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Published April 18, 2009 by 담임목사 in 목사님 칼럼

요즈음 들어 Alarm소리에 새벽을 깨운다. Alarm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 시계를 끄기를 17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았는데 올해 들어 새벽을 깨우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歲月의 흐름은 어찌할 수 없나보다. 걷기 전부터 생활이 되어버린 새벽기도회다. 일어나 이부자리를 개어 놓고 온 식구가 둘러 앉아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돌려가며 읽고 기도하고 주기도문으로 마치고 저녁이 되면 이부자리를 펴고 똑같이 예배를 드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 生涯(생애) 가장 기억에 남은 새벽예배는 아주 오래 전에 첫 눈이 내리던 어느  날 겨울 山行에 나서서 천막을 치고 잠을 청해보지만 잠 이루지 못하고 추위와 싸우며 뒤쳐 이는데 어디선가 새벽종소리가 들린다. 종소리 나는 곳으로 따라 들어가니 흙벽돌로 짓은 예배당 안에 가마니가 깔려 있고 할머니 다섯 분이 눈물을 흐리며 기도를 하고 계신다. 천막안보다 더 추운 예배당에서 기도하시는 모습에 내가 얼마나 부끄럽든지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나를 더욱 부끄럽게 한 것은 난무한 옷차림에 거적 같은 이불을 쓰고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이 나라의 청년을 위하여, 모두가 잘 사는 나라 되길 위하여, 객지에 나가있는 자녀들을 위하여, 한국교회가 부흥하길 원해서 해가 맞도록 기도를 하시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때 뒤돌아 예배당을 나와 산을 오르면서 이 강산이 數年내에 잘 사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더 큰 희망을 찾아 그 강산을 뒤로하고 먼 길을 떠나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

요즈음 매일 새벽길에서 나는 할머니들의 기도의 응답을 눈으로 확인한다. 우리나라 차가 미국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것 꿈엔들 생각했던 일인가 그리고 가장 先進的 운동이라는 WBC 야구 경기를 보면서 강성대국 잘사는 祖國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나는 그때 그 움막 속 시골교회 할머니들의 모습을 지울 수 없고 그 기도 소리 또한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그리움에 찾은 조국강산 어느 곳에서도 새벽을 깨우는 종소리가 들리지 않고 교회 안에서는 기도와 찬송소리보다는 다툼과 분쟁의 소리만 들리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移民敎會에서 새벽예배를 드린다는 것 용이하지 않다. 미국에서 새벽예배를 드리는 교회는 한국 교회뿐이다. 때로는 一年 동안 아무도 나오지 않는 예배를 혼자 매일 드려야 하는데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언제 누가 나올지 몰라 늘 준비하고 나가 있는데 새벽기도를 시작한지 꼭 3년째 되던 몹시 추운 어느 날 어느 집사 夫婦가 들어온다. 참으로 반갑기 그지없다. 기뻐 춤을 추듯 은혜로운 예배를 드리고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흥분했던 기억이 있다.

근 한 달 동안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한다. 열심히 말씀을 준비하고 그때처럼 기쁜 마음으로 새벽을 깨운 때가 없었다. 어느 날 집사 夫婦가 보이지 않는다. 오후에 심방을 가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나 봐요” 다시 말하면 기도의 응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낙심하고 절망가운데 하나님이 없다며 시험에 들어있다. 이런 저런 사연을 다 듣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두 夫婦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를 했다.

후로는 누가 새벽에 교회에 들어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또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마음 조이며 기도한다. 2-3일 지나면 불안해 진다. 응답이 없나 싶어 그리고 안 보이면 응답되었구나 생각하고 안심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절로 실감난다. 아주 가큼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시험과 문제가 있어 나왔는데 오늘 말씀이 나에게 응답과 확신을 주셨다” 고 가장 힘이 나고 보람을 느낄 때이다. 때문에 나는 새벽마다 나에게 맡겨진 양들의 심령을 鑑察(감찰)하기 위하여 말씀을 묵상하며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을 준비해 놓고 새벽을 깨운다.

시험을 당한 심령, 실패한 심령, 肉身이 병들은 심령, 고난이나 환난을 당한 심령, 대부분 이런 심령들이 새벽재단에 나온다. 그들과 함께 들어오는 사탄의 역사를 혼자 감당하기엔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상한 심령이라 말 한 마디에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모른다.

舊約聖書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을 애굽 군대에서 건지신 것도 새벽이고 여리고성을 무너트린 것도 새벽이다. 다윗왕은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46:5)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57:8)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108:2)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시119:147) 라고 했다.

우리교회에 새벽을 깨워 부르짖어 기도하는 용맹스런 하나님의 군대 된 다윗 같은 용사가 날마다 더하기 원한다. 그리고 상한 심령뿐 아니라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미래를 열고 천국 문을 여는 능력의 용사가 날이 갈수록 쇠잔해져 가는 부족한 종을 위로하고 기도로 능력의 갑주를 입혀 주길 소원한다.

한번은 미국 교회 목사님께서 교인들이 complain 한다며 나에게 너는 새벽마다 나와서 뭐하냐고 묻는다. 기도한다고 하자 의아스런 표정을 짓는다. 그 다음 날 새벽에 미국교회 성도 몇 분이 새벽에 나와 살핀다. 살을 가르는 추위에 무릎 끊고 앉아 기도하는 우리 夫婦의 모습을 보고 돌아간다. 다음 날 새벽에 교회에 들어서니 溫氣가 돈다. 어제 오후에 긴급회의를 소집해서 새벽에 heater를 켜기로 했다고 한다. 지금은 우리예배당이 있다. 마음대로 기도할 수 있다. 한 가지 문제는 그 큰 교회를 溫氣로 채우기에는 Gas비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추위에 오금을 펴지 못하며 집사람과 함께 새벽을 깨우는 것은 天下보다 더 귀한 한 영혼이 이 새벽을 깨워 나와 위로를 받고, 응답을 받고, 고침 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얻게 하려는 소망에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새벽만이 아니라 미래를 확신하고 보장 받는 새벽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미래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새벽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로 올라가는 꿈을 꾸며 새벽을 깨워 주님 전에 나와 무릎을 끊어 본다. 그리고 오래전 시골 예배당에서 본 할머니들의 모습을 우리교회에서 보기를 소원한다. 사랑하는 兄弟姉妹(형제자매)들이여 지금이 새벽을 깨워 은혜 받을 때이다.

목양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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