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방법

By 담임목사 on November 11, 2018

본문: 시편9편1절

제목: 감사의 방법

본문은 다윗의 시로써 감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간단명료하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감사의 대상을 ‘Praise, O Lord’ 여호와 하나님께, 그리고 감사의 방법을 ‘With my whole heart’ 전심으로, 한 마디로 ‘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시인 다윗은 하나님의 공의를 감사로 찬양하면서 감사를 강조합니다.

韓國에서 가장 듣기 힘든 말이 ‘감사합니다.’이고, 美國에서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이 ‘감사합니다.’ ‘Thank you’라는 말입니다.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하지만, 수준의 차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그 정도쯤이야 당연하다는 의식과 지극히 작은 것에도 감사하다는 의식의 차이이지 싶습니다.

주말에 가큼 양로원에 심방을 가면 문 밖에 나와 앉아 있는 老人를 봅니다. 답답해서 바람 씌러 나왔나? 싶었는데 조금 있자 아들딸 손자손녀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연신 ‘Thank you’ ‘Thank you’합니다. 찾아와 줘서 감사하다는 인사입니다. 室內로 들어가면 허공을 바라보며 너무나 애처롭게 멍 때리고 앉아 있는 老人도 있습니다.

未來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서글프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지만 물어볼 수 없어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지요. Face book에 흥미로운 글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대강 요약하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강아지가 아프면 병원으로 뛰어가고, 부모님이 아프면 들은 척도 안한다. 죽을 둥 살 둥 악을 쓰며 키워 났더니 개만도 못한 처지가 되었다는 하소연하는 글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주 밖에 없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고백하는 다윗은 엄청난 富者가 되어서가 아니고, 전쟁에서 원수를 물리치고 승리해서도 아니고, 악인들의 온갖 핍박 중에도 좌절하지 않고 승리를 확신하며 견디게 해 주신 은혜를 감사한다. 고백합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되어 아버지 다윗 왕의 감사를 세계 최고의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이때에 솔로몬은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까”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자세라는 의미인데 전심으로 감사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헌신이 따라야 합니다.

로마서12장1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했습니다. 헌신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교훈해 줍니다. 마태복음13장46절에 보면 예수님의 의미심장한 비유를 기록해 놓았습니다.

어느 보석 장사꾼이 자신이 본 것 중 최고의 보석을 발견한 후 그 보석을 손에 넣고자 자신이 소유한 모든 보석과 재산가지 팔아 그 진주 보석을 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비유는 천국이라는 보석을 발견한 성도라고 할 수 있지만 성도를 행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풀이할 수도 있습니다. 천하보다 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천하 만물보다 한 성도 자신을 예물로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이 감사의 절기에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하나님 나라의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두매 산골 작은 마을에 조그마한 예배당이 하나 있었습니다. 낙엽 지는 가을 추수를 끝내고 곡간마다 추수한 곡식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든든하고 풍성한 마음으로 주일 날 예배에 참석을 했던 다음이 주일 추수감사절이라며 저마다 일 년 수확을 감사해서 감사예물을 드리라고 광고를 합니다.

어떤 이는 쌀을, 어떤 성도는 감자를, 어떤 집사는 고추를, 어떤 권사는 참기름을, 모든 성도들이 한 가지씩 서원을 하고 돌아갑니다. 이 성도도 금년에 가장 농사가 잘 된 사과를 드리기로 서원하고 돌아왔습니다. 드디어 추수감사절 아침이 왔습니다. 이른 새벽에 신랑이 큰 바구니를 가지고와 사과를 담습니다.

이를 본 아내가 화를 내면서 큰 소리를 칩니다. ‘아니, 우리가 피땀 흘러 농사짓는 것을 다 가지고 가려느냐?’며 악을, 악을 써서 할 수 없이 절반이상 더러 내고 작은 바구니에 사과 몇 알을 담아 교회로 갔습니다. 은혜롭게 예배를 드리고 헌금 시간이 왔습니다. 자마다 강단 앞에 일 년 동안 농사 지어 추수한 곡식들을 바칩니다.

