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By 담임목사 on February 18, 2018

본문: 창세기21장8-21절

제목: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본문은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천륜이면서도 삶의 수레바퀴 안에 들어오면 二律背反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와 같이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의 나이 팔구십이 되도록 자손을 보지 못합니다.

참다못한 사래가 자신의 여종 하갈을 아브람에게 들여보내 ‘씨가 있어야지’해서 얻는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아이가 자라 13살쯤 된 어느 날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완전 하라”고 하시면서 아브람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아브람도 사래도 웃을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사래가 ‘하나님. 이게 말이 됩니까? 아브람 나이가 99살이고 나는 이미 경도도 다 끊어졌습니다. 그만 웃기시고 하갈이 나에게 행패나 부리지 못하게 해 주세요’라고 당부를 합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백세에 아들을 낳고 이삭이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아들을 낳자 사래가 기가 살아서 목에 힘이 들어가 야단입니다. ‘네 아들을 봐라 인물도 좋고, 이빨 좀 봐라 저 재롱 피우는 봐라 얼마나 귀티가 나냐’ 하갈과 이스마엘을 핍박합니다. 보다 못한 하갈이 이스마엘을 한 쪽으로 불러 ‘야, 안 보이는 곳에서 쥐어 박아라.’ 시킵니다.

이 광경을 본 사래가 야단이 낳습니다. 흥분한 사래가 아브람을 다그칩니다. ‘이 여종과 그 아들을 그러니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시오. 아니면 내가 나갑니다.’ 더 나가 종의 아들에게는 동전 한 입도 줘서는 안 됩니다. 빈손으로 내 집에서 내어 쫓으라고 합니다.

아브람이 이만저만 근심이 아닙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아브람이 아침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하가에게 주면서 아들을 이끌고 가라고 합니다. 하갈이 아들과 함께 브엘세바에 들에서 방황하다가 떡과 물이 떨어져 기진맥진한 아들을 떨기나무 아래 두고 대성통곡을 합니다. 자식을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하는 고난이나 재난은 다양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 이스마엘을 낳고 기르는 동안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광야로 쫓겨나 죽어가는 아들을 두고 비탄에 빠졌습니다.

이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갈아! 무슨 일이냐?”고 물으십니다. 가장 절실한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가 하갈에게 임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도움을 애타게 구했고, 그 애절함을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갈은 버림당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갈은 주인의 집에서 쫓겨 나 자신이 사랑하는 주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면 하갈의 아들이 하나님의 선물 이삭을 조롱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면 내어 쫓김을 당하게 됩니다. 죄는 분열을 꾀하며, 축복을 저주와 슬픔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본문15절에 “가죽부대의 물이 다한지라”고 했습니다. 하갈은 더 이상 주인집의 풍요로움을 누릴 수 없게 되어 빈곤에 처하게 됩니다. 가지고 나온 물과 떡이 떨어지자 그는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아버지의 집을 떠난 탕자도 가진 것을 모두 탕진하고 말았듯이 하나님의 품을 떠난 사람은 모든 축복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16절에 “자식이 죽은 것을 차마 보지 못 하겠다 하고 살 한바탕쯤 가서 방성대곡하니”라고 했습니다. 하갈은 오도 가도 못하는 소망이 없는 불쌍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광야 한 가운데서 죽음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드리운 아들의 얼굴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들도 살다보면 꿈이었으면 하는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들이 우리들의 앞을 가로 막을 때가 있습니다. 저도 지난주일 오후에 여행을 떠나 목적지로 가는데 27시간이나 걸렸습니다. 떠날 때부터 비행기가 다섯 시간이나 Delay가 되더니 중간 기착지에서 비행기가 이미 떠나 공항대합실에서 하루 저녁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비행기로 가야하는데 다른 도시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공항대합실에서 밤을 지새우며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월요일에 출발할 걸, 하는 후회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20:8)”는 말씀이 생각나 주일 날 여행을 떠난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리고 회개했습니다. 다시는 주일 범하지 않겠다고

본문17절에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저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하갈에게 하나님의 위로의음성이 들립니다. 사람이 당하는 최대의 위기는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최대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는 말씀은 충만히 채워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19절 “하갈이 샘물을 보고”, 즉 구원의 샘물이 바로 옆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갈은 갈증의 고통 가운데서 앉아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이것은 진리의 말씀이 바로 곁에 있으며, 귀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함으로 죽어 가는 많은 사람들의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이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샘물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만 하였습니다. 그 눈을 하나님께서 밝히셨습니다. 눈이 밝아져 보이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가서 기죽 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었더라.” 하갈은 스스로 우물을 팔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물을 마음대로 마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취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이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도 공항대합실에서 조그만 하는 아쉬운 생각에 날씨 탓하고, 항공사 탓하며 밤을 지새웠다면 후회와 억울한 생각만 하며 원망과 불평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공항대합실 땅바닥에 누워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했고 회개하며 이 자그마한 시련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회개하고 다시는 주일을 범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함으로 시련이 축복되었는데, 그 축복은 영원한 생명이고 천국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길에 견디다 못해 쓰러질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선하셔서 우리의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시고 우리의 눈을 밝히기 위해 오늘도 세미한 음성을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은혜가 오늘 이 시간 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눈이 밝아져 보이지 않은 것들을 볼 수 있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 생명의 샘물로 가죽 부대에 가득가득 생명의 생수를 담아 “그 아이에게 마시였더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들을 모두 받아들임으로 인하여 하갈처럼 자신과 자신의 아들을 구원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No Response to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