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징기

Published October 29, 2009 by 담임목사 in 목사님 칼럼

한국의 유명한 농구 감독이 선수 시절 아까징기를 배에 바르고 배탈이 다 나았다며  시합에 나섰다는 글을 잃으면서 까마아득한 옛날이야기를 생각해 냈다. ‘아까징기’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기억하고 아는 사람 지금도 있나 싶었다. 아마 그리 흔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옛날 어릴 때, 머리가 아파도 바르고, 배가 아파도 바르는 萬病通治약이었다. 또 하나 萬病通治약으로 딘데 바르는 연고가 있었다. 아마 vaseline이 아닌가? 싶다. 그 시절 그것들은 우리에게는 요술방망이 같은 것이었다. 웬만한 병은 그것으로 다 고치고, 神秘스럽기까지했다.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이니 네다섯 살 때 일이다. 당시 이빨이 아프면 치과에 가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던 때이다. 이빨이 아파 울면 어머니가 입 몸에 손을 대고 기 도해 주시 것 외에는 다른 치료가 없었다. 소금물로 입안을 한 번 헹구는 것이 고작이다. 그렇게 아파하다 잠이 들면 아침에는 웬만해지곤 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 흐르자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아프다. 밖에 나가 놀 때는 말짱하다가 저녁 먹고 예배드리고 잠자리에 들 때면 아프기 시작한다. 우리 집에 객지 나가 직장생활을 하다가 집에 와 있는 나이 웬만히 든 누이가 하나 있었다. 같은 방에 자는데 아프다고 칭얼대면 나를 방 밖으로 내 쫓는다. 그러면 이네 집안을 소란스러워진다. 주무시던 아버님이 나오셔서 누이를 혼내고 겁에 질러 나는 아프다는 소리도 못하고 방구석에 쭈그리고 잠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집가 사는 큰 누이네 집에 간다며 나간 둘째 누이가 몇 칠 만에 돌아왔다. 짐 보따리를 푸려는데 아버지 보약이라며 비타민도 있고, 소화제도 있고,  이런 저런 상비약을 가지고 왔다. 큰누이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얻어 왔는데 문제는 그 약 속에 아까징기였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유성기 바늘 공장이 있었는데 바늘을 주어다가 많은 용도로 사용했다.

몇 칠 후에 이빨이 아프다. 참다가 하도 아파 자다 말고 일어나 울고 있자니 누이가 일어나 방 밖으로 쫓아내지 않고 치료를 해준다고 불을 켜고 다른 누이를 깨워 불을 들게 하고 내 입을 벌리고 아까징기를 바르고 유성기 바늘로 아프다는 이빨을 마구 찌른다. 아무리 악을 쓰며 울어도 인정사정없이 찌른다. 한참 찌르다보면 나는 좋은 말로는 입신한 것이고 다른 말로는 기절 아니면 초죽음이 되어 지쳐 잠이 들곤 했다.

그 후로는 웬만하면 아프다는 소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여섯 살 정도니 저항할 힘도 의사 표시할 능력도 없고 어머니는 거의 매일 집을 비운다. 그때부터 나는 공포 속에 하루하루를 숨죽이고 살아야만 했다. 아픈 이빨을 치료한다며 아침저녁으로 아까징기를 바르고 유성기 바늘로 찔러댄다. 저항할 수 없는 어린 마음에 싸여 가는 분노는 극에 달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가정예배를 드리는데 성경을 돌아가면서 읽는다. 예배가 끝나면 자야하는데 오늘은 무사히 잘 수 있을까? 그때 그 불안한 마음과 공포는 지금 생각해도 등에 땀이 난다. 어느 날 성경을 읽은데 예수님이 아픈 사람을 고쳐주는 말씀이 계속된다. 속으로 매일 기도했다. ‘예수님, 내 이빨 좀 치료해주세요’ 몇 날, 몇 칠을 기도해도 계속 아프기만 하다.

그 후로 나는 누이가 빨리 다른 곳으로 가게 해달고 정말로 열심히 기도했다. 얼마 안가서 누이가 보이지 않는다. 며칠 후에 친척들이 많이 와서 잘 차린 저녁을 먹고 웬 남자를 천장에 매달고 다림이돌 방망이로 마구 때리고 ‘처녀 도둑이라고’ 소리를 치며 야단을 치더니 모두 돌아가고 그 다음 날 이른 아침에 그 남자가 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서는데 어머니가 울고, 누이도 울면서 대문을 나간 후에 한 동안 누이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정말 행복한 날을 보내게 되었다.

한글을 깨우치고 스스로 성경을 읽으면서 복음서에 예수님께서 웬만한 병은 다 고치셨는데 이빨을 고치셨다는 말씀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기도 응답으로 알고 있었는데 철이 들어 알고 보니 누이가 시집을 간 것이었다. 그리고 그 누이는 노처녀, 영어로 old miss Hysterie가 아주 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공포와 두려움으로 인하여 30살이 넘도록 치과를 가지 못했고 잠을 들면 자율신경이 마비되는 현상으로 오래 동안 고생을 했다.

나이 들어 요즈음 이빨 때문에 여간 곤욕스러운 것이 아니다. 성한 이빨이 하나도 없다. 빨리 먹으라고 윽박지르는 집사람의 성화에 음식물을 그냥 넘긴다. 소화가 안 되고 속이 아프다. 치료비가 엄청나게 들것이라는 생각과 그때 그 불안한 마음 때문에 오늘 내일 미루며 치과를 못가고 있다. 며칠 전에 건강진단을 하면 피를 뽑는데 바늘 공포가 되살아나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래서 차라리 아까징기를 마르던 시절이 그립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바르기만 하면 나았던 그 신비로움, 그 신비로움을 다시 한 번 경험하고 싶다. 어찌 그렇게 신비로울 수 있을까? 우리에게 구호물자를 보내준 나라에 와 살면서 그  이유를 깨우칠 수 있었다. 보내는 자들의 기도와 사랑과 베푸는 자들의 겸손이었다.

아무 상관이 없는 우리를 위한 그들의 간절한 기도와 사랑이 그 약에 담겨 신비로운 일을 행한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그 사랑이 그립고 그 기도가 간절하다.

新約聖書 마태복음22장37-40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라고 했고

마가복음12장30-31절에도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했고

요한복음 15장10-14절에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믿고 순종한 저들의 사랑과 기도는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어 죽어가는 우리에게 사랑과 긍휼로 다가와 신비로운 아까징기의 역사를 이루었다. 그래서 그 시절이 간절하게 그리워지는 가을날 서로 사랑하는 자들이 모인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간절하게 기도한다.

목양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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