예배를 마치자 도외지에서 코쟁이 선교사가 큰 화물차에 선물을 가득 실어 와서 헌금 드린 주머니를 가지고 줄을 서라고 하더니 주머니에 선물을 넣어 줍니다. Chocolate이랑 Candy, 공책, 연필, 신발에 옷까지 별의 별 것을 다 나누어 줍니다. 쌀 한 가마니 드린 성도는 한 가마니 선물을 담아 가는데 이 사람은 사과 몇 알 만큼 담아 갑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사도행전 5장에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사도바울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14:8)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자신을 산제사로 드려 죽도록 충성합시다.

2. 순종해야 합니다.

로마서6장17-18절에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죄에서 용서받고 해방되는 길은 순종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전쟁에 나가는 사울 왕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사무엘 선지자가 오지를 않습니다. 사람을 보내 사무엘이 얼마큼 왔는지 알아보아도 캄캄 무소식입니다. 참지 못한 사울 왕이 스스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늦게 도착한 사무엘이 이 사실을 알고 사울 왕에서 이렇게 직언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인격을 지닌 사람이 서로 교제 중에 상대를 가장 기쁘게 하는 선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상대의 생각과 뜻과 사상에 대하여 동의하는 것입니다.

어릴 때 우리 집에 손님 자주 많이 오셨는데 이런저런 선물을 가지고 오십니다. 어떤 사람은 도저히 쓰거나 먹을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오고, 어떤 사람은 아주 비싼 것을 가지고 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아주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수박이나 참외 혹은 호빵 같은 것을 가져 오기도 합니다.

저는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선물을 좋아했습니다. 가큼 한국 고향 집 아버지가 계신 집에 머물다보면 자식들이나 손자 손녀들이 전화를 합니다. 지금 뵈러 가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전화입니다. 그러면 상대에 따라 다르게 필요한 것을 말씀하십니다. 아마 형편을 헤아리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하나도 버릴 것이 없이 먹거나 요긴하게 사용합니다. 제고가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어떤 예물보다 말씀에 진리에 따라 순종하는 것을 기뻐 받으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뜻과 진리와 섭리에 대한 인격적 동의입니다. 이 인격적 동의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순종에 대한 하나님 명령은 무엇입니까? 구약성서 창세기22장에 하나님 명령에 대한 순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서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제사를 드리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이에 순종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그 순종을 보신 후에야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알았노라”고 하시며 온갖 축복을 언약해 주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 명령에 순종의 제사를 드릴 때 그 믿음과 충성을 인정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 명령에 순종하는 성도를 진정한 친구로 인정하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3. 물질을 드려야 합니다.

서두에 말씀에 드린 개만도 못하다는 하소연 하시던 노인 부부가 시골에 전답과 전통 한옥이 있어 차라리 시골로 내려가서 夫婦가 오존도손 살다가 죽자고 상의하고 시골로 내려와 살고 있는데 일 년에 한두 번 명절 때마다 자식들이 옵니다. 큰 아들은 사는 형편 힘들다며 빈손으로 오기가 일쑤고,

그래도 좀 산다는 둘째가 이것저것 가지고 오는데 막내아들 식구까지 내려와 먹고 싸 가지고 가면 쓰레기만 남은 다며 할머니가 이제 그만 왔으면 좋겠다고 할아버지에게 말씀을 합니다. 그만 오라고 전화를 해도 계속 옵니다. 이유는 전답, 즉 재산 때문이지요. 오늘 우리들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기는 하는데 그 목적이 자신의 욕심에 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老夫婦에게 시집간 딸이 하나 있는데 시집살이가 얼마나 심한지 좀처럼 친정 나들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이 눈치 저 눈치 보다가 잠간 짬을 내어 친정에 옵니다. 노인네 추운겨울 잘 보내라고 털 신발에 오리털 외투를 들고 옵니다.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제사를 드리러 오는 백성들에게 ‘빈 손’으로 오지 말 것을 명하셨습니다. 형편대로 주신 축복의 분량에 따라 부자는 곡식의 첫 열매를, 가난한 자는 비둘기 한 쌍 또는 그것도 낼 수 없으면 곡식 한 줌이라도 감사의 예물로 드릴 것을 명하셨습니다.

물질은 그 마음의 정성과 표현입니다. 그 물질 안에는 그 사람의 땀과 눈물과 시간이 용해되어 있는 것입니다. 피땀 흘려 얻어진 물질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은 아름다운 하나의 헌신입니다. 이 예물을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성경은 증언해 줍니다. 감사의 방법은 전심, 즉 온 마음과 몸과 물질로 드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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