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소

Published October 22, 2009 by 담임목사 in 목사님 칼럼

어느 기독교 신문에 ‘당신은 몇 살까지 살까?’라는 설문에 대답을 하니 99살까지 살 수 있다고 답이 나왔다. 나는 ‘바로 어떻게 살지?’ 라는 걱정이 앞선다. 장수의 복을 누리는 것은 좋지만 은퇴하고 30년을 뭐먹고 사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잠을 설치고 새벽기도를 나가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기도를 했다. ‘하나님, 장수의 복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기왕이면 먹고 살 것도 주시지요.’라고 기도를 했다.

그런데 그 주일날 집사람이 먼저 집으로 가라고 한다. 다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온 집사람이 좋은 집을 보고 왔는데 사겠다는 것이다. 웃고 말았다. 왜냐하면 불가능한 꿈이기 때문이다. 나는 credit이 전혀 없다. 물론 Bank account 도 없다. 그래서 집사람이 마음에 상처나 받지 않았으면 하고 있는데 은행에서 자꾸 이런저런 서류를 제출하라고 한다.

몇 번 해주다가 더 이상 못하겠다고 했는데 그 다음 날 loan이 approval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Closing 하고 이사와 이것저것 정리하며 모든 것이 우리에게 합당한 집이라는 생각이 듣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셨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뿐이다. 앞집, 옆집, 뒷집, 건넛집 모두 노인뿐이다. 얼굴만 보이면 자꾸 이리 오라고해서 문틈으로 밖을 볼 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다.

좀처럼 한가하게 차 한 잔을 들고 창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니 가을의 향취가 느껴진다. 노랗게, 붉게 물든 수풀사이로 다람쥐며 사슴이며 분주하게 오가며 겨울잠 준비에 한창이다. 집사람이 주워 온 아주 작은 밤알이 입안에 구수하게 감아 돈다. 그 구수함에 취하여 지나 온 歲月을 돌이켜 추억하니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색 바랜 사진 속에 부모님이 가슴속에 스며든다.

이 편안함을 함께 하지 못한 서러움과 아쉬움이 세월을 돌이켜 뒤돌아가고 싶어진다. 혹이 이 편안함에 취해 있는 나를 新約聖書에 나오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이야기처럼 걱정스럽게 바라보시며 안타까워하시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이 앞서 자신을 부추긴다. 목회하며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린 기억이 있고,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하고 상관없는 일들을 경험한 탓에 또 하는 생각에 짐도 풀지 않고 살아온 세월이 불안하게 하지만 이제 머물고 쉬고 싶다.

신약성서 고린도후서5장1-절에 보면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라고 했다. 이 말씀 때문에 나는 육신의 장막이 무너질 때마다 나는 영원한 처소에 대한 그리움이 소망으로 변함을 느끼곤 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14장2-3절에 보면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한 마디로 하나님 나라에 우리 처소를 마련해 두시고 때가 되면 다시 오셔서 우리를 데리고 가셔서 우리와 함께 사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영원히 머물 곳, 하늘나라 處所(처소)에 대한 확신이 막연한 것이면 두려울 수밖에 없다. 목회를 하다 보면 힘들고, 괴롭고, 난처할 때가 종종 있다. “목사님, 암이래요. 얼마 살지 못한데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정말 난감하기 그지없다. 살수 있다고 해야 하는 건지, 죽으면 천당에 간다고 해야 하는 건지? 그저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정말 먹는 것조차 힘든 시절, 연세 드신 집사님께서 앞마당에 농사지어 금요성경공부를 오실 때마다 열무며 각종 체소를 가지고 오셔서 내 차안에 넣어 놓고 하신다. 하루는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오시지 않아 parking장에 나가보니 차가 있고 trunk가 열러 안에 각종 체소가 가득히 채워져 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안 계셔 교회로 들어오니 화장실에 인기척이 있어 가보니 그곳에 앉아 “목사님, 공부합시다.” 한다.

결국 병원에 가서 진찰하니 ‘brain cancer’라며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그 절망감, 두려움을 감추고 하루 한 번씩 심방을 가면 다른 사람을 만나면 이상 소리를 하시는데 나만 만나면 다 기억하시고 말씀을 하신다. 그리고 참 평안해 하셔서 내 마음도 평안했다. 지금도 집사님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목사님, 이제 빨리 나서 퇴원하면  교회 사역자로 남은 인생을 살겠습니다.”

어느 토요일 늦은 밤에 설교 준비를 마치고 기도를 하다가 잠간 잠이 들어 꿈을 꾸었다. 온 교회 성도가 다 같이 어디론가 가니 하얀 breaker가 앞을 가로 막고 서있다. 그리고 그 너머에 하얀 옷을 입고 선 사람이 보인다. 모든 성도들은 서서 손을 흔들고 나와 집사님만 그 하얀 breaker를 넘어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집사님의 손을 그 하얀 옷을 입는 사람 손에 넘겨주고 다시 돌아서 성도들이 있는 곳으로 왔다.

주일예배를 드리고 온 성도가 다 같이 심방하여 예배를 드렸다. 집에 들어오니 소천 하셨다고 전화가 온다. 천국황송예배를 모두 마치고 집사님 쓰시던 성경 속에 친필로 써놓은 한 구절의 말씀이 하늘나라 주님이 마련한 처소에 계심을 확신하며 위로가 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창가에 앉아 한가로이 밖을 바라보며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신가? 육신의 장막인 처소에 주님이 함께 하시는가?” 이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감사함에 찬양을 불러본다.
1.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2.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 속에 이뤄지니 날로날로 가깝도다 3.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골1:2-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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