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의 자세

By 담임목사 on November 18, 2018

본문: 신명기16장14-17절

제목: 감사절의 자세

본문 신명기 16장은 구약시대 유대인들이 지켜야하는 삼대 절기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에 관한 규례를 설명해 주고 있는데, 출애굽기나 레위기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절기에 모세는 본 장을 통해 다시 한 번 절기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백성들이 절기를 지킬 때마다 절기 속에 담겨 있는 깊은 의미와 교훈을 보다 분명히 깨닫게 하고자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추수감사절의 뜻과 의미를 깊이 깨달아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올바른 자세를 갖고자 합니다. 구약의 삼대절기 중 유월절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애굽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고자 지키는 절기로 무교절이라고도 부릅니다.

또한 꿈에도 그리던 열조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거둔 첫 곡식을 드리는 절기를 지켰는데 바로 오순절이라고도 하고 칠칠절 혹은 맥추절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가을에 추수를 한 후 수확하여 거둔 곡식에 감사하여 드리는 절기를 수장절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오늘 우리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입니다.

신약시대가 도래하면서 구약의 모든 규례가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절기들이 갖은 의미까지 폐지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정신과 의미가 신약성경을 통하여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변화하는 시대 상황에 맞춰서 절기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그 의미를 확인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그 성격에 따라 크게 도덕법, 시민법, 의식 법으로 구분됩니다. 도덕법은 신구약시대를 막론하고 영구히 지켜야 하는 법인데 십계명이 이에 속합니다. 그리고 시민법은 대부분 그 시대와 상황에 국한하여 주어진 것으로 결혼 제도나 이혼, 금기된 음식 및 생활 습관 그리고 종에 관한 규례 등이 이에 속합니다.

마지막으로 의식 법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표론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들로 각종 제사 제도나 절기에 관한 규례가 이에 속합니다. 그런데 구약의 의식 법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 승천 사건으로 말미암아 대부분 성취되었습니다. 그 결과 성탄절이나 사순절 그리고 고난주간, 부활절 등 새로운 절기의 기원이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지키는 추수감사절, 영어로 Thanksgiving day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신앙의 자유를 찾아 화란의 아덴에서 미국 Massachusetts주의 Plymouth란 곳에 도착한 청교도 105명은 한 해의 추수를 마치고 하나님 앞에 감사 예배를 드리는 것이 기원이 되어 북미와 전 세계의 기독교가 지키고 있는 절기입니다. 이런 의미를 담아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우리들의 자세를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서로 연락해야 합니다.

본문14절에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라고 했습니다. ‘연락하라’ 이 말은 이웃과 더불어, 그리고 믿음의 공동체가 하나 되어 지키는 절기가 되어야 하고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도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해야 한다면, 우리 신약의 믿는 성도들은 이 절기를 보내면서 기뻐할 뿐 아니라 ‘영원히 주안에서 언제나 즐거워하는 것’을 의무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보면 바벨탑 사건이 설화 부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에 벌어진 이야기입니다.

인류가 물 잠길 수 있다는 사실은 환경공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지요? 과학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그 가능성이 더해 갑니다. 노아 홍수 때 방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농사를 지어 다시 문명이 발달하자 다시는 물로 멸망당하지 말자며 쌓아 올린 탑이 바벨탑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탑 사건을 하나님께 대한 도전으로 여기셨습니다.

그 결과 인류는 사방팔방으로 뿔뿔이 흩여짐을 당하고 언어는 혼잡하여 서로 대화를 할 수 없게 되었고 인류에게는 전쟁이라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서로 연락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언어가 달라 말이 안 통하니 모이면 저 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弱肉强食의 시대가 도래되었습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불신의 벽이 높아가고 그 결과 이웃과 이웃이 서로 대화할 수 없고, 아래 마을과 윗마을이, 경상도와 전라도가, 나라와 나라가 대립하고 다투는 사건들이 非一非再하게 일어나 바벨탑 사건 이후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동내에 잔치가 있으면 온 동네 사람들이 와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곳에는 어떤 사람이나, 심지어는 초청 받지 않은 지나가는 나그네와 저작거리의 거지까지도 잔치 집에 와서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함께 즐거워하며 기쁨을 나눕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온 가족이 모이고, 이웃과 이웃이 모이고 그래서 함께 음식을 나누며 즐거워합니다. 그리고 많은 교회와 사회단체들이 불우한 이웃 즉 고아와 병든 자와 또한 애통하는 자들을 찾아 위로하고 궁핍한 자들에게 음식을 나누며 추수감사절의 절기를 지키며 즐거워합니다.

저의 어릴 때 추수감사절의 기억은 기쁘고 즐거웠던 기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온 동내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떡을 나누며 이런저런 행사를 했던 일들이 생생하게 생각납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추수감사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누구 하나 밥 한 끼 먹자는 사람도 없습니다.

올해도 Turkey를 구경도 못하고 지나갈 것 같은데 이유가 무엇일까요? 서로 연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추수감사절의 절기를 보내며 서로 연락합시다. 그리고 이웃을 살피고 신분의 귀천이나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한 자리에 모여 추수감사절을 지키며 즐거워합시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2. 온전히 즐거워해야 합시다.

본문 15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무엇을 받았기 때문에 감사해야 하는 것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실 것’을 인하여 감사하라는 것이고, 그 때야 비로소 온전히 즐거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앞으로 모든 일에 더 많은 복을 주실 것을 인하여 온전히 즐거워하는 추수감사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저는 추수감사절 설교를 준비하면서 감사할 일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구구절절이 다 말 할 수 없지만 가장 감사할 것은 오늘 이 자리에 나와 앉아 있는 성도여러분입니다. 작아 부족한 것이 많겠지만 이런저런 부담도 있겠지만 헌신적은 봉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을은 형용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지키시고 인도해 주신 은혜, 더욱 감사한 일은 매일 새벽마다 찾아 오셔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나 하나님 여호와가 항상 너와 함께 하시겠다고 언약해 주시며 위로하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인하여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감사는 믿음으로 주실 복을 바라보고 확신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믿음의 태도가 아닌 가합니다. 감사는 즐거워하는 마음이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감사는 복 주실 것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해야 하는데 이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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