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구리

Published June 9, 2009 by 담임목사 in 목사님 칼럼

英語로 ‘a green frog’라는 청개구리를 ‘비가 오려고 할 때 몹시 욺.’ 그리고 ‘매사에 엇나가고 엇먹는 짓을 하는 사람의 별명’이라고 국어사전에 설명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 自殺이라는 衝擊的(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모습은 永訣式장에서 人山人海를 이루고 우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나는 울고 있는 군중들의 모습에서 마치 비 내리기 전 울고 있는 청개구리의 우는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 古典 洪吉童傳(홍길동전)에 나오는 군중을 생각했다. 그들은 나라님보다 홍길동이라는 義賊(의적)을 더 추앙하고 좋아했다. 왜냐하면 貪官汚吏(탐관오리)의 부정한 재물을 훔쳐다가 나누어 주기 때문이었다. 장터에 모인 군중들은 홍길동을 외친다. 路祭(노제)를 위해 모인 군중들은 자살한 대통령이 홍길동이길 원해서 소리 내어 외치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조심스런 말이긴 하지만 이 時代 社會의 風潮(풍조)가 홍길동이라는 도둑놈을 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목적만 좋다면 道德이고 倫理는 중요하지 않다는 物質萬能主義가 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 시킬지 심각하게 고민해 본다. 만약에 홍길동이가 농사를 지을 땅을 나누어 주어도 장터에 모인 군중들이 열광적으로 홍길동을 외칠까? 생각해 보았다.

자살이라는 사실에 목회자가 말하는 것조차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지만 전직 대통령이 남긴 遺書에 “잠을 잘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다. 원망하지 말라. 운명이다”는 말에서 眞實과 거짓 사이에서의 갈등, 삶과 죽음 사이에서의 고뇌, 이념의 대립, 한 지아비로써의 사랑, 억울하다는 분노를 읽을 수 있었다. 목회를 하는 목사로서, 그리고 작지만 한 공동체의 leader로써 同感(동감)할 수 있는 점이 지아비로써의 사랑과 억울하다는 분노다.

개척교회를 시작해서 그런대로 성장을 하는데 어느 날 집사님 한 분이 이런 말을 한다. “목사님, 우리 생활비 책임지겠습니다. 집을 정리하고 Apt로 가시지요” 새벽4시에 일어나서 새벽예배 드리고 7살 아들 녀석을 새벽 6시에 깨워 남에 집에 맞기고 일을 나가 오후 늦게 아들과 집사람을 내려주고 학교까지 마치고 들어오면 자정이 다 된다. 그런 환경에서 그 집사의 말은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와 같았다. 망설임 없이 집도 팔고 차도 팔아 헌금을 하고 이사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가 아프다고 한다. 전 재산을 건축헌금으로 드리고 당장 먹을 것 걱정인데 교회에서는 사례비 말조차 하지 않는다. 갈수록 아내의 통증은 더해만 간다. 사연을 들은 어느 의사가 無料로 치료를 해준다고 해서 찾아가니 일을 너무 많이 해서 子宮(자궁)이 내려 앉아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간다. 새벽에 나가 기도하는 일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런데 어느 산부인과 의사가 무료로 수술해준다고 한다.

수술 날짜를 잡고 검사를 하니 자궁에 tumor가 있다고 한다. 의사가 자기도 더 이상은 어찌 할 수 없다며 죄송하다는 말만 한다. 하늘이 무너진다. 부담을 느낀 성도들이 하나씩 둘씩 빠져 나간다. 앉자 있기조차 힘든 아내, 배고프다 보체는 7살 아들, 믿음이고, 法이고, 倫理고, 道德이고 못할 짓이 없을 것 같다. 그 배신감, 억울한 분노, 글로는 쓸 수 없다. 친구를 찾아 가니 “ 김 목사 그런 말하면 돈 달라고 하는 거야”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서고 말았다.

이것저것 돈 될 만한 것 팔아 비행기 값을 장만하여 아내를 한국으로 보내고 별별 생각을 다하며 차라리 보체는 아들 녀석하고 같이 죽을까 생각을 했다. 量과 質의 차이는 있지만 자살한 대통령과 같은 처지다. 다만 자살한 대통령과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나에게는 신앙의 양심(자살하면 지옥 간다)과 그리고 그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죽고 싶은 그 밤 잠결에 누군가 옆구리를 발로 차며 “기도해라”고 소리를 친다. 나는 그 새벽에 기도원으로 들어갖다.

삼 일간 금식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다. 다만 나는 그 동안 청개구리 같이 내 마음대로 행하며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지 못한 죄를 회개하고 나를 팔아 사고 싶은 아들과 아내를 하나님께 맞기고 부르심의 사명을 위하여 미래를 바라보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모든 살림을 정리하고 U-Haul을 rent해서 남은 짐을 싣고 千里 길을 달렸다. 방을 얻어 들어가니 아들 녀석이 창밖을 한참동안 말없이 바라본다. 말하지 않아도 “엄마는? 엄마는?” 애타게 절류하는 소리가 가슴속에 파고든다.

수개월 후 엄마를 다시 만날 때까지 엄마를 찾지도 묻지도 않는다. 어느 저녁에 아들 녀석이 “아빠 한국에 전화해서 돈 보내라고 해 응, 그래서 우리 Benz 사자” 아마 몇 년 전 한국에서의 일들을 기억하는 것 같다. 그 후로 박사과정까지 마치며 보낸 7년 동안의 연단은 청개구리 같은 자신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엘리야의 까마귀가 날마다 역사한다. 그리고 나는 빚진 자가 되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사랑의 빚이다.

“아빠 나도 저런 운동화 사줘” “나고 play station 사줘” 보체는 아들 녀석과 아래 배를 움켜쥐고 시음하는 衙內의 모습을 바라보던 지아비의 마음으로 자살한 지아비 된 전 대통령을 생각하면 冥福(명복)을 빌어 주고 싶다. 나는 그 분노를 치유하기 위해 생명을 걸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나 같은 罪人을 살리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그런데 그 십자가상의 예수님이 매일 새벽마다 찾아와 분노를 내려놓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신다. 이제 세상에 있는 동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세상 끝날 까지 다시는 사모가 아래 배를 움켜쥐는 일이 없기를 바람이고, 지처 피곤한 이 불쌍한 목사에게 밥 값 받고 밥 주라는 성도가 없기를 바람이다.

어떤 성도가 이야기 도중에 “목사님, 내가 목사님 삼천불 주었다면 준 것입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주님이 보고 계시며 알고 계심을 확신한다. 하루 數十 번씩 우는 사자와 같이 덤비는 사탄마귀의 유혹, 견디기 힘들다. 그러나 사자굴 속에 천사를 보내 사자의 입을 봉했던 하나님께서 그들의 입을 봉하시고 사탄 마귀를 물리쳐 주실 것을 확신하기에 “주 밖에 없나이다.” 바로 이 고백이 한 나라 대통령에게는 없어 자살을 해야 했고, 이 작은 시골교회의 이 부족한 목회자는 “주 밖에 없나이다.”를 날마다 고백하며 땀 흘린 소산을 먹기를 간절한 바라는 소망을 가지고 죽음을 지배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멘

목양실에서

No Response to “청개구리”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