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마음

By 담임목사 on December 3, 2017

본문: 마태복음24장37-44절

제목: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마음

매년 이 때쯤이면 동구 밖 느티나무 뒤에 몸을 숨기도 퉁퉁거리는 호흡을 느끼며 짝사랑하는 소녀를 훔쳐보던 철부지 思春期 시절이 애달프게 그리워집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면 그림자 뒤에 숨어있는 실루엣같이 희미한 기억들이 세록세록 그려지며 어머니를 생각하게 합니다.

客地 나간 아들이 언제나 오려나. 놋그릇에 하얀 쌀밥 담아 아랫목 이불 밑에 넣어 두고 된장찌개 끊어 부뚜막에 올려놓고 바람소리에도 행여 아들인가 버선발로 뛰어 나서던 어머니의 그 모습이 눈가에 선합니다. 관음같이 빠른 날들이 낙엽 떨어지는 소리에 어머니의 심정으로 창문 너머를 바라보는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기다림이라들 하는 가 봅니다.

교회력으로는 그리스도를 기다림이 시작되는 대강절 주일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기다림의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36절에 ‘그 날과 그 때는’ 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 날과 그 때는’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실 재림의 날을 이릅니다.

재림의 모습을 요한계시록1장7절에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라고 했고, 성경은 ‘그 날’의 징조를 ‘해와 달과 별에 징조가 나타나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와 우는 소리에 혼란과 불안으로 절망한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날에 기쁨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과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여 애곡할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세의 징조가 보이는 이때에 예수님을 영접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사도요한의 신앙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라면서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을 헤아려 보려합니다.

  1. 신랑을 기다는 신부의 심정으로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본문42절 이하에 보면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5장1절에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라고 예수님을 기다리는 자세를 비유로 말씀하셨고 다른 비유로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심정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결혼제도를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 혼인은 대단한 경사였습니다. 그래서 잔치를 일주일간이나 합니다. 혼인할 때가 이른 총각 집에서는 집안의 대표를 뽑아 신부 집에 보냅니다.

신부 집에서도 집안의 대표가 나와 ‘신부가 美人이고 知的이며 슬기롭고 가정교육도 잘 받아 살림도 잘하니 금 오백 냥을 내시오’합니다. 그러면 신랑 집 대표가 나서서 ‘신부가 코도 납작하고 눈은 찌어지고 신장도 작고 궁둥이도 작고 하니 절반으로 깎아 이백 오십 량만 합시다.’라고 흥정을 합니다.

흥정이 끝나면 신랑은 값을 지불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은 ‘정혼’이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약혼이라고 하지요. 이때부터 신부는 오매불망 신랑을 기다려야 합니다. 신랑이 예기치 않은 때에 오기 때문에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동내마다 동내 어귀에 높은 망대를 만들어 놓고 망을 보며 신랑을 기다립니다.

캄캄한 밤에 신랑이 왔는데 등불을 준비하지 않았으면 혼인식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신부는 순결해야 합니다. 만약 순결하지 못하면 동내 밖으로 쫓겨나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이 비유에서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부는 성도들을 상징하고, 기름은 성령을, 그릇은 성도의 마음을, 그리고 불타는 등은 풍성한 신앙을 나타냅니다.

그릇만 있고 기름이 없는 자는 사람이 보기에는 믿는 사람이지만 예수님 말씀처럼 입으로 주여, 주여 하는 자요 실상은 공허하여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지 못한 사람입니다. 요즈음 흔한 말로 ‘말세다. 말세다.’라고들 합니다. 왜냐하면 말세의 징조가 여기저기에서 날이 갈수록 짙어져만 가고 있습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한 채 허탄한 것을 쫓으면서 노아 홍수 때처럼 향락에 빠져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너희는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라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너희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을 사모하여 기다리며 십자가 보혈 씻음 받고 ‘오직 예수’의 순결함으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며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날마다 성령 충만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여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2. 주인을 섬기는 충성스러운 종의 심정으로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매사에 적극적인이고 긍정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매사에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어디서나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가려고 최선을 다하려고 애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믿는 성도들도 주님의 뜻을 알고 주님께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애써야 합니다.

우리 날마다 ‘주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나로 하여금 종일토록 주의 뜻을 행하게 하옵소서.’ 라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기도하며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힘쓰는 사람이 되어 예배하는 생활로 예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마태복음2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달란트 비유로 두 종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게으른 종은 언제나 주인이 돌아올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정해 놓고 그때까지 먹고 마시며 즐기는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충성된 종은 언제나 주인일 돌아올 시간을 알아서 늘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그 결과 충성된 종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고 게으른 종은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겨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아야 했습니다. 이처럼 충성된 종은 주인의 모든 일들을 잘 맡아 기쁜 마음으로 사명을 잘 완수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오늘의 삶을 보람되고 힘 있게 최선을 다하여 실천하는 성도입니다.

3. 부모를 섬기는 자녀의 심정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비둘기는 나뭇가지에 앉을 때 어미새보다 3단 아래의 가지에 앉아 예를 표하고, 까마귀는 늙어 어미 까마귀를 공양한다는 뜻의 “비둘기에게는 3단의 예가 있고, 까마귀에게는 반포의 예가 있다”는 중국속담이 있습니다. 미물조차 어버이에 대해서 이 같은 효도를 다하는데 사람으로서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짐승보다 못한 자리로 떨어진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말입니다.

‘예기’에 보면 “효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했는데, 가장 뛰어난 효는 부모를 존귀하게 함이요, 그 다음은 부모에게 욕을 돌리지 않음이요, 그 아래는 부모를 봉양함이다”고 했습니다. 孝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의식주로 보살펴 드리는 것이고, 가장 고귀한 것은 자식이 선행으로 부모의 이름이 널리 존경받게 되는 것인데, 즉 효의 근원은 자식의 행실에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어머니께서 하늘나라로 떠나신지 30여년이 지났고 아버님은 십여 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아들을 기다리시던 어머니의 마음 때문에 忍苦의 세월동안 인내함으로 남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사람으로 살 수 있었고, 또한 유명하게 성공한 목사는 아니지만 아버님 존함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목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않고 오늘도 새벽을 깨웁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우리를 기다리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을 예비해 두시고 구하는 자마다 주시고, 찾은 자마다 찾게 하시고, 두드리는 자에게 열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날’ 주님 앞에 설 때 우리의 모습 그대로 나서야 합니다.

어느 잡지에 실린 ‘기다림’이란 제목의 짧은 칼럼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생은 기다리는 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린아이는 자전거를 탈만큼 나이가 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젊은이는 그가 차를 운전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의학도는 졸업증서를 받을 때까지, 직장인은 승진을 기다려야한다. 기다림의 기술은 한 순간에 습득되는 것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한때 미국에 ‘기다리는 아내들’이 사회문제로 등장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 한국도 심각한 기다림의 병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직장 일에 파묻힌 남편과 훌쩍 성장한 자녀들. 40,50대 가정주부들은 막연한 기다림에 지쳐 공허의 늪을 허우적거린다고 합니다. 여인들은 결국 ‘모임’을 핑계로 외출을 한다고 합니다.

맛 집을 참새처럼 찾아다니는 미식 파, 대낮부터 소주를 마시는 주사파, 화투판을 벌이는 놀음 파’ 기다리는 아내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사회봉사와 전도에 나설 수는 없을까? 예수님은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복음 증거하고 구원의 소식을 전하며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이제 오실 예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움에 처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니 나의 평안을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들은 우리 주님이 오실 때까지 모든 근심과 걱정과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담대하게 생활하며 우리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No Response to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마음”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