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듣게 하리라

By 담임목사 on October 27, 2019

본문: 예레미야33장9-11절
제목: 내가 듣게 하리라

지난 주간 ‘牧會’ 세미나가 있어 다녀왔습니다. 長時間 운전에 피곤하면서도 머리를 짓누르던 온갖 생각들이 지나치는 自然의 아름다움에 무엇인가 힘에 의해 빠져나가고 가슴 깊이 스며드는 평안함이 그 동안 쌓인 모든 피곤함을 잊게 했습니다. 그래서 적당한 旅行과 休暇가 필요하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목회자들이 한 공간에 머물며 먹고 자며 함께 보낸 시간들이 유익한 시간이었는데, 한 가지 문제는 그냥 쉬고 싶은 사람과 말하고 싶은 사람간의 이해의 충돌이었습니다. 적절한 시간의 배정으로 은혜롭게 잘 마쳤습니다만 늘 그렇지만 어느 모임이나 주재 넘은 언행으로 남을 불편하게 해서 분위기를 어색하게 하는 사람이 있지요.

이 어색함을 여러 가지로 방법으로 해소할 수 있는데 그 중 한 가지가 相談입니다. ‘相談’을 국어사전에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거나 궁금증을 풀기 위해 서로 의논함. 상의(相議).”라고 정의해 놓았습니다. 영어로 ‘consulting’을 ‘전문적 조언을 주는, 자문의, 의논 상대의, 고문(자격)의; (의사가) 진찰 전문의, 진찰을 위한’ 등의 의미입니다.

사람이 모여 있는 모든 共同體 안에는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들으려 하지 않고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상담해서 치유할 것인가? 목회초년병부터 은퇴를 앞둔 목회자까지 이런저런 방법들을 討論했지만 각자 현장이 다르기 때문에 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저의 경험으로는 상담을 하고 나면 반드시 교회가 시험에 들고 교인들이 떠나갑니다. 이유는 ‘주재 넘은 언행’입니다. 첫째는 스스로의 고민을 주재 넘게 말로 표현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것을 해결한다고 나서는 행동 때문입니다. 저의 경험으로는 듣고 조금 기다려 주면 스스로 해결합니다. 누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移民자들에게는 言語의 장벽 때문에 조금 생소하기는 하지만 美國社會는 ‘전문적 조언과 전문적 친찰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스스로의 고민과 문제를 信仰에 결부한다는 것입니다. 信仰的으로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찬양을 부르는 것입니다. 말이 필요 없습니다. 두 曲 정도 찬송을 부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찬송만 부르면 되는데 말을 할러고 하기 때문에 시험만 깊어 가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모여 두서너 곡 찬송을 부르니 이내 눈물이 흐르고 은혜 충만하여 아멘 소리가 절로 납니다. 그래서 위로 받고, 치유 받고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을 또 다시 경험하는 세미나이었습니다.

어떤 夫婦가 이혼을 해야 한다면 상담을 요청합니다. 저는 이혼 전문상담사를 찾아가 보라고 권면합니다. ‘목사가 왜 저래’ 투덜거리며 돌아갑니다. 해결을 못하고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판사가 전문상담치료를 받고 3개월 후에 다시 오라고 합니다. 전문상담사를 찾아 갔더니 쌍방 간에 말을 다 듣고 처방전을 주며 약을 먹어보고 한 달에 후에 오라고 합니다.

약을 먹고 다시 오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고 만약에 약을 먹고도 다시 오면 상담사는 정신과 의사에게 가보라는 소견으로 정신과로 보냅니다. 정신과 의사도 夫婦간의 모든 이야기를 듣고 처방을 합니다. 95%가까이 치유되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간다는 연구 결과입니다,

5%의 치유되는 않은 문제와 사람들 때문에 信仰, 즉 믿음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 문제들은 知性이나 智識과 理性으로, 즉 말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누구십니까?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분이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예수님을 부르는 마음과 태도입니다. 시편100편1절에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 지어다.”라고 했고, 시편105편1절에는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일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밝히고 있는데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평강을 주십니다.

