의사를 만들었는데 말도 안 통하는 미국에 호강 시켜준다며 데리고 와 몇 년 만에 이곳에 보내놓고 지난 2년 동안 자식 얼굴을 못 보았다고 한다.

달걀을 아버님만이 잡수시던 때는 부모를 버렸다는 말을 들어 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요즈음 세상에는 재산은 차지하고 부모는 내쫓아 버리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제주도에 하루 버려진 老人들이 5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 끝을 알 수 없다. 얼마만큼 무너져 내릴지. 그리스도 안에서 ‘사라’된 女人들이여! 돕는 배필로 이 땅에 왔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지아비를 섬기는 것이 아내 된 자의 본분임을 알아라.

그리고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고 자식에게 가르쳐라 부모를 공경하라고 그것이 지금 이 순간에도 무너져 내려 자신을 애달프게 하며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 안 되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니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2) 아멘

목양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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