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자가 누구냐?

Published February 18, 2009 by 담임목사 in 목사님 칼럼

우리 민족의 사회적 종교적 지도자 김수환 추기경께서 善種(선종)하셨다. 온 나라 哀悼(애도)하고 있다. ‘선종’이란 말의 의미는 ‘선생 복종(善生福終)’에서 나온 말로, 임종할 때 성사(聖事)를 받아 대죄(大罪)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일이라고 국어사전에 정의하고 있다.

선종하신 그 분의 逸話(일화)중에 어느 기자가 제일 잘하시는 말씀이 무엇이냐는 묻음에 “거짓말과 참말”이라고 대답 하셨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소망을 본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피로 聖事(성사)받는 우리도 大罪(대죄)가 없는 善種(선종)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권능을 입고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약성서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유대 관원이요 바리새인이며 산헤드린(Sanhidrin) 회원이던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냐고 물었다. 쉬운 말로 어떻게 해야 聖事(성사)를 받을 수 있냐는 묻음이다. 이에 예수님께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대답을 하셨다. 이 말씀에서 聖事(성사)는 반드시 거듭나야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무엇이 거듭나는 것일까? 깊이 고민하며 생각해 본다.

어릴 때 충청도 대전시 선화동에서 살았다. 그때만 해도 교통수단이 기차뿐이어서 기차를 그때 말로 ‘노리까리’하기 위하여 대전에서 내린 손님들이 우리 집에 자주 오셨다. 6.25전쟁이후라 한 입 덜기 위해 시골에 많은 여자아이들이 도시의 식모로 나가던 때인지라 끼니마다 한 입, 두 입 더한다는 것 여간 힘든 일이 아니지만 제 기억으로는 거의 매끼니 손님이 계셨다.

더욱이 우리 어머니를 힘들게 했던 것은 끼니마다 밥상을 두세 개씩 차려야 했던 것이다. 당시 저는 어릴 때라 잘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서로가 사탄이라고 같은 밥상에 앉으려 하지도 않고 서로 얼굴도 보지 않으려고 했다. “저 놈들 偶像崇拜(우상숭배) 한 더러운 사탄 같은 놈아 빨리 가라”고 소리, 소리치는  목사님 손과 발에 손톱과 발톱이 없었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일정시대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고문을 받아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몇 년이 지나며 밥상이 하나 더 늘어나게 되었다. 이번에는 저 원수 같은 놈들이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마귀에게 홀려 사람이 썼다고 욕을 하며 밤이 맟도록 싸운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정죄하며 돌아섰다. 또 얼마 후 이제 밥상을 세게 차려야 했다. 이번에는 알 수 없는 영어로 NA, 에큐메니칼이니, 무식한 놈이니 공산당이니 하며 싸운다. 그 후로도 그들은 만나면 서로 長子(장자)라고 우기고, 서로 사탄 마귀라고 정죄하며 서로 큰 자라고 우기며 싸웠다.

세월이 흘러가며 디잴(Diesel)기관차가 나오고 고속도로도 생기고 우리가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서 더 이상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어머님께서 소천하시고  근 15년 만에 한국을 방문 하였는데 아버님 친구 목사님들께서 큰 누님과 우리 형제들을 만나자고 하셔서 나가보니 홀아비인 친구 목사 장가보내야 한다며 웬 할머니 한 분을 모시고 나와 해맑은 얼굴에 젊은 시절 장난기도 보이고 40년이 지난 후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서로 사탄이라고 정죄하며 싸우던 모습도, 서로 장자라고 우기던 모습도, 간데없고 마치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원로 목사님들의 한 마디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부질없는 짓을 했다”는 고백이었다. 아무것도 아니고 부질없다는 진리를 아는데 오십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가야 했다. 오늘 우리가 호흡하며 살아가는 삶의 현장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큰 자라고 우기며 다투어 그 자국이 몸과 마음에 넘친다.

주안에서 하나 된 우리 믿는 성도들이 모인 공동체도 이런 자국들이 모여 서로 자기가 제일이라고, 나 아니면 안 된다.  내가 누군데, 자기를 내세우며, 자기만이 義人(의인)이라고 그 義(의)로 남을 정죄하고 서로 이간시키고, 질투하고, 편 가르고, 그래서 밥상을 數十(수십)개 차려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 현실이지만 그것을 깨우치러 힘쓰지 않는다.

다만 예수를 믿는 모든 성도들이 니고데모와 같은 고민을 가지고 주님을 찾아오길  바랄뿐이다. 그리고 신령과 진실로 예배를 드리고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이라는 말씀이 그들의 심령 골수를 쪼개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의 역사 일어나길 기도할 뿐이다.

故 김 수환추기경께서 老年(노년)에 당신의 자화상을 그리고 ‘바보이다’라고 써놓고 마치 어린아이 같이 웃는 모습을 지면으로 보았다. 五十(오십)년 후에 만나 ‘부질없다’고 말씀하시는 元老(원로)들의 모습에서 어린 동심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어른들이 우리들에게 남긴 한 마디는 ‘용서하고 사랑하라’이었다.

마태복음18장1절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께 “천국에서 누가 크니이까?”라고 물었다. 이때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고 대답 하셨다.

이 말씀에서 찾는 진리는 거듭난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겸손해지는 것이다. 새벽마다 주님 전에 나와 기도하는 것은 우리 모든 성도들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聖事(성사)받아 善種(선종)하기 위함이다.

목양실에서  김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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