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은 어디 있느냐?

Published August 29, 2009 by 담임목사 in 목사님 칼럼

이 말은 예수님께서 10명의 문둥이를 고쳐주셨는데 그 중 한 사람만 예수님께 와서 감사할 때 예수님께서 물으신 말씀이다. 예수께서 열 명의 문둥병자를 치료해 주셨으나 다시 돌아와서 감사를 드린 자는 사마리아인인 문둥병자 한 사람뿐이었다. 사마리아인인 문둥병자는 감사할 줄 알았기 때문에 육체적인 병 고침 뿐만 아니라 영적인 구원의 큰 은총을 받을 수 있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눅17:19)

우리 믿는 성도들은 구원의 은혜를 날마다 감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나의 생활 자체가 하나님 앞에 감사드릴 조건이고, 나의 존재 자체가 이미 감사의 조건임을 깨달아야 한다. 감사 없는 신앙생활은 거짓된 신앙생활이다. 그리고 감사는 더 큰 감사를 낳는다. 감사는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시95:2)

88 Olympic 끝난 후에 한국에 가니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 ‘Yankee go home’ 이다. 그리고 촛불시위를 통해서 군중의 소리를 모아 더 강하게 미국을 향하여 ’Yankee go home’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近來 들어 쇠고기 파동 때 다시 이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도 소고기가 몇 년산인지 모르고 먹는다. 광우병 같은 것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하얀 쌀밥에 쇠고깃국 싫어 먹어 보고 싶은 꿈을 앉고 감사하며 살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高速道路에 “Korea war Memorial highway” 라는 표시판이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관심도 없이 오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기독교 방송에서 초기 선교사들을 찾아 위로 하는 방송을 보면서 기억나는 이름이 있다. 六十여年 세월을 거슬러 지난 기억들을 되새겨본다. 그리고 이네 가슴 깊은 속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린다.

6.25 전쟁이 나던 해에 나는 사변동이로 사택을 북한군에게 빼앗기고 부엌바닥에서 태어낫다고 한다. 아버님이 시무하시던 교회 집사가 공산당이 되어 아버님을 감옥에 가두고 심하게 고문하여 죽었다고 가마니에 싸서 밖에 버렸다고 한다. 九死一生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오랜 기간 고생을 하셨다. 그 시절은 한국은 문둥병보다 더 심한 고난은 굶주림이었다.

식구는 많고 몸은 병들었고 청빙하는 교회가 없다. 어느 선교사의 소개로 타 교파 신학교에 청빙되어 가셨다. 그 때부터 흔하게 자주 듣던 “따울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애나 어른이나 장난삼아 부르던 이름이다. 눈은 파랗고, 머리털은 노랗고, 키는 엄청 크고, 얼굴은 하얀, 그 사람을 처음에는 무서워 도망 다니면서 ‘따울이’ ‘따울이’ 소리치며 따라다녔다.

고아원의 단칸방에서 온 식구가 아침에는 보리밥, 점심에는 강냉이 죽, 저녁에는 수제비로 살아가던 시절, 어느 날 이 따울이가 우리를 찾아와 서투른 우리말로 “사모님 부지런 하시니 집 한 칸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하숙이라도 처서 아이들 공부라도 시키시지요.”라며 대학 옆에 방이 여섯 개나 있는 집을 장만해 주셨다. 그것은 우리 식구를, 좀 과장된 표현으로 말하면 지옥 같은 삶에서 천당 같은 삶으로 바꾸기에 충분했다. 그 은혜가 하늘과 같다.

어느 수요일 방학기간이라 하숙생들이 모두 집에 가고 양식이 떨어져 저녁거리가 없다. 다행이 밀가루 조금 남은 것에 호박을 썰어 넣고 수제비 끊어 식사를 기도를 하는데, 다음 날 다섯 남매의 기성회비와 등록금이 합계 삼천이백이 필요하다. 아버님이 기도를 하시면서 준비해 주신 줄로 믿고 감사하다고 하신다. 한참 수요저녁 예배를 드리는데 그 따울이가 들어온다. 예배를 마치고 따울이가 하는 말이 다른 교회를 가던 중에 신호등에 대기하고 있는데 서대전 교회 가서 삼천이백을 주라는 음성을 듣고 왔다는 것이다.

저는 오래 동안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 기도가 참으로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만 믿고 살아왔다. 그러다가 그 따울이의 고향 미국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 교회에서 어느 할머니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주일 날 교회 오시는데 큰 봉지 하나를 들고 오신다. 교회 문 앞에 큰 통에 넣고 예배당으로 들어가신다. 무엇인가 호기심에 들여다보니 오래 보관 할 수 있는 식품들이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고서야 그것들이 남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먹어야 할 것을 안 먹고 가지고 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할머니 집을 몰래 따라가 보았다. 순간 따울이가 우리에 베푼 모든 것은 그들의 피와 살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도 그들의 피와 살은 지구촌 구석구석에 배고파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있다. 나는 주님 앞에 회개하였다. 민족적 국가적 위기에 처한 우리 강산에 미국 청년 4만 여명 피를 뿌려 우리를 그 위기에서 구해주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새벽마다 그 길을 지나며 그들에게 감사하고 그들의 위하여 기도한다. 그래도 어떻게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있겠는가? 생명 있는 동안 잊지 않고 그 자손을 위하여 기도하리라 다짐해 본다.

시무 하던 교회에 한국에서 공부하러 온 군인들이 출석하고 있었다. 대부분 위관 급인데 한번은 영관급과 장군이 동시에 교회 출석을 하고 있었다. 장군아 무엇이 다를까 유심히 관찰하던 중에 영관 장교는 ‘할 수만 있다면 더 많이 해택을 누려라’라고 하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돌아다닌다. 그러나 장군은 ‘군인의 정신과 자세를 지키고 할 수 있으면 도움을 받지 말라.’고 한다. 오늘도 기도 하는 가장 큰 제목은 주여, 나눌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축복해 주옵소서.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 도다.” (시편37:26)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신명기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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