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 (빛 진자2)

Published February 27, 2010 by 담임목사 in 목사님 칼럼

이내 돌아오리라 무작정 나선 길이 三十 年 客地(객지)의 客이 되어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인생살이를 하나씩 뒤돌아 정리하자니 오래전 약속을 지키지 못한 洞內 사거리 모퉁이 구멍가게 아줌마가 생각난다. 급하면 달려가 푼돈이나 融通(융통)하여 쓰던 가게의 구수한 사투리로 “총각, 末日(말일)까지는 줘야 혀”하던 주인아줌마, 그런데 그 末日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떠나 오랜 세월을 보내고, 어느 해인가 구멍가게를 찾아 칠천 원을 돌려주고자 했는데 흔적조차 없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그 흔적이 歲月(세월)속에 묻혀 잊어지지 않고 가슴 깊은 곳에 남아 있어 아주 가큼 생각나게 하는 것은 오래 동안 서로 信賴(신뢰)속에 나눈 사랑의 힘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더욱 그리운 것은 시골 동내 교회 목회를 하며 한 성도 한 성도가 너무나 귀하고 아쉬워 애절하기에 그 구멍가게 사연 속에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가 애달파 오늘도 창가에 앉아 소복이 싸인 하얀 눈을 바라보며 빛 진자의 마음을 달래본다.

군에서 제대를 하고 고향에 돌아가니 오래 전에 은퇴를 하신 아버지 목사님이 집에 주일 예배를 드리고 계신다. 남에 교회 가서 주일예배 드리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것인지 알게 된 이제야 아버님의 心情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때는 그렇게 짜증스럽고 싫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 귀하고 그립고 애절했다. 어느 눈이 많이 내린 겨울날 주일 아침이었다. 오늘은 누가 오나 창가를 바라보고 서있는데 韓服(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老夫婦가 좁은 논두렁길로 들어선다.

칼 같은 추위에 한 시간 가까이를 걸어 예배를 드리러 오시는 査丈(사장) 어른이시다. 얼마나 귀하고 감사하지 나는 순간 빛 진자가 되었다. 아들이 병원을 개업하여 이사를 가시기 전까지 매주일 오셨다. 언제가 휴가를 나와 누나 집에 들어서니 보채는 손녀를 등에 업고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 하시던 모습이 아직까지 눈가에 선하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이웃나라 월남 전쟁터에 보내고 며느리 혼자 시부모 모시고 병원에 출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애달파하던 老夫婦의 눈빛은 늘 격정적이었다.

그 아들이 병들어 돌아와 수술할 때 고통스러워하던 깊은 주름진 얼굴은 생각할 때마다 죄스러움 금할 수 없었다. 바보같이 살았다는 한 마디로 당신의 삶과 목회를 溯考(소고)하시는 오갈 곳 없으신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마음은 돈을 주고 사서라도 데려다 채우고 싶은 간절함에 살이 녹고 뼈가 싹은 아픔이라 멀리 도망가고 싶은 때, 老夫婦는 우리에게 기쁨이었다. 그리고 나는 멀리 도망도 가지 못하고 매일 매일 살이 녹고 뼈가 싹은 기다림의 울타리에 갇혀 바보스러운 광야의 여정 속에 가끔은 그때 그 기쁨을 그리며 소망하며 지나가고 있다.

어느 봄날 韓服을 곱게 차려 입으시고 老夫婦가 길을 나선다. 어디 가시냐고 물으니 고향으로 춘향제 구경을 가신다고 하신다. 바로 동내 사거리 구멍가게로 들어가 돈을 좀 융통해 기차역까지 택시 타시고 자장면 사드시라고 손에 쥐어드리곤 했다. 한번은 인사차 갔더니 나를 알아보시지 못하신다. 마음이 찡하여 돌아서는데 누이가 한 마디 한다. “저 어른의 세상에서 가장 큰 돈을 자네 결혼 때 쓰셨다.” 아마 결혼식에 扶助(부조)를 많이 하신 것 같다. 쑥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서로 자기만 위하라고 아수성치며 살아가는 世上事에 사람 냄새 풍기는 감동을 느끼며 돌아서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작은 감사가 더 큰 감사를 낳은 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닫는다. 골로새서 3장 17절에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고, 데살로니가전서5장18절에는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고, 시편50편23절에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했다.

죄인과 의인의 차이는 죄인은 불평하고 의인은 감사한다는 것이다. 마태복음18장23절 이하에 보면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종이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을 만나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이라고 했다. 참고로  한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이다. 일만 달란트는 6천만 데나리온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것은 31절 이하의 말씀이다.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윗은 감사를 시편8편4절에서 “사람이 무엇이 관대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 관대 저를 권고하시나이까?”라고 찬양하였다. 나는 이 감격의 찬양을 부르며 감사함에 오늘을 호흡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귀하고, 그립고, 애절한 성도를 만남의 기쁨을 형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해어짐에 살이 저미도록 아프고 뼈가 녹아내리도록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감사해야할 査丈(사장)어른과 구멍가게 아줌마의 신뢰가 가슴 깊은 곳에 추억으로 남아있어 즐겁고, 또 내일이며 만나야 할 내 사랑하는 성도들 생각에 기뻐 설레이며, 이 밤도 빚 진자 되어 꿈속에 주님을 갈망하며 잠을 청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감사하고 감사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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