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예복을 준비하라

By 담임목사 on December 17, 2017

본문: 마태복음22장11-14절

제목: 거룩한 예복을 준비하라

본문은 예수님께서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신 혼인잔치이야기입니다. 2절에 “임금이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라고 했고, 5-6절에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라고 했습니다.

나라 임금이 왕자를 혼인시키면서 잔치를 베풀고 고관대작들을 초청했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오지 않습니다. 이에 화가 난 임금이 ‘저작거리에 나가서 아무나 불러다가 자리를 채우라’ 고 여명을 내렸습니다. 종들이 저작거리 사거리에 서서 소리를 지릅니다. ‘왕자가 결혼한다. 아무라도 잔치에 참석해라’

그래서 잔치집이 인산인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때 임금이 누가 참석을 했나 살피러 들어오다가 아주 난무한 사람을 발견하고 묻습니다. ‘너는 어찌 임금의 잔치에 예복도 입지 않고 왔냐.’ 그런데 이 사람이 유구무언 합니다. 13절에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아무나 불러다가’라는 말씀인데, 바로 이것이 ‘은혜’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예복을 입지 않았느냐’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참여 할 수 있도록 불러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거기에는 엄격한 책임이 뒤따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는 삼대 종파가 있었는데, 하나는 바리새파입니다. 그들은 부활을 믿었지만 금욕과 율법에 의해서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하나는 사두개파인데 그들은 모세오경만 믿고 부활을 부인하고 심판도 믿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12장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다 배가 고파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 못 할 일을 한다면 항의합니다. 또한 마태복음22장22절 이하에 보면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질문을 합니다. 모세의 율법에 형이 후사가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에게 장가들어 후사를 세우는데 일곱째 형까지 죽어 동생이 장가를 들고 마지막에 여자도 죽었다면 모두 부활하여 천국에서 뉘 아내가 됩니까?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누가복음11장46절에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 도다.”라고 책망하셨고, 마태복음22장30절에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라고 말씀을 하시고, 본문에 천국을 혼인잔치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이 말하는 것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그들이 생각하는 것에 대한 대답입니다.

예를 들자면 성도여러분은 이 예배에 어떤 옷을 입고 오셨냐는 질문입니다. 물론 옷이 그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만 옷을 입은 생각과 마음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무생각 없이 대충 입고 나왔느냐 아니면 기도로 준비하고 예비한 예복을 입고 나왔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가를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겸손의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겸손은 수천 번 이야기해도 부족한 진리입니다. 겸손의 반대말은 교만입니다.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장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 즉 천국에 들어가려면 먼저 오만과 자만, 교만의 옷을 벗어버리고 겸손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겸손한자는 모든 사람이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어찌하여 겸손한 자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느냐’는 말은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큽니다. 누가복음14장8-9절 이하에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상좌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저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말석으로 가게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혼인잔치 자리가 문제가 아니라 바리새인의 교만을 문제 삼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마태복음7장5절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고 했고, 마가복음10장31절에는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고 했습니다.

