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Published June 19, 2009 by 담임목사 in 목사님 칼럼

아주 오랜만에 사택에 전화 bell 소리가 들린다. “김 동진 목사님이십니까?“ 예, 제가 김 목사입니다.” 아, 저는 이런저런 목사인데 아무개 집사님 夫婦를 아십니까?” 아, 그럼요 잘 알지요. 제가 책임지고 보장합니다. 오래 전에 시무했던 교회의 안수집사님 夫婦다. 주저하지 않고 ‘ I guarantee’라고 대답한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얼마나 나를 믿고 신뢰하면 자기를 보증할 사람으로 나를 택했나, 생각하니 감사할 뿐이다.

은퇴를 하시고 큰 아들 집으로 이사를 가신다고 하시기에 아니 장로 임직해야지 어디 가시냐고 했더니 “목사님 제가 성경을 세 번 읽었는데 저는 집사까지입니다. 장로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거절을 하셔서 집사님께 어디를 가시던지 기왕이면 우리교단 교회로 나가시지요. 부탁을 했다. 그 부탁 때문에 바로 집 앞에 교회가 있는데 한 時間 半을 운전해서 한 주일도 빠지지 않고 출석을 하셨다고 한다.

옛날 생각이 난다. 부임해 보니 지역사회와 교회가 상처가 심해 도저히 전도가 되지 않는다. 교회를 중심으로 한 시간 以內를 매일 김밥을 싸 들고 전도를 해도 한 사람도 만날 수 없고 교회 나오는 사람도 없다. 몇 번 가게로 찾아가도 의자에 앉아 쳐다보지도 않는다. 말  한마디 안하고 한 쪽에 서서 기도하고 돌아오는데 “당신이 새로 온 목샨가” 반말을 해도 말을 해 주는 것이 너무나 반가워서 예, 내가 새로 온 목사 김 동진 목사입니다.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내가 한국에서 다니던 교회는 주기도문을 하는데 왜 그 교회에서는 주기도문을 안 해.” 아, 그래요 그럼 이번 주일부터 주기도문을 하지요. 그 주일부터 주보에 주기도문을 넣어 시작을 했다. 그리고 주보를 들고 심방을 갖다. 우리도 주기도문을 시작했습니다. 주보를 드리고 돌아왔다. 바로 그 주일 교회에 나와서 맨 뒤 자리에 앉아 있다. 진짜 주기도문을 하는지 확인을 하는 것 같았다.

그 주간에 심방을 가니 반가워하면서 같이 기도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약3시간30분이다. 옆에 앉아 집사람은 졸고 있다. 요약하면 자기를 많이 배우기 못한 시골 출신이고 그래도 서울에 올라와 밥술이나 뜨는 성공을 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초청을 해서 移民을 준비할 때 미국에 오면 교회 나가야 되니까 창피하지 않게 교회 나가는 연습을 해서 오라는 부탁에 집 가까이 있는 교회를 일 년쯤 다니다가 移民을 오게 되었다.

도착해서 교회를 따라 나가니 한국에서 들어보지도 못한 사도신경을 예배시간에 한다. 그리고 주기도문은 하지 않는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도 모르면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목사님께 물었더니 무조건 순종하라고 한다. 아무도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려주지 않는다. 문제는 간단하다. 한국에서 다니던 교회는 침례교회이고 미국에 교회는 장로교회였다. 이 간단한 대답을 그 누군가 경청하고 친절하고 겸손하게 설명만 했다면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이 방황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음 주에 심방을 가니 어떻게 하면 그 흔한 가짜 집사가 아닌 진짜 집사를 할 수 있겠습니까? 물어본다. 성경을 세 번만 읽으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들이 셋 있는데 결혼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으면 이루어집니다. 한 석 달쯤 지난 후에 성경을 세 번 다 읽었다고 한다. 자기는 이제부터 진짜 집사를 해보겠다고 한다. 이번 주일부터 성수주일을 하고 십일조도 정확하게 하겠다고 한다.

그 후로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성경 한 시간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어느 날부터  새벽기도회를 나온다. 한두 번 나오다가 말겠지 했는데 계속해서 나온다. 하루는 무슨 걱정 있냐고 물었더니 “ 목사님 저는 딱 한 가지 기도제목 밖에 없습니다. 내가 회계를 보는 동안 목사님 배고프지 않게 하는 것.”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걱정도 되면서 보람도 있고 한편으로는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해에 아들 셋을 모두 결혼시키고 새벽기도까지 나가는 며느리를 보았다고 자랑한다.

新約聖書 히브리서4장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라고 했다. 말씀의 능력은 사람을 변화 시키는 지혜이다. 주일 성수하며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여 드리는 것, 그것이 바로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딱 한 가지 疑心(의심)을 들어 주고 天下보다 귀한 영혼을 구원했다. 오늘 교회의 문제는 한정 된 소리만 듣는 귀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新世代의 문제는 자신은 아프다고 소리를 치면서 남의 소리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웃을 사랑할 수 없다. 나는 우리교회는 작은 자의 작은 소리를 듣고 반응하는 교회이길 원한다. 그리고 분배하는 교회가 아니고 나누는 교회가 되길 원한다. 베드로는 닭 우는 소리를 듣고 회개하였다. 아무리 작은 자의 작은 소리라도 그것은 사람의 소리이다. 그리고 그 소리에는 생명이 있고 소망이 있고 치유가 있다.

요한계시록 1장에 보면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라고 했다. 성령의 소리는 때로는 작은 입을 통하여 우리에게 임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목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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