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당하는 성도

By 담임목사 on March 24, 2019

본문: 신명기8장1-6절
제목: 고난당하는 성도

우주의 크기가 4.3광년이라고 하는데 그 크기를 가름 할 수 없고 그 속에 있는 地球는 작은 입자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地球는 약 45억 년 전에 형성되었고 생명체가 존재하기 시작한 것은 35억 년 전이라고 합니다. 인류의 기록된 역사는 약 6천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강대한 우주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만드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호흡하는 地球는 물론 온 宇宙를 누군가 조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줍니다.

우리는 온 우주를 조정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우리 성도들에게 萬事亨通의 행복한 삶만 이러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좌절과 실패 그리고 낙심과 시련을 만나게 됩니다. 늘 궁금한 것이 왜 그럴까? 오늘 본문에 바로 이 궁금증에 답하고 있는데 살펴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백성으로 양육하기 위함입니다.

복의 근원으로 자손을 모래알같이 번성하게 하시겠다는 연약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후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사 백년 동안 종살이를 하게 됩니다. 요셉이 죽자 그들은 노예로 전락하여 자신의 언어도 다 잃어버리고 하나님도 잃어버리고 인생 나락으로 떨어 희망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예상치 못하게 모세를 보내 그들을 노예에서 해방시켜 열조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기 위해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런데 고작 一週日이며 갈 수 있는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40년 동안이나 광야생활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사실 광야 생활이란 문화나 문명이 없고 행복한 시절은 아니었습니다.

본문2절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해 줍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고, 너를 낮추고 시험하사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광야 생활 사십년의 고통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의 교만한 마음을 제시하시고 겸손하고도 거룩한 당신의 백성으로 성장 시키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1장7절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성도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양육하시기 위하여 연단의 과정을 두신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믿는 성도들도 이 연단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믿는 성도들은 광야 같은 시련을 만나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 생각하고 그 과정을 통하여 더욱 믿음의 성장을 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12장7-9절에 “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믿는 모두 성도들은 그 누구도 광야와 같은 시련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겸손하고 강건한 성도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우리가 살면서 이런 광야와 같은 시련을 만나면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더욱 더 기도하고 말씀으로 무장하여 승리하여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광야에서 시련의 세월을 보내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새벽 장막 문 앞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고 반석에 솟아나는 물을 마시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메추리를 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생존의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이 그들의 삶에 주인임을 인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생존과 하나님의 은혜와의 관계를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생들의 삶의 근거가 스스로의 노력과 경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우리가 부딪히는 시련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의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전쟁과 같은 현실을 견디어 가는 우리 믿는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6:31)”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한다면 우리들의 필요를 충분히 채우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가 되어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문4절에 “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광야 사십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한 사람도 굶어 죽은 사람이 없고 떨어진 의복을 입은 사람도 없고 발이 부르큰 사람도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시련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고 사모하게 되었고 그것은 하나님의 지극한 배려로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믿는 성도들은 광야 같은 삶 속에서 시련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히브리서12장6절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고 했고 본문5절에는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능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도 하시지만 때로는 고통의 현장으로 인도하시도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들에게 시련을 주시는 것은 그들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더욱 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시키기 위함으로 그들이 더욱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더 사모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매를 드는 부모의 심정으로 믿는 성도들에게 시련을 주시는 것입니다.

소련의 문학가 도스토예프스키는 무척 불행한 환경과 고난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어려서 아버지가 살해되었고 고아로 성장한 그는 청년 시기에 혁명당에 가담했고 체포되어 사형 선고까지 받았으나 그의 천재적인 문학적 자질 때문에 황제의 특사를 받아 시베리아로 유배되어 4년 간 살았습니다.

그 후 결혼했는데 그의 아내는 결혼 전에 사귀던 남자와의 불륜의 관계를 결혼 후에도 계속하였으며, 그 때문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받으며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결국 병으로 죽고 그는 재혼하였는데 또다시 첫 아들이 추위와 생활고 때문에 사망하는 슬픔을 당하게 됩니다.

신체적으로도 그는 거의 평생 간질을 앓던 환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병을 ‘거룩한 병’이라고 불렀는데 신체적 고통이 자기의 신앙을 굳게 만들고 자기의 삶에 의미를 주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작품의 일관된 주제는 고통과 흑암은 행복과 광명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시련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시련에 관해서 다음 세 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는 시련은 우리 모두의 공통된 경험이며 어느 누구도 제외될 수 없는 우리 삶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시련은 일시적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C. B 윌리엄스는 베드로전서 1장17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비록 잠시 동안 여러 가지 시련으로 슬픔에 휩싸여 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에 대한 희망 가운데 기뻐하시오” 이와 같이 시련은 힘든 것이지만 잠시 동안일 뿐입니다. 셋째는 시련은 헛되이 버려서는 안 될 교훈을 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 필연적으로 좋은 것도 아니지만

시련은 궁극적으로 선을 위한 하나님의 활동을 성취시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쉬운 순례 길을 약속한 것이 아니라 단지 안전한 상륙을 약속하셨을 뿐이다고 조지 스위팅은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이 고단하고 시련이 계속된다고 하여도 그 시련을 통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느끼고 더욱 더 성숙한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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