구약성서에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허실 때 1일, 2일, 3일. 하는 순서에 따라 만드시고 6일째에 완성하셨습니다. 사람은 그 마지막 6일째 만드셨습니다. 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마지막에 만들어졌을까? 탈무드에 의하면, 파리 한 마리도 인간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을 알게 되면 인간은 그다지 교만해지지 않을 것이라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자연에 대한 겸허를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Andew Murray는 ‘겸손이란 마음의 고요함이다. 그것은 탐욕이 없는 상태이며 자신에게 일어난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는 것이다. 또한 해로운 일에 과민 반응하기 않는 것이며 칭찬을 받거나 멸시를 받아도 동요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 살아가는 일이 참으로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 조용히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함으로써 침묵의 바다와도 같은 평화를 얻을 수 있는 마음이다. 사람이 겸손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은총의 보금자리에 있다는 뜻이다.’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겸손은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고 남을 멸시하지 않는 착한 마음이요. 온유하고 덕스러운 마음과 인격의 표현이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훌륭한 사도였으나 ‘나는 죄인의 괴수요 만삭되지 못한 종이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 앞에 가까이 나가면 나갈수록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우리 자신의 부족을 깨닫게 되고 겸손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온전하심에 비교하면 우리는 지푸라기만도 못한 존재요, 주님의 거룩하심에 비하면 우리는 누구나 예외 없이 모두가 죄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에 온유와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여 겸손의 예복을 입고서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2. 인내의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히브리서10장36절에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고 했는데, 한 마디로 인내는 약속을 받는 열쇠라는 말입니다. 또한 시편146편5절에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에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 집에 한 노파가 찾아서 배가 고프다며 밥을 달라고 청했습니다. 본래 손님 대접을 잘하는 아브라함인지라 거하게 한 상 차려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노파가 우상을 섬기는 사람인지라 식사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이에 화가 난 아브라함이 당장 이 노파를 내쫓아버리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말렸습니다. ‘아브라함아 참아라. 그 노파를 내쫓지 마라. 내가 이 노파를 회개 시키려고 100년 동안이나 참았다’ 교만한 우리가 참지 못하고 저지르는 실수 가운데 하나입니다. 때문에 忍耐라는 말은 천번 만번 강조해도 과하지 않는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이삼년을 심방하며 전도를 해도 교회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심방을 가다가 생각하니 열이 밭치고 화가 치밀려 ‘더 이상은 못하겠습니다.’ 하나님께 속으로 큰 소리를 치니 금세 하나님께서 저에게 되묻습니다. ‘아! 김 목사 그 사람이 얼굴에 침을 뱉더냐?’ 아니요 ‘그럼 그 사람이 오지 말라며 때리더냐? 아니요 ’그럼 그 사람이 사람들을 선동하여 너의 옷을 벗기고 채찍질하며 가시관을 씌워서 십자가에 못 박자고 하더냐?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돌보아 주셔서 그런 일은 당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하나님! 그들이 나에게 그렇게 하도라도 저는 계속해서 그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중얼거리며 오늘까지 왔습니다. 저도 할 말이 많지요 가큼 견디기 힘들만큼 괴롭고 화가 치밀지요.

그러나 “작은 도시에서 소수의 성도들이 만들어 가는 교회이거만 하나님 앞에서 전심으로 진실 되게 목회하시는 목사님과 사모님의 인내가 그 어떤 공동체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귀하고 아름다운 교회라고 믿어요.” 금년에 처음 온 Christmas card에 써져 있는 말입니다. 그냥 스치듯 교회를 섬기며 봉사하다 떠난 성도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신체지고 더 안 준다고 떠난 자들을 저주하지 않고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참았더니 하나님께서 이런 위로의 말을 듣게 하십니다. 계시록3장에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시험을 면하고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다.’고 했고, 야고보사도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24장13절에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인내하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인내하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 영생을 얻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떠한 시련과 시험에 부닥친다고 해도 인내의 예복으로 갈아입고 의의 면류관 승리의 면류관을 받아쓰는 자가 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3. 사랑의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실수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아마 그것은 사랑하는 것일 것입니다. 잘 못된 사랑으로 인해 일어나 불행한 일들은 우리 주위에 비일비재할 것입니다. 한 가지만 말하자면 갑길 논란입니다. 이게 다 사랑이라는 미명아래 이루어지는 행위로 일어나는 논란입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입니다. 다시 말하면 미움의 옷을 벗고 사랑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우리 마음속에 미움을 버리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예수님께서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원수도 사랑하라’ ‘오리 가자면 십리를 가라’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하라‘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러나 예수님께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고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예복을 입은 자라야만이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자만이 원수도 사랑할 수 있고 일흔 번씩 일곱 번도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37)”는 우리 주님의 음성을 들려지기 원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깜짝 놀라게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가버나움에 주둔하고 있던 군인들의 우두머리인 백부장입니다. 그는 로마 장교의 신분인데도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었습니다. 자기의 종의 아파하는 것이 너무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은 종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의 믿음은 ‘참 사랑’으로 밑받침되는 믿음이었습니다.

사랑은 주님의 뜻을 이루는 길입니다. 사랑이 없는 행동은 그 자체가 거짓입니다. 또한 사랑은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백부장 밑에는 신실한 군사들이 많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의 주변에는 진실한 친구들이 많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나보다 약하고 불리한 처지에 처한 이웃과 사랑을 나누고 싶지 않습니까?

종의 아픔을 끌어안고 온 백부장처럼, 이웃의 아픔을 위해 주님 앞에 무릎 꿇어 보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 같은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마8:10) 이 칭찬의 말씀이 여러분을 향한 주님의 말씀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친구여 어찌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에 들어왔느냐?’ ‘청함을 받을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으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이후부터 우리는 오만과 자만과 교만과 편견의 옷을 벗어버리고 겸손의 예복을 입고, 오래 참음의 예복을 입고, 사랑의 예복을 입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깨끗함을 입은 세마포란 예복을 입고 주님이 초청하신 하늘나라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영광의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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