본문9절에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평강을 인하여 두려워하며 떨리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과 나라들이 받은 복과 평강 때문에 주위 온 나라와 사람들이 놀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29편1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이로다.”했고 이사야26장12절에는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평강이 어디로부터 오는가를 밝히는 말씀입니다.

韓日간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한국의 經濟가 어려워지지 않나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일본이 불리해지는 것이 아닌 가하는 조짐들이 여기저기에서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代表的인 것이 이스라엘과의 관계입니다. 西方 나라들이 한국을 지지하면서 상황이 반전되었습니다.

그 중에 우리가 눈여겨 봐야할 것이 이스라엘과의 관계입니다. 이스라엘은 ‘우리는 평화를 원합니다.’고 외치며 평화를 위해 세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UN의 중재, 미국이 중재, 그리고 자신들의 노력’ 그러나 우리는 늘 불안하다고 전 세계를 향하여 외치고 있습니다.

基督敎的 입장에서 이야기 하자면 본디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부터 평화를 찾던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평화를 찾지 않고 이방신에서 찾다가 10번이나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20번이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今世紀 들어서는 ‘UN이나 미국 그리고 협상을 통해서 평화를 찾다가 보니 어떤 사태가 돌발하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세계는 이스라엘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4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합니다. 회교도 지역, 기독교 지역, 유대인 지역, 아르메니아 지역, 특히 아라파트가 이끄는 팔레스타인과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 평화가 깨질지, 언제 총성이 울릴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한국과 이스라엘과의 관계에 주목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백성과 나라에 평강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영국, 독일, 이스라엘 그리고 한국이 하나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두 하나님을 따르는 나라들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은 시들지도, 날아가지도, 꺼지지도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바로 이 평강과 평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2. 소리를 다시 듣게 하십니다.

본문10-11절에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고 황폐한 그 거리에 다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 신부의 소리, 하나님께 감사 찬송하는 소리가 들리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적막하고 고요했던 예루살렘이 회복되면서 북적대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소리가 어디서 오며 누구의 소리냐는 것입니다. 구약성서 사무엘상15장22절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 이야기 하면 말씀에 순종하는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가장 큰 은혜라는 것입니다.

세미나 기간 중에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아주 깊은 골짜기를 산책하면서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에서 가슴 속 깊이 감추어진 상처들이 하나 둘씩 씻겨 나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고요하고 맑은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낙엽 떨어지는 소리에 절로 찬송이 나옵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워볼 때 하늘의 별 올려 펴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은퇴하면 이런 조용한 산골에 들어가서 사람 안 만나고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옆에 있던 목사가 ‘목사님! 젊을 때는 산 속도 좋고 바닷가도 좋고 사람 없는 계곡도 좋지만, 늙으면 사람 소리도 들리고, 자동차 소리도 들리는 곳이 좋습니다. 늙으면 늙을수록 외로워집니다.’전쟁으로 폐허가 된 예루살렘 사람소리도 짐승 소리도 끊어졌습니다.

웃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노랫소리 끊긴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거리에 다시 사람이 왕래하고 웃는 소리, 떠드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젊은이들의 소리가 들리게 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 부르짖은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중요한 말씀은 본문10절 하반 절 “여호와의 집에서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충만한 사람은 찬양이 떠나지 않고, 기도소리가 골방에서 끈기지 않고, 감사소리가 입에서 떠나지 않은 사람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찬양과 기도 그리고 감사소리가 나지 않는 사람입니다.

찬송은 소리 내어 부르는 것입니다. 기도도 소리를 내어 듣게 하는 것입니다. 감사의 소리도 들러야 합니다. 여러분에서는 어떤 소리가 마음속에 있습니까? 슬픈 소리입니까? 아니면 기쁜 소리입니까? 아니면 불만과 부정적인 소리 입니까? 그리고 어떤 소리를 내고 있습니까? 찬송소리, 기도소리, 감사소리 입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찬송소리, 기도소리, 감사소리를 내어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짖은 사람들에게 평강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심령 속에, 가정 속에, 우리 교회 안에 다시 들리게 합시다. 눈을 들러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봅시다. 손을 들어 주의 옷자락을 잡읍시다. 입을 열어 주의 이름을 부릅시다.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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