容恕(용서)

Published July 19, 2009 by 담임목사 in 목사님 칼럼

英 語로 forgive라고 한다. 國語사전에 죄나 잘못한 일을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덮어 주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덮어 두는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고 기억 속에서 상처를 지우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말씀을 전하면서 자주 “원수를 사랑하라” “용서하라”고 외치지만 스스로 돌아보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舊約聖書 창세기에 보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인 가인을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보호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창4:15) 그 후로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수없이 용서해 주셨다. 이런 影響(영향)으로 유대 사회에서는 세 번까지 용서하는 것이 관례처럼 통용되고 있었다. 때문에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베드로가 자랑스럽게  “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되지요”라고 묻는다.

이 질문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이다.” 곧 무한정으로 용서해야 함을 강조하셨다. 예수님께서 용서에 대한 교훈으로 마태복음18장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했고,

6장14-15절에는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셨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용서는 성도들의 선택이 아니라 義務(의무)라는 것이다.

처음 미국에 와서 갈 곳이 없어 LA 공항 대합실에 첫날밤을 지새웠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곳에 마중 나오기로 한 사람이 안 나왔다. 사연과 理由는 있었겠지만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세파에 묻혀 있을 뿐 용서란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숨 가쁘게 살아왔다.

그렇게 시작한 미국생활에 구세주가 나타나 같이 일하자고 한다.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준다 해서 믿고 나선지 하루 만에 3층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다행이 열어 준 1층 창문에 부딪치고 떨어져 팔 다리는 무사했지만 머리가 깨져 意識을 잃고 말았다.

깨어나 보니 병원 응급실이다. 피투성이가 되었고 12바늘을 꿔 메고 X-ray 사진 결과를 기다리는 같았다. 사장이 나를 응급실에 버려두고 간 모양이다. 치료비가 무서워 그 길로 도망 나왔다. 아무리 찾아도 사장은 만날 길이 없다. 한두 주일간이 지나자 말하기가 불편하다. 한 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병원에서는 아무 異狀(이상)이 없다고 한다. 지금까지 후유증 때문에 듣고 말하는 것이 불편하다.

꿈을 포기하여야 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오늘이 있는 것은 부모님의 기도 응답이라고 믿고 있다. 꾸짖거나 벌할 힘도 용서할 여유도 없이 그렇게 잊고 살았다. 요즘도 머리에서 욍하는 소리가 들린다. 때로는 전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다. 지금도 설교 원고를 이삼 십 번씩 연습을 해야 한다. 지금도 아침, 저녁으로 아무런 이유 없이 코와 목에서 피가 넘어온다. 지금도 나는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다. 다만 기억하지 않을 뿐이다.

사랑의 원자탄의 주인공 주 기철 목사님의 딸님이 두 오빠를 죽인 살인마 원수를 용서하는 아버지를 이해할 없어 많이 방황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고, 아버지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은 원수를 용서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이제 자신도 오빠를 죽인 원수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한다.

시무하던 교회를 떠나기로 했는데 회의 때마다 심한 말을 하는 집사가 있었는데 교회에서 신분을 해결하였다. 어떤 집사가 “목사님 그 놈 은혜도 모르고, 신고해서 취소해요”한다. 물론 전화 한 통화면 모든 것이 취소된다. 거친 세월을 많이 보낸 탓인지 전혀 미운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잘 양육하지 못한 미안함이 든다. 그리고 감사함으로 교회를 잘 섬겨 좋은 일꾼이 되기 기도한다.

人生古來 六十이라고 날이 갈수록 손과 발에 냉기가 더 해만 간다. 지난 두 주간 글을 쓸 수 없을 만큼 피곤하고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온 몸이 아프다. 그래서 나는 容恕를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라는 말씀과 같이 용서 받기 위해서다.

인생 살면서 수 없이 모르고 알고 지은 罪, 목회를 하면서 입힌 그 많은 상처들 용서 받기 위해 이제 그 무서운 짐을 내려놓고 용서를 생각한다. 그리고 남아 있는 날 동안 더욱 사랑하기로 다짐해 본다. “그대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 있거든, 그가 누구이든 그것을 잊어버리고 용서하라. 그때에 그대는 용서하는 것의 행복을 알 것이다. 우리에게는 남을 책망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 -톨스토이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

목양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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