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인하리라

By 담임목사 on October 29, 2017

본문: 마태복음10장32-33절

제목: 내가 시인 하리라

‘是認’하다는 단어의 의미를 국어사전에 ‘어떤 내용이나 사실을 옳다고 인정함’이라고 정의해 놓았고 漢字적으로는 옳을 시에 알 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어떤 내용이나 사실’인데 본문에서 시인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 양의 피로 죄 씻음을 받았을 때의 내용과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본문에서 시인이란 구원 받은 후에 일어나는 것으로 구원 받은 사실을 입으로 시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믿음이 전제되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11:1)라고 하였고, 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못한고 했습니다.

운전을 하다 앞 차를 보면 이상하게 생긴 번호판을 볼 수 있습니다. 저것인 무엇일까? 늘 궁금했습니다. 독수리 모양의 그림이 들어있고 성조기도 그려져 있고. 그 번호판은 미국에서 최고 훈장을 받은 사람에게만 달 수 있는 번호판이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이 사람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최고의 공을 세운 사람임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 번호판을 부착된 차량은 웬만한 곳은 free pass라고 합니다. 그리고 일생동안 자신을 위해 한 번은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전쟁에 나가 싸운 군인이 국가로부터 그 공을 인정받아 훈장을 받고 모든 사람이 이를 시인한다면 얼마나 감격스럽고 영광스런 일입니까?

중국에서 상공한 군인의 최고 야망은 왕궁이나 공자 사당에 자기의 이름이 기록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이름이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의 아들, 영광의 왕에 의하여 기록되고 언급되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오늘 이 자리에서 그 분의 이름을 시인했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예수님을 시인하십시오. 그분이 거기서 여러분을 시인하실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처한 깊은 웅덩이에서 빠져 나오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어둡고 캄캄한 인생길에서 자유와 기쁨이 있는 환한 빛으로 나오기를 원한다면 그리스도 편에 서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의 아들을 시인하기가 부끄러워서 어둠 속에서 헤매고 다니며 천국의 환한 빛 속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면류관은 원하나 십자가는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받기는 원하나 사랑할 줄은 모르고 복 받기는 원하나 봉사하기는 싫고, 용서 받기는 원하지만 용서할 줄 모르고. 그래서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의 십자가를 매일 매일 져야만 합니다. 일 년에 한두 번만이 아니고 주일에만도 아닙니다. 매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복을 받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시기 바랍니다.

40여년 만에 친구를 만나기로 하고 약속에 장소에 가서 아무리 두리번거리면 찾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전화를 빌려 카톡으로 사진을 주고받았습니다. 바로 옆에 서 있던 사람이 친구였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바로 옆자리에 계시데 우리가 볼 수 없습니다.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계속됩니다. 좀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성경말씀을 통해서입니다. 말씀 속에 그리스도의 모습이 들어 있어 성경말씀을 통하지 않고는 주님을 만날 수도 찾을 수도 알아볼 수도 없습니다.

어떤 남자 집사님이 저를 찾아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목사님, 저는 사도신경을 외우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가 ‘아니 주일 마다 예배 시간에 고백을 하는데요.’ 했더니 ‘아이구, 목사님, 제가 스스로 믿음이 좋다고 생각하고 봉사한다는 핑계로 늘 안내만 보았습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이지요. 잘 싸웠는데 재수가 없어 진 축구경기지요.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시인하는 것 중 하나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는 소홀히 하면서 선한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산제사가 선제되지 않은 믿음은 거짓입니다.

이사야서 44장3절에 보면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수없이 성경을 읽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나쳐 버리는 구절입니다. 구약성서에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하신 말씀이 “네가 지시한 땅으로 가면 너에게 복을 내리겠다는 언약의 말씀입니다.

이 하나님의 언약만 믿고 지시한 땅으로 아브라함이 가보니 적막한 메마른 땅이지 축복의 땅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외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순종하여 드림으로 땅에 하나님을 시인하는 산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땅이 여전히 메마른 땅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代代孫孫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을 섬깁니다. 그 결과 그 땅에서 쫓겨나 70년 동안 바벨론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그 땅으로 돌아왔습니다만 역시 사람이 살 수 없는 적막한 땅입니다. 그래서 또다시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하고 구세주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 못 박아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역사 속에 사라지게 됩니다. 2천년 동안.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온갖 수모와 박해를 당하며 살았습니다. 2차 세계전쟁 당시 히틀러에 의해 600만 유대인 가스실에서 학살을 당했습니다.

1948년 약속에 땅에 돌아온 유대인에게 그 땅은 여전히 적막하고 메마른 땅이었습니다. 젓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2천년 동안 잃어버리지 않고 간직해온 하나님의 말씀 성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절망 앞에서 조상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말씀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이 생각났습니다.

성서를 펴고 읽어 내려갑니다. 이사야서 35장에 이르러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여주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여주며 겁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시랑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거기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그들은 이 말씀을 읽으며 아멘으로 화답하며 하나님을 시인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를 시인합시다. 그러면 칠흑 같은 어두움이 물러갈 것입니다. 근심과 걱정이 물러가고 우리 영혼에 생수 넘칠 것입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될 것입니다.

공항 대합실에서 성경책을 꺼내 읽고 싶은데 꺼내기가 무척 부끄럽습니다. 오랫동안 하나님 없는 생활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성경책을 펴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그 복된 말씀을 소리 내어 읽기가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릎을 끊고 있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를 부끄러워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 그 부끄러움을 벗어 던지시는 은혜가 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되시기 원합니다. 가큼 공항에서 보면 담요를 깔고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Christian는 볼 수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마호메트는 져야할 십자가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는 져야 할 십자가가 있는데 그 십자가를 지고 따라 사는 Christian이 너무나 적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내가 누구냐는‘라고 질문하자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그리스도를 시인하였습니다.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말씀을 들은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시인하였고, 수가성의 여인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생명의 물을 예수님께 약속받고 동내 사람들에게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아는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그리스도를 시인하였습니다.

오늘 나도 구원을 주시는 능력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시인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가 됩시다.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시인한 사람들은 말할 수 없는 축복과 상급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 예수님께서 우리를 알아보시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범사에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시인합시다. 그리할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랑스럽고 영예롭게 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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