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number one (빛 진자1)

Published January 19, 2010 by 담임목사 in 목사님 칼럼

아주 큰 굴뚝이 보이는 왼쪽 길을 따라 내려가면 숲속사이에 예쁘게 지어진 apt가 있고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조그마한 냇물이 있고 절경인 냇가에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살며 오가던 추억이 새롭다. 근 10년이 지나 다시 그 길을 따라 내려가다 그 시절이 생각나 돌아보니 그때 그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향기에 취해 멀리 나가 있는 아들이 그립니다.

힘든 사춘기를 보내고 대학에 간 아들이 방학이라 데리러 오라는 전화가 와 Parking장에 들어서니 양손에 운동화 여섯 짝을 마치 보물처럼 들고 서 있다. 중고등학교를 다 마칠 때까지 새 운동화 한번 사주지 못하고 입은 옷까지도 세탁소하시는 권사님이 보내 주는 헌옷도 마다하지 않던 녀석이 운동화가 恨이 되었던지 용돈 조금 준 것으로 신발만 사들인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

그 짠한 마음이 추억의 길을 오가며 아들 생각에 나를 팔아 사고 싶은 아들에게 빛 진자 되어 오늘도 그 아들을 주님께 의탁하며 눈물로 기도한다. 어느 월요일 오후에 학교에서 돌아 온 아들 녀석이 아빠! 우리 엄마 없는데 hamburger 먹으러 가자고 한다. 아마 지난 주말에 준이라는 동내아이를 봐주고 좀 후하게 용돈을 받은 것 같다. 우리가 살던 apt 언덕 아래로 내려가면 Mcdonald가 있다.

늘 운전석 옆에 앉아 order할 때면 같은 반 친구가 있어 창피하다며 머리를 돌리고 있다가 99c에 sale하는 big mc를 사 식탁에 앉아 너무나 맛있게 먹던 모습이 눈가 선하다. 그런데 그 날은 차에 내려 안으로 들어가 큰 소리로 “Two number one”하며 order를 한다. 그 모습이 얼마나 당당하고 행복해 보이든지 아마 주님의 나라에 가서도 잊지 못할 아름다운 기억이다.

아들 녀석하고 둘이 table에 앉아 hamburger를 먹으며 느낀 그 평안함, 그 행복 아마 다시는 느낄 수 없는 먼 추억이 되었지만 나는 오늘도 그날을 기억하며, 그날을 기다리며, 그날을 원해서 간절하게 주님께 구하여 본다. 자기는 아버지같이 살지 않는다며 아버지가 있는 쪽을 바라보기조차 싫어하는 아들 녀석에게 이 아비에 마음이 전해졌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나도 아버지같이 살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고 애써 보았지만 별 수 없이 그대로 사는 것 같아 그 아들이 애처롭고 애달파 가슴이 쓰리고 아프지만 그저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구할 뿐 또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또 그렇게 한 해를 기다려간다. 그리고 그 기다림 속에 어떻게 하면 내가 아버지에게 유산으로 받는 ‘케리’라는 개를 아들에게 물려 줄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며 먼 기다림 속으로 들어간다.

연말이 되면 늘 마음이 평안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견디기 힘든 일을 처리해야 하는 과정에 스스로 입은 상처가 때로는 심한 시험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어느 연말에 장로님이 찾아오셨다. 부임한지 2년 만에 처음으로 내년에 목사님 사례비를 올려 드려야 하는데 물가상승률에 의하여 4%를 인상하겠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아이구! 장로님 교회 형편도 어려운데 제가 시무하는 동안 사례비는 동결하겠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순간 감정으로 내뱉은 말의 대가, 목사가 멋 좀 부리고, 자존심 좀 지키자면 가족이 감당해야 할 일들은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한 참 사춘기에 젖 짜는 洋(양)을 한 마리 키웠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젖을 짜서 콜라병에 담아 이 집 저 집 배달을 하고 학교에 가곤했다. 그 시절 모두 어려운 때인지라 여간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좋은 풀과 나뭇잎을 차지 할 수 없었다. 때문에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억척스럽게 일을 했던 것 같다.

