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옷

Published September 5, 2009 by 담임목사 in 목사님 칼럼

나는 위로 누이가 넷이 있고 아래로 남동생이 둘이 있다. 바로 위에 누이가 나보다 두 살이 많고 동생은 세 살이 적다. 위에서 내려온 누이 옷을 항상 어머니가 수선을 해서 내 옷으로 만들어 주셨다. 어릴 때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입었지만 사춘기에 접어  들면서 여간 창피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입고 나면 더 이상 입을 수 없어 동생은 늘 새 옷만 입었다. 내 기억으로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새 옷을 입어보지 못한 것 같다.

요즈음 집사람이 동내 cafe에 자주 가서 헌 옷을 사온다. 소위 Brand maker라는 polo를 사와서 입으라고 윽박지른다.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여자 옷인데 자꾸 입으라고 하여 여간 곤욕스러운 것이 아니다. 속으로 참 사람 팔자 사납다는 생각이 든다. 이 나이 들어 아직까지 헌 옷을 입어야 하니, 그런데 입다 보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입고 외출도 한다. (참고로 cafe는 헌 물건을 파는 상점이다)

사춘기를 보내면서 언제쯤 내 몫으로 된 새 옷을 입을 수 있을까? 하는 꿈을 꾸며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새 옷을 곱게 차려입고 짝사랑하는 소녀 앞을 당당하게 걸어보는 상상을 하곤 했다. 어느 날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는 셋째 누이가 집에 와서 나에게 같이 나가자고 한다. 따라 가니 어느 양복점으로 들어간다. 양복과 외투를 맞춰 준다고 한다. 셋째 누이가 첫 봉급 받아서 삼 개월 할부로 나에게 꿈같이 새 옷을 장만해 주었다.

아무 볼 일 없이 새 옷을 차려 입고 시내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던 시절이 금세 같은데 벌써 사십 여년이 지난 아주 옛날 추억 속에 아물 거린다. 그 시절 훈련이 잘 되어 지금도 신발이며 옷을 십년은 보통 입고 신은 다. 집사람이 사온 헌옷을 입고 있는 나를 보고 어느 성도가 목사님, make 옷 입으셨네요! 한다. 속으로 웃고 만다. 혼자 말로 ‘나는 헌 옷 팔자인가?’ 생각하면 마음이 씁쓸하다. 그래서 그때마다 누이가 해준 새 옷의 감격을 잊지 못하고 그때로 돌아가곤 한다.

성경에 옷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그 중 하나는 아간이 장막 안에 감춘 시날산 외투 한 벌이 있다. 여호수아 7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아이성 전투에서 비참한 패배를 하였다. 얼마나 비참했던지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고 했다. 싸움에 진 이유는 간단했다. 21절에 보면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아간’이 설마 이것쯤이야 하며 감춘 외투 한 벌이 백성들의 마음을 녹아 물같이 만들었다. 목회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오래 동안 금식도 하고, 공부도 하고, 연구도 하고 내린 결론은 아간과 같이 외투 한 벌 때문에 눈이 어두워 성도들의 마음을 물같이 녹아내리게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새 옷을 입고 싶은 욕망을 떨칠 수 없다.

어쩌다가 집사람을 따라 백화점에 가면 새 옷을 원 없이 만져보고만 왔지 한 번도 사본 일이 없다. 어느 늦은 가을날 백화점에 따라가니 시날산 외투 같이 빛나는 겨울 외투가 눈에 들어온다. 한 번 만져보고 먼발치에서 한참동안 바라만 보다가 돌아왔다. 그런데 초겨울로 접어들면서 날씨가 추워지자 앉으나 서나 누우나 그 놈에 외투가 눈에 아롱거린다. 몇 번이고 가서 만져 보기만 하고 돌아오곤 했다. ‘사탄아 물러가라’ 구시렁대며 돌아섰다.

그 해 Christmas Eve에 어느 성도가 선물이라며 내민 shopping bag에 보기만 하던 외투가 들어있다. 어떻게 알고, 혹시 내가 잠꼬대 하는 소리가 들렸나 생각하며 그 해  겨울 무지하게 많이 내리는 눈과 그 추운 새벽길을 따뜻하게 오가며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Hamburger 하나를 먹으며 마음 한 구석이 절어 오는 것은, 목사가 외투 한 벌에 시험당하지 않도록 염려하며 오늘도 땀 흘리며 일하는 성도들 때문이다.

이제 나이 들어 간절히 바라는 꿈은 주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해 주신 새 옷을 입는 것이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나는 그 흰옷에 소망을 두고, 그 흰옷을 바라보며 흰 옷을 팔아 시날산 외투를 사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기 위해 오늘도 새벽을 깨워 주님 전에 나가 기도한다.

그리고 늘 기억한다. 그래도 나에게 새 옷을 입혀 준 손길들, 그리고 기도한다. “주여, 복을 주옵소서. 그들의 길을 子孫萬代까지 평탄케 하옵소서.“ 주여, 나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함께 하셔서 세상 끝 날까지 시날산 외투, 그리고 金銀 바라보지 않게 은혜에 은혜를 더 하여 주시옵소서. 그 은혜는 나이 들어 노년을 걱정하는 나에게 엘리야의 까마귀와 사르밧 과부 집에 항아리를 보여 주시며 말씀하신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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