信心(신심)

Published March 2, 2009 by 담임목사 in 목사님 칼럼

‘옳다고 믿는 마음. 종교를 믿는 마음’을 信心(신심)이라고 한다. 英語로는 ‘ Reverence for God.’고 한다. 기독교적으로 하나님을 숭배하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가리켜 우리는 Christian 혹은 성도라고 부른다. 原語로 이 마음을 kardiva(kardia)라고 하는데 신앙적으로는 인간의 내면생활의 中心처이고, 종교생활의 근원이며, 하나님께서 역사(일)하시는 장소이고, 이곳에서 또한 윤리적 태도 및 행위가 결정되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이 사실을 사도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3:16)라고 했다. 이 信心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다. California, Monterey 市에서 목회를 할 때이다. Pebble beach라는 아름다운 洞內가 있고 17 mile Drive 라는 절경인 바닷가 있고 온화한 기후가 年間 계속되고 살기에 너무나 좋은 환경이라 청빙 받아 가면서 그곳에서 은퇴해야지 생각했다.

그 아름다운 절경의 바닷가를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면서도 단 한 번도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하며 지내다가 오랜 세월을 보내고야 자신이 지쳐 바로 信心(신심)이 약해져 있음을 깨닫고 교회를 위해 젊고, 지혜가 있고 열정적인 목회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기도를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심신은 약해지고 靈的 고갈도 더 심해져 교회는 풍랑만난 배처럼 요동을 친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맞기고 당회와 상의하여 육 개월 안식년을 갖고 사임을 하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가야 하는데 갈 곳이 없다. 집도 없고, 오라는 곳도 없고, 모아둔 돈도 없고, 어디 의지할 곳 없어 두려운 마음에 마지막 새벽기도회를 드리는데 에벤에셀의 하나님은 그 새벽에 찾아 오셨다. ‘두려워 말라’고 하신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편23:4-6)) 아멘

두려워하지도 말고, 분내 하지도 말고, 원망하지 말고 그냥 떠나라고 하신다.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 나와 동행해 주시겠단다. 평안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서는데 856mile 밖에 사는 처제에게 전화가 왔다. 夫婦(부부)가 아무 걱정하지 말고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한다.

마지막 주일예배를 드리고 이삿짐을 싸고 다 늦은 저녁에 夫婦가 바닷가에 나갔다. 저녁놀이 지는 Monterey의 해변과 밤하늘의 별빛은 환상적이고 그 아름다움은 말로는 형용할 수 없다. 다음 날 이른 새벽에 그 아름다운 바닷가를 뒤로 하고 856mile를 달리며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목회를 하며 단 하루도 편하게 이루지 못한 잠도 자고 싶고, 그냥 목회자가 아닌 사람이 되어 여행도 해보고 싶었다.

처제가 사는 동내는 수년 전에 목회하던 교회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곳이다. 수년 전 U-Haul에 짐을 싣고 달리던 길을 만나 數年 前 그 때 일들이 주옥같이 스치며 그 때 기억을 돌아보게 되었다. 말로만 듣고 교회에 부임해 보니 전임자가 구입한 말 농장에 당장 예배드릴 곳이 없다. 아래층 반절이 사택인데 문을 열고 나가면 마구간이다. 2층을 예배당으로 수리해야 하는데 재정이 없다고 한다. 관심 있는 사람도 없다.

移民교회 problem이야 다 마찬가지지만 한 가지 더 관심을 갖게 하는 말은 세 명의 성도가 나중에 교회가 망하면 남은 재산을 똑같이 분배한다는 覺書(각서)를 쓰고 교회를 개척했다는 것이다. 9년 동안 내가 11번째 목사라고 한다. 그들의 信心을 바꾸기 위해 내가 겪어야 했던 고뇌와 고난 그리고 인내와 절제는 나를 무릎 꿇게 했고 그 힘든 연단은 나를 기도의 사람으로 성숙시키기에 충분했다.

첫 주일예배를 드리고 월요일 이력서 한 장 가지고 은행을 찾아 나셨다. 아무도 co-sign 하겠고 않는다. 무작정 들어간 은행에서 loan 담당자가 없다며 부행장이 나와 안내를 한다. 교회 사정을 있는 사실대로 말하고 이력서 한 장 보이면서 3만 불을 빌려달라고 했다. 한참 동안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신청서를 주면서 써놓고 가라고 한다. 전혀 기대할 수 없어 새벽에 창고에 들어가 기도할 뿐이다.

