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는 자

Published February 21, 2009 by 담임목사 in 목사님 칼럼

모처럼 고향 소식이 들린다. 둘째 누이가 암으로 수술하고 투병중이라는 소식이다. 가슴이 찡하면서 무심했던 자신을 돌아보고 애절한 마음으로 쾌유를 바라며 두 손을 모아본다. 이네 예수의 흔적을 가졌고 날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누이에게 나음이 있으리라는 확신이 가슴으로 느껴지면서 할렐루야 아멘이 절로 찬양된다.

예수의 흔적을 가진 자가 받는 은총과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가 누릴 영광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염병이라고도 하고 장질부사 혹은 장티푸스라고도 하는  병에 걸렀다. 그 때만 해도 병원이나 약이 변변하지 못했던 시절이라 걸리면 거의 죽은 무서운 병이었다. 섣달 이상 生(생)과 死(사)를 넘나들며 열과 싸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정신이 오락가락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께서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셨는지 나를 대바구니에 넣어 문 옆에 두고 들며 날며 살피셨다. 그 시절에는 아이가 죽으면 대바구니에 담아 버리거나 땅을 파고 묻었다. 아마 그렇게 몇 날이 지난 것 같다. 지금 기억으로는 얼마나 배가 고프던지 生死(생사)를 넘나들며 온통 먹은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오늘 내일하며 죽지 않고 숨을 쉬고 있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알 것 같다.

더 이상 기력이 없다. 입신을 했는지, 기절을 했는지, 아니면 죽었는지 모르지만 하얀 한복을 입으신 두 할머니가 나타나셨다. 한 할머니는 큰 떡시루에 오곡이 다 담겨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떡을 보이면서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하는 음성은 “동진아! 너 지금 가면 영원히 베고프니 이 떡을 먹고 가야 한다.” 며 너무나 간절하게 말씀을 하셨다. 이때 또 다른 한 할머니는 한 손에 성경책을 들고 분명한 목소리로 “동진아! 떡을 먹으면 안 된다. 너의 어머니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셨다. 너는 산다.”고 애절하게 말씀을 하신다.

몇 달 동안 물도 마음대로 먹지 못했는지라 그 떡이 얼마나 먹음직스러운지 에덴동산에서 善惡果(선악과)를 바라보며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고 한 아담과 하와의 心情(심정)을 알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그 떡을 먹지 않으려고 애쓰며 성경책을 든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어린 내가 끝까지 떡을 먹지 않을 수 있었나? 그것은 후에 깨닫게 되었지만 나에게는 예수의 흔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난 중에 교회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들어 기억나는 소리는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 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어머니 등에 엎여 들던 찬송이다. 바로 그 찬양의 소리가 생사를 넘나드는 나에게 그 순간 너무나 분명하게 어머니의 음성으로 들러온다. 그 어머니의 음성은 나의 영혼에 예수의 흔적은 되살려 생명을 보존하는 위대한 능력이 되었다.

舊約聖書(구약성서) 출애굽기12장2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로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좌우 설주에 피의 흔적이 생명을 보존케 했다. 바로 예수의 흔적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의 흔적이다. 이 예수의 흔적은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되셔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당하지 않도록 나를 안위하고 보호함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왜 성경책을 들고 계신 할머니를 바라보았나? 아침저녁으로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며 읽었던 말씀들이 자신의 思考(사고)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민수기21장7절 이하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 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했다. 이 말씀은 원망함으로 하나님 앞에 犯罪(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모세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의 말씀이다.

‘쳐다본즉 살리라’ 라는 말씀은 내가 끝까지 떡을 먹지 않으려고 애쓰게 했다. 성경책을 든 할머니를 쳐다보고 있다가 정신이 든 것은 어머니 문을 열고 들어오시면서 “동진이 살았지”였다. 그리고 나는 즉시 일어섰고 몇 칠 후에 학교에 갈 수 있었다. 후에 알았지만 어머니가 자식 때문에 보문산 바위에 앉아 삼일 주야를 금식하며 기도하셨다고 한다. 둘째누이 투병을 소식을 대하며 내가 소망을 갖은 것은 분명히 내 누이에게도 예수의 흔적 남아 있고 지금도 천상에서 누이를 위하여 기도하실 어머니가 계심을 믿기 때문이고 또한 같은 혈통의 피로 예수의 흔적을 가진 자들이 누이를 위하여 기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 위대한 예수의 흔적을 사랑하는 성도들에게도 남아 있길 원해서 날마다 주님 전에 나가 중보의 기도를 한다.

목양실에서  김 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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