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양식 4월9일

Published April 8, 2018 by 담임목사 in 가정예배

오늘의 말씀: 욥기33장22-24절

그럴 때에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해석자로 함께 있어서 그 정당히 행할 것을 보일진대 그의 혼이 구덩이에, 그의 생명이 멸하는 자에게 가까워지느니라. 하나님이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사 이르시기를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Yea, his soul draweth near unto the grave, and his life to the destroyers. If there be a messenger with him, an interpreter, one among a thousand, to shew unto man his uprightness: Then he is gracious unto him, and saith, Deliver him from going down to the pit: I have found a ransom.

생명의 말씀: 하루살이는 내일을 일 수 없지만

그리스도 구세의 업은 두 가지였다. 일은 인류에게 완전한 생애를 가르치심에 있다. 이는 인류의 죄를 그의 몸에 지고서 이를 삭제함에 있다. 전자는 구세의 최종 목적이고, 후자는 전자로 인도함의 필요수단이다(베드로전서2:12). 완전한 사람을 만들고자 하면, 먼저 사람을 불완전 하게 만드는 죄를 없이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 그 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죄를 아니 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리알처럼 눈부신 햇볕이 내리쬐는 어느 날 아침, 친구를 찾으러 넓은 들로 나간 하루살이는 마침 메뚜기를 만났습니다. 이내 친해진 그들은 즐겁게 노느라 밤이슬이 내리는 줄도 몰랐습니다. 이윽고 땅거미 내려앉은 어두운 밤이 되자 메뚜기가 먼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루살이야, 오늘은 그만 헤어지고 내일 만나 다시 놀자.” “그런데 메뚜기야, 내일이 뭐니?” “응, 내일이란 이렇게 깜깜한 어둠이 지나고 다시 환한 아침이 찾아오는 때를 말한단다.” 메뚜기가 아무리 쉬운 말로 열심히 설명해 보았지만, 하루살이는 도무지 ‘내일’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 세상엔 엄연히 ‘내일’이 존재하건만. 사람에게 허락된 시간 역시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인생에는 분명 마지막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며 사는 무리가 있는 반면, 소망의 하늘나라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마치 내일을 이해하지 못했던 하루살이처럼.

오늘의 신앙 점검-내일을 몰랐던 하루살이처럼 하나님을 만날 아무런 기대도 준비도 없이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사 40:28-31)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주님께 기도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기도를 잊고 생활할 때가 더욱 많았음을 이 시간 고백합니다. 저희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가든지 쉼 없이 기도를 통해 주님과 대화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십시오. 또한 우리가 생활할 때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늘 기억하기 원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지 못한 채 저희는 사소한 일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화를 냅니다. 이해할 수 있는 일에도 우리의 자존심을 앞세웁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 일도 많이 있습니다. 주님, 저희도 주님이 저희에게 베푸신 그 크신 사랑을 본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길 원합니다. 저희에게 너그러운 사랑의 마음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No Response to “오늘의 양식 4월9일”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