바로 그 주간 금요일 오전에 전화가 왔다 수표를 가지고 가란다. 부행장이 직접 나와 웃으며 6개월 동안 먹고 살아야 하니 만 불을 더 준다는 것이다. payment도 6개월 후부터 하라고 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부행장이 미국교회 장로였고 수요일 저녁예배 때 설교가 그를 감동시켜 이 불쌍한 사람을 돌아보게 하였다. 자기가 은행에서 40년을 일했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한다.

수요예배 본문이 마가복음6장7-11절이었다고 한다.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어디서든지 뉘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막6:7-11)

은행 대기실 의자에 앉아 기도하는 모습에서 빈 손들고 찾아온 이 불쌍한 목사를 예수님의 제자로 보였고, 그의 마음속에 나를 그냥 보내면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릴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그 저녁 설교를 통해 생겨 자기가 co-sign를 하고 대출을 해주었다. 후에도 하나님은 많은 기적 같은 일로 교회에 함께해 주셨다. 그 일로 인해 성도들은 믿음이 자라고 교회는 성장되어갔다.

그 돈을 가지고 재료를 사서 근 일 년 동안 나는 죽을 고생을 하며 일을 했다. 새벽 일어나 새벽기도회를 드리고 밤 12시 전에 잠들어 본 기억이 없다. 온 몸 마디마디에 인대가 늘어나 견디기 힘든 노동을 했다. 일 년 만에 입당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교회도 성장했고 무엇보다는 변화된 성도들의 모습이 보람이었다. 계속 교회가 안정되어 200석 규모에 교육관이 있는 새로운 예배당을 구입해서 헌당하고 처음으로 쫓겨 가지 않고 청빙을 받아 떠나는 목사가 되어 스스로 성공한 목회자라 자위를 하며 축하 속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비행기에 올랐던 일이 생생하다.

前任者(전임자)가 시무하던 교회 근처로 무작정 간다는 것 자체가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지만 스스로의 인격을 믿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바람과 같이 사라질 일이라고 생각했다. 새로 부임한 목회자와 장로의 갈등은 교회를 두 패로 갈라서게 하였다. 信心(신심)이 떠나 다투는 그들의 모습은 열매 없어 저주 당한 무화가나무의 모습과 같았다. 다투는 자나, 수습하는 자나, 그 어디서도 인간의 모습조차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망하면 나누어 가질 전리품에 미친 사람들뿐이다.

저주 받아 메말라 버린 무화가 나무 같은 그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절규한 것은 그들 속에서 나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서였다. 자화상 속에 이미 信心(신심)은 메말라 버렸고 좌절과 절망만이 남아 있었다. 그 많은 시간동안 흘린 눈물, 피와 같은 땀, 그토록 외쳤던 기도, 그 열매는 아무 곳에서도 찾을 수 없고 다만 돌을 들고 서로 정죄하며 서 있는 상한 심령들뿐이다. 그 속에서 잊어버린 세월을 향해 소리치며 주여, 내가 주의 종입니까? 부르심을 입은 사람입니까? 남은 자가 없습니다. 어찌 저들이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절망하는 나에게 호렙산 굴속으로 엘리야를 찾으셨던 하나님이 “네가 어찌하여  절망하느냐?” 물으신다. “주여, 남은 자도, 열매도 없습니다.” 주님은 분명한 음성으로 “아니다. 남은 자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19:18) 이 하나님의 음성이 나를 깨닫게 하는 것은 信心(신심)으로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만 남아진다는 사실이다.

부족한 종을 위하여 기도하는 많은 사람들의 응답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남아 있는 자들 향하여 일만 오천 mile을 사명과 소망을 하지고 달려가는데 한 성도의 전화 음성이 날마다 나의 새벽을 깨운다. “목사님! 서로 돈 때문에 싸우는 것 같아요” 그 소리 잊지 못해 나는 오늘도 새벽을 깨워 나눠 가질 것이 없는 교회, 남아 열매 맺은 성도가 되어주길 소원하여 기도한다.

목양실에서  김 동진 목사

No Response to “信心(신심)”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