사춘기에 늘 불만이 마음에 가득했다. 왜냐하면 열심히 일한 소출의 분배 때문이었다. 돼지를 키워 250근이 나가면 팔아 나도 양발이라도 하나 주겠지 기대하면 언제나 내 몫은 없었다. 대학 다니는 누나 옷값으로, 학교를 멀리 다니는 동생 자전거로, 서울에 큰 조카 시계로, 아버지 보약으로 때로는 등록금으로 그래서 내 몫은 언제나 없었다. 가슴으로 속을 끓이면서도 불평 한 마디 못하고 그냥 일만 열심히 했다.

우리가 살던 이웃들은 모두 목사나 장로였다. 그 중 한 장로님은 만나기만 하면 목사 아들이 이렇고 저렇고 좀 거시기 한 말로 일본순사 같은 장로다. 양을 키워 첫 젖이 나온 날이다. 뜨거운 물에 담아 끊어 콜라병에 담아 첫 번째는 아버지, 두 번째는 언덕 아래 사시는 목사님, 그리고 그 옆에 사는 목사님, 그리고 언덕 넘어 있는 큰 누이 집,
몸이 약하다는 동생, 그리고 한 병 담아 그 일본순사 같은 장로님께도 한 병을 드리라는 것이다.

그 소리에 나는 오래 참았던 울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쳤다. “엄마,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일본순사 같은 장로는 왜 줘요?” 내심 속으로 “나는 한 모금도 안주고” 라는 생각을 하면서 악을 썼던 것 같다. 어머니의 대답은 아주 간결하였다. “그 장로님도 기름 부름 받은 주의 종이다. 섬겨야 한다.” 그러시면서 예수님도 우리 같은 죄인을 섬기려 목숨을 주셨다고 하신다.

하루 이틀이 아니고 근 한 달을 새벽마다 우유를 배달했다. 우연히 장로님을 만났는데 얼굴이 환해지셨다. 뿐만 아니라 말씀도 달라지셨다. “아이구, 작은 목사, 똑똑하게 생겨내 부지런도 하지” 그리고 가큼 용돈도 주시면서 인자한 얼굴로 고맙다는 인사까지 하신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6:31)는 말씀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는 말씀의 교훈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목회하는 많은 이민교회 목사들이 새벽기도를 한다. 그 새벽에 나가 자기 복달라고 기도하는 목사는 없다고 생각한다. 전 교인들과 아이들 이름까지 불러가며 기도하는 것은 그들에게 복을 주고, 번성케 하고, 건강을 위하여, 사업을 위하여, 직장을 위하여. 이런 저런 문제를 가지고 피땀 흘려 기도한다. 그런데 나도 사람인지라 가큼 우유를 일본순사 같은 장로님께 드리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울분을 토했던 마음이 들어 섭섭할 때가 있다.

그 섭섭한 마음이 주님 앞에 설 때에 받아야 할 의의면류관, 승리의 면류관보다도 더 크게 보여 시험에 들 때도 있다. 그래도 ‘케리’는 찾아와 나를 위로한다. 검정양복이 10년 이상 되어 하나 살 요량으로 백화점을 왔다갖다 하며 집사람 눈치를 보며 연말을 보내는데 어느 눈이 많이 오는 날 집사님 한 분이 전화를 하셨다. 다 늦은 저녁에 우리 집에 온다는 것이다. 내가 백화점에 보아둔 검정 양복을 손에 들고 집으로 들어선다. 구역에서 연말 보너스로 주는 선물이라고 한다.

사람인지라 별수 없나보다 섭섭한 마음이 흰 눈같이 녹아내린다. 돌아보니 지난 한 해도 주님의 은혜로 부족함 없이 넉넉하게 살았다, 아버지 있는 쪽을 바라보기조차 거부하는 아들 녀석에게도 이 세모의 추위에 ‘케리’가 찾아가 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못해 애절하다. ‘Two number one’ 을 외치며 당당해 하던 그 마음을 가지고 다시는 당당하게 ‘Two number one’을 외치지 않아도 될 인생을 살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날 동안 나를 사랑하는 성도들을 위해 새벽을 깨워 기도하리라 다짐해 본다.

목양실

No Response to “Two number one (빛 진자1)”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