素望(소망)

Published April 5, 2010 by 담임목사 in 목사님 칼럼

처마 끝자락에 고드름이 녹아떨어지며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니 앞마당 풀잎이 살짝 고개를 내밀어 인사를 한다. 모처럼 그리워 애달파 하는 곳에서 들리는 소식이 나를 더욱 애달프게 한다. 셋째 누이가 혈액 암으로 투병중이라고 한다. 전화를 하니 “김 목사, 나 괜찮아, 나이 들어오는 거야” 한다. 걱정이 앞선다. 잘 견디고 이겨야 할 텐데, 사순절 새벽을 깨우며 더욱 간절하게 구하여 본다. 예수님께서 그 병실에 찾아가 함께 하여 주시길.

소망이란 어떤 일을 바란다는 뜻인데 바라본다는 것은 마음속에 소망을 품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바라보는 자에게 성령의 역사를 베풀어 주신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면 젊은이에게는 환상을, 늙은이에게는 꿈을 주겠다고 하셨다. 환상이라는 것도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그 꿈과 환상을 현실이 되도록 역사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오늘도 주의 전에 나가 주님을 바라본다. 그리고 간절한 소망을 아뢴다. 누이를 치유해 달라고.

사순절을 넘어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고난을 넘어 부활의 영광을 바라본다. 그 부활을 가슴에 담아 소망을 간직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나누어 보낸다. 히브리서 11장1절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다.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지려면 아직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아도 다 이루어진 상태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신, 문둥이 고치신, 손 마른 자를 고치신, 중풍병자를 고치신, 혈루증 앓는 여자를 고치신, 두 소경을 고치신,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고치신,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살리신, 떨어진 귀를 붙이신 주님의 능력이 내가 바라는 소망 가운데 이루어질 줄을 믿는다. 이것은 그냥 막연한 소망이 아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는 말씀의 능력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이루어짐을 믿기 때문이다.

머리가 아픈 자, 허리가 아픈 자, 가슴이 아픈 자, 배가 아픈 자, 각양각색의 질고를 지고 고난당하는 성도들을 보며 나는 이 믿음을 가지고 치유의 소망을 가슴에 품고 새벽을 깨우며 주님을 바라본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나타나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미래를 바라보며 마음에 그 영상을 그리라는 뜻이다. 나는 이 말씀을 붙들고 육신의 고난을 넘어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기 원한다.

나는 누이에 대한 어릴 때 기억이 별로 없다. 희미하게 생각나는 것은 안 간다고 우는 누이를 아버지가 혼내고 그렇게 돌아선 누이를 보내고 하염없이 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이다. 생전에 어머니가 그 딸 애달파 하며 기도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그 간절한 기도가 지금 누이의 삶속에 진동하고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이 고난은 또 지나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보약이라도 지어 보내야 하는 아쉬움과 애절함이 가슴속에 녹아내린다.

‘Burce Larson’이 쓴 ‘공포를 넘어서’라는 책에 부활의 한 이야기가 있다. 유고슬라비아의 한 판사가 감전 사고로 인해 죽었다. 그 동네에는 시체를 공동묘지에 있는 시체 안치소에 24시간 두었다가 묻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 판사의 시체도 안치소로 옮겨졌다. 그런데 그는 한밤중에 시체 안치소에서 다시 살아났다. 그는 너무 기뻐서 가족과 친구들의 집을 찾아다녔는데, 그를 보고 아내와 여동생을 포함한 여섯 명이 기절했다고 한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장사 지낸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이 놀라운 소식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의 입을 통해 골방에서 예루살렘 다락방으로, 오순절 성령 강림에서 이방 땅 안디옥과 로마로, 이 놀라운 이야기는 유럽을 휩쓸고 신대륙 아메리카로,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등 온 세계에 퍼져 나갔다.

그리고 이 복된 소식은 오늘 우리에게도 들려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무서워 떨며 기절도 하고, 두려워 문을 잠그고, 의심 속에 자신을 가두며 슬퍼하고 있다. 겨우내 눈 속에 묻혀 시음하며 봄을 기다려 잎을 내고 꽃을 피우듯, 고난과 질병의 고통을 넘어 생명과 소망과 부활의 꽃을 피우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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