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성전이 되자

By 담임목사 on March 29, 2020

본문: 갈라디아서2장9-10절
제목: 교회의 기둥이 되자

집을 건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대들보와 대들보를 받치는 기둥입니다. 기둥이 부실하면 비바람에 무너져 버리게 됩니다. 본문에 사도바울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인물과 일꾼들을 신령한 기둥이라고 합니다. 신령한 기둥은 바로 베드로, 야고보, 요한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충성된 성도들을 주님께서 성전의 기둥같이 여기신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어떤 기둥이 되어야 신령한 기둥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건축한지 100년이 지나 들을 수도 놓을 수도 없는 우리 교회는 State 문화제관리청에서 문화제로 지정하는데 동의해 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아직 동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약간의 보조는 있지만 제약과 의무사항이 많아서입니다.

財政적인 문제로 잘 관리를 못해서이지 지금은 이렇게 견고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건축할 수 없습니다. 형편이 되어서 잘 관리하면 앞으로 100년도 문제없이 예배를 드리는 성전으로써의 역할 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성전에 나와 예배를 성도가운데 신령한 일꾼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주님의 전의 기둥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똑 바른 기둥이어야 합니다.

삐꾸러진 기둥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힘을 쓰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둥은 곧아야 합니다. 기둥은 나무나 철근, Concrete으로 만드는데 하나같이 바르고 곧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곧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한 마디로 정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 없는 인물을 고결한 인격을 가진 사람을 기둥감으로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는 성전에 기둥이 되고자 한다면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 앞에서 진실 되게 사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우리교회는 100년에 최소 50년을 준비하여 건축한 흔적이 성전 안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앉아 있는 의자는 원목을 통째로 깎아 만들었는데 넓이가 3m, 높이가 10m는 족히 되는 원목을 건조하여 손으로 깎아 만들자면 정성과 시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기와는 돌을 깎아 만들어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문제가 없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려면 온갖 정성을 기울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마음이 바르지 못한 열한 아들보다 마음 바르고 곧은 요셉을 쓰셨고, 열두 정탐꾼 중 마음이 굳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높이 들어 쓰셨고, 마음이 구부러진 사울은 패하시고 마음이 바르고 곧은 다윗을 왕을 세우셨습니다. 우리들도 요셉과 다윗처럼 정직하고 진실 된 모습으로 곧은 역할을 잘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단단한 기둥이어야 합니다.

Cement는 건축에 있어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자갈과 모래를 썩어 사용하면 돌과 같이 단단해집니다. 많은 힘을 집중적으로 받는 기둥에는 아주 중요한 재료가 되었습니다. 기둥이 조그마한 충격이나 압력에 쉽게 부러지거나 구부려지면 기둥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기둥은 단단하고 강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교회의 기둥이어야 합니다. 기둥은 믿음입니다. 어떤 재앙이나 시련 그리고 고난과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견디어 낼 수 있는 믿음으로 무장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재앙을 극복해 나갈 수 있게 하고 결국 승리하게 할 것입니다.

신약성서 누가복음6장48-49절에 보면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히되 잘 지은 연고로 능히 요동케 못하였거니와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주초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히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고자 하면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아 거친 비바람과 어떤 상황에서도 요동치 않은 기둥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요즈음처럼 힘든 재앙 속에서 우리의 믿음 반석 위에 세워진 집과 같아서 어떤 재앙에도 흔들리지 않고 든든히 서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다듬어 가는 기둥이 되어야 합니다.

다듬어 간다는 것을 修養한다고들 합니다. 나무를 기둥으로 쓰고자 하면 일단 베어야 합니다. 아무 나무나 베는 것이 아니라 질도 좋고 곧기고 하고 굵기도 하며 튼튼하게 생긴 나무를 선택하여 벱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믿는 성도들도 기둥으로 사용하기 위해 베임을 당하도록 세상 향락을 끊고 혈과 육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어느 시골에서 머슴살이를 하던 젊은 총각이 새경을 받아 적금을 부어 장사 밑천을 만들어 서울로 갔습니다. 문제는 시골에서 남의 집 머슴 살 때는 주일 날 하루는 쉬기 때문에 교회 나가 이런저런 일을 하면 온종일 있었습니다. 그 시골 교회는 그 머슴이 빠져 나가자 일꾼이 없어 야단이 났습니다. 한 마디로 그 교회의 기둥이었습니다.

서울로 왔더니 주일 날 교회 나가기가 힘듭니다. 장사해야지요. 돈이 보이니 욕심도 생기고 모처럼 쉬는 날에는 여기저기 구경할 것도 많이 있지요 친구도 만나야지요. 날마다 나쁜 습관이 덕지덕지 생깁니다. 석공이 돌이 다듬듯이 땀 흘러 스스로를 다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떤 젊은이가 보석 전문가를 찾아가서는 보석 기술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전문가는 젊은이가 기술을 배울 만한 인내심이 없어 보여서 제자로 받아들이길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번만 기회를 달라는 청년의 간청에 못 이겨 승낙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보석 전문가는 다시 찾아온 젊은이에게 비취 원석을 주면서 그대로 쥐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일자리로 가서는 묵묵히 보석을 깎고 다듬었습니다. 젊은이는 말없이 그대로 앉아 기다렸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도 보석 전문가는 전날과 똑같이 젊은이에게 비취 원석을 손에 쥐고 있게 했습니다. 셋째 날, 넷째 날 그리고 다섯째 날에도 같은 일을 되풀이했습니다. 여섯째 날에도 청년에게 비취 원석을 쥐고 있게 했습니다.

그러자 더 이상 참지 못한 청년이 입을 열었습니다. “선생님, 언제쯤이야 저도 뭔가를 배우게 될까요?” “때가 되면 배우게 될 거야” 이 말만하고 선생은 계속 자기 일만 했습니다. 그 후로도 여러 날이 지났고 젊은이의 불만도 커져 갔습니다. 어느 날 아침 보석 전문가가 그에게 다가서며 손을 벌리라는 시늉을 했습니다.

이 때 그 청년은 이제는 더 이상 계속하지 못하겠다는 말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보석 전문가는 젊은이의 손에다 돌멩이를 쥐어주었습니다. 그것을 받아 쥔 젊은이는 손을 펴보지도 않은 채 말했습니다. “이것은 전의 그 비취 원석이 아니네요.” 그러자 선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자네도 드디어 배우기 시작했군.“

사도바울은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간 자신을 다듬었습니다.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40년,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모두 80년 동안 자신을 다듬었습니다. 우리는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처럼 스스로를 다듬어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바 된 성전의 기둥이 되기 위해 말씀과 기도로 모난 곳을 제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선한 청지기가 되셔서 한없는 은혜와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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