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쳐 주리라

By 담임목사 on October 20, 2019

본문: 예레미야33장4-8절
제목: 내가 고쳐 주리라

人間은 未來의 不確實性을 극복하고자 온갖 노력을 다해보았지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人生이 아닌 가 싶습니다. 오늘의 내가 있을 줄 想像조차 할 수 없어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세상살이가 아니었나. 싶어 뒤를 돌아보니 벌써 떠나야할 때가 다 되어 쇠약해져 가는 肉身이 朝夕으로 나를 괴롭게 합니다.

世上事 마음먹기에 달러다고들 합니다만 힘이 달리니 마음이 약해짐을 거역할 수가 없습니다. 가큼 想像의 나래를 펴고 超能力의 어떤 힘이 IQ는 160정도의 고등학교 1학년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나의 인생이 어떻게 변할까? 헤아려 보지만 그건 꿈이지 현실은 늘 ‘아이고!’소리만 더해만 가지요.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3장1절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라고 한 것입니다. 지난 주 하나님께서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오늘 본문은 우리가 부르짖을 때 어떤 복이 임하는 가를 밝히고 있는데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고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6절에 “내가 이 성을 치료하여 고쳐 낫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역서 성은 예루살렘 성인데 이 성에 사는 사람들은 죄를 짓고 회개하고 용서받고를 끝임 없이 반복하며 살았습니다. 성에 사는 사람들이 회개하면 그 성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고 흥하게도 하시고 망하게도 하시고 되게 하실 수도 있고 안 되게 하실 수도 있는 하나님께는 성 뿐만이 아니라 사람까지도 고쳐 낫게 해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고치시고 우리가 살고 있는 황무한 땅을 고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 중에 36가지의 기사와 이적을 행하셨는데, 그 중 우리가 주목해야할 두 가지는 첫째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마8:10)는 말씀입니다. 자기 집 下人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께 나온 백부장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백부장의 믿음은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겸손’과 ‘확신’그리고 ‘긍휼’입니다. 자기 집 下人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마음’ 그리고 당시 상당한 직위에 있음에도 예수님을 향한 겸손 그리고 고칠 수 있다는 확신, 바로 이것이 백부장의 믿음이었습니다.

병들어 죽게 된 한국의 어느 知性이라는 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個人的인 생각이고 질문이지만 ‘Christian인가?’라는 생각, 그리고 ‘구원을 받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믿음이란 지식이나 과학 그리고 의학으로 설명되는 않는 것이야 합니다.

둘째는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마9:2) 여기서 주목해야할 말씀은 “죄 사함‘입니다. 좌초지경 전후사정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이 중풍병자는 자신도 모르는 죄 때문에 병에 걸리게 되었고 그 죄를 용서받고야 병을 고쳤다는 사실입니다.

시편139편에 보면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셨나이다.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 며”라고 했고,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우리 아십니다. 우리를 고치십니다. 이 땅도 고치십니다.

2. 회복하십니다.

본문7절에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은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70년간의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해 주며 복되고 행복했던 처음처럼 회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회복’은 ‘이전 상태로 돌이키거나 본디의 상태를 되찾음.’이라는 의미로 ‘해방되다, 신원하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신원하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新約聖書 누가복음15장11절 이하에 보면 유명한 탕자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골 富者 집 둘째 아들인 그는 촌구석에서 농사일 하는 것이 지긋지긋해서 아버지에게 물려줄 유산을 미리 달라고 때를 써서 받아가지고 어느 날 재산을 정리하여 都會地로 나갔습니다.

13절에 보면 “먼 나라로 가 거기서 허랑 방탕하였다”고 했습니다. ‘쓰는데 장사 없다’는 말처럼 얼마가지 않아 가지고 나온 돈이 바닥이 나고 말았습니다. 노숙자가 되어 동내 쓰레기통을 뒤져 먹고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는데 그것조차 주는 자가 없습니다.

17절에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중요한 것은 탕자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돌이켜 아버지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뻔뻔한 아들을 아버지가 받아 주였다는 사실입니다.

수천 번 수만 번 돌아와도 아버지가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 ‘나는 너 같은 자식을 둔 일이 없다.’며 받아 주지 않는다면 그는 돌이켜 돌아와도 거지꼴을 면하지 못하고 버림받은 자식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랑의 본체시라 끝없이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는 분이십니다.

본문7절에서도 하나님은 돌아오게 하시며 돌아온 사람들을 처음처럼 세워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전에 우리는 죄의 포로로 살았습니다. 온갖 질병과 고통의 사슬에 묶인 채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돌아오게 해주셨고 우리의 결박과 사슬을 풀어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믿는 우리 성도들은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죄로부터, 고통으로부터, 절망으로부터, 좌절과 패배로부터, 질병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놀라운 회복의 은총이 이 시간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3. 죄악을 사하십니다.

본문8절에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선택받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두 가지 죄를 범했습니다. 이사야서43장1절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창조하시고 조성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였고 백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엄청난 대역죄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창조하시고 조성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오늘 이스라엘 백성처럼 불신앙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설상가상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바알 신, 몰록 신, 아세라신을 섬겼습니다. 바로 그 죄 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살던 땅에서 쫓겨났고 백성들은 사방팔방으로 흩여져 70년을 살았고 메시야를 바로 알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 죄로 2천년을 나라 없는 유린하는 자들로 살았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요즈음 조상들은 배고파 죽을 지경이라고들 아우성이라고 합니다. 전통적으로 제사를 자정에 그러니까 밤 12시에 지냈는데 사람들 기다리기 지루해서 초저녁에 지내는 바람에 늦게 온 조상들이 이미 제사를 지네고 제사상까지 모두 치워 얻어 먹지 못하여 고픈 배를 움켜쥐고 돌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불신했습니다. 이방신에게 제사를 지내다가 나라가 망하는 하나님의 진노를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내게 범한 모든 죄악을 사해 주겠다.”고 하십니다. “모든 죄악을 사한다는” 것은 용서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용서받은 후의 삶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다시는 죄악을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요한복음8장에 나오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온 여인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은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오니 다시는 가서 죄를 범치 말라”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가서 다시는 조를 범치 말라”고

어떻게 살아야 죄를 범치 않고 살 수 있을까요? 서두에 말씀 드린 대로 쇠잔해저 가는 육신이 심령을 약하게 합니다. 그래서 勞心焦思 하루하루를 두려움 속에 견디어 겨우겨우 견디어 가는 저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라고(시23:3)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고 영혼이 소생되어지는 길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며 기도하고 성령님을 우리 안에 모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고쳐 낫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 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사해주십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응답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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