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By 담임목사 on March 18, 2018

본문: 마태복음16장13-20절

제목: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어느 목사님이 목회를 시작한지 십여 년이 지나도 교회가 부흥을 않자 낙심하여 속으로 생각을 합니다. ‘나는 사명이 없는 것이 아닌가?’ 이러다가 청춘 다 가고 내 인생 죽도 밥도 안 되는 것 아닌가 싶어 며칠 동안 고민하다가 결단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도원에 들어가 사십일 금식기도를 해보고 응답이 없으면 그만 두자고.

生死를 넘나들며 고비를 넘기고 금식기도를 마치자 기도원에 모인 사람들이 ‘목사님, 얼굴에 은혜가 넘칩니다.’ ‘아이고! 목사님, 성령 충만한 모습이 예수님 같습니다.’ 온갖 칭찬을 하며 안수기도를 받겠다고 줄을 섭니다. 신이 나서 힘든 줄도 모르고 기도를 해주고 새벽시간에 설교를 하니 ‘아멘, 아멘’ 하며 나립니다.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동내 꼬마 녀석들이 모여 놀다가 목사님을 보더니 ‘얼레리꼴레리, 거지세끼가 밥 얻어먹으러 우리 동내에 들어온대요.’ 노래를 부르면 뒤를 졸졸 따라옵니다. 말이 사십일 금식기도이지 피골이 상접한 얼굴에 난무한 옷차림 거지나 다름이 없지요.

도망하듯 서둘러 교회 앞마당에 들어서는데 주일학교 아이들이 모여 술래잡기를 하며 놀고 있는데 멀뚱멀뚱 바라만 볼뿐 아는 체도 않습니다. 그 순간 섭, 섭 마귀가 쑥 들어옵니다. 이네 아니, 그래도 내가 이 동내에서 이십년 가까이 목회를 했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나 싶어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내가 누구냐?’ 묵묵부답입니다.

이천년 전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동내에서 목사님과 같은 심정으로 예수님께서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제자들이 당황하여 망설이고 있는데, 한 제자가 나서서 대답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침례요한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고, 또 어떤 사람은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사람들’이 누구냐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일 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소경이 눈 뜬 사람, 앉은뱅이가 서게 된 사람, 등 각가지 기적을 경험사람들은 예수님을 기적이나 행하는 선지자 엘리야로,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신랄하게 나무라시는 모습에 예레미야를 생각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인자 ‘Son of Man’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인자는 예수님의 지상의 출생, 예수의 고난, 예수의 재림, 이 세 가지 의미를 포함한 말입니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냥 병이나 고치고 기적이나 행하는 사람으로만 보았습니다.

오늘 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예수님을 세상의 영웅 정도로 믿고 따릅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시는 분, 병을 고치시는 분, 바람을 잠잠케 하시고 풍랑을 잠제우시는 분, 절대자나 권능 자로 믿고 날마다 기적이 일어나기를 고대하면 주여, 주여, 부를 뿐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는 않습니다.

섬을 떠나 육지로 향하던 배가 바다 한 가운데서 풍랑을 만났습니다. 아비규환 난리입니다. 죽은 다고 고래고래 고함치는 사람, 눈물을 흘리는 사람, 먼저 살겠다고 바다로 뛰어 드는 사람, 그런데 열나 무살이나 되어 보이는 아이 하나가 선창에 서서 노래를 부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로 하여금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시며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 도다.’ 여름성경학교에서 배운 찬양을 목이 터져라 부르고, 부르고 또 부릅니다. 기적같이 바다가 잔잔해져서 가까운 항구로 무사히 배가 들어왔습니다.

모든 사람이 천운이 따랐다며 좋아하는데, 선장이 이 아이에게 묻습니다. ‘애야, 그 때 무섭지 않았느냐? 노래를 부르게.’ 이 아이가 대답을 합니다. ‘선장님, 여름방학이라 외갓집 섬에 놀러갔다가 심심해서 교회에서 빵도 주고, 떡도 주고, 과자도 준다고 해여 예배당에 갔는데요.’

‘성경공부 시간에 선생님이 예수님이 바다를 잔잔케 하시고 풍랑도 잠잠케 하신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노래를 가르쳐 주셨는데 그 때 그 노래와 이야기가 생각나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절로 찬양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배에 목사가 두 명, 신부가 한 명, 장로가 5명, 권사 집사가 오십 여명이나 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에 답답하신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 제자들에게와 풍랑만난 배에 타고 있던 믿는 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평소 성미가 급하고 직선적인 베드로가 예수님 저요! 손을 번쩍 들더니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고 큰 소리로 외칩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베드로에게 영적 비밀을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같이 우리의 신앙고백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감동으로 이루어질 때만 가능합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이 말씀은 베드로의 이름 위에나 베드로의 인격의 바탕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뜻이 아니라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반석은 믿음을 뜻하며 교회를 의미합니다. 교회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며 구주이심을 믿고 고백하는 신앙고백 위에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고백이 없는 교회는 풍랑만난 배안에서 아비규환 소리나 지으며 두려워 떠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불과합니다.

교회는 예수님께 부름 입은 사람들이 함께 고백함으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나와 예배드리는 우리들의 아이들이 선창에 서서 찬양함으로 풍랑을 잠재운 아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풍랑만나 위기에 처한 배처럼 흔들리는 세상을 구원하는 도구가 되어 지기를 바랍니다.

또한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해서 하루에 삼천 명씩 회개 시키는 능력의 일꾼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들의 신앙고백 위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져 자손만대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주님의 전에 나와 예배하는 우리가 모두가 동일한 고백을 하는 자들이 바랍니다.

본문 19절에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많은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베드로를 통해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그래서 천국에 갔다 왔다는 사람들이 천국 문에 베드로가 있다고들 합니다.

그 말은 당치도 않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 자신도 구원을 받아야 할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열쇠’는 복수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열쇠가 아니라 여러 개의 열쇠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예수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며, 구세주로 믿는 교회를 통해서 믿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을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를 알아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가복음24장19절에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 늘”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누가나 글로바 같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성경에는 초림 예수님에 대한 예언뿐 아니라, 마지막 때에 다시 오실 재림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9:28)

두 번째 오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대답은 우리 각자가 결정할 문제입니다.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자기 자신이 이 물음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아직도 예수님에 대하여 확실한 대답을 못하고 있습니까? 베드로 같이 분명하게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고백은 예수를 구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10장32절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구원할 메시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24장14절에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라고 했습니다. 인정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 말씀을 다 믿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위해 신앙고백을 해야 합니다.

로마서10장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고 요한일서4장15절에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안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4장2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했고, 빌립보서2장11절에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려 십자가의 사명을 완수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풍랑만난 배에 있던 자들이 “예수께 절하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마14:33)”라고 고백 했고, 베드로는 “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고 고백하였으며, 나다나엘은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1:49)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리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나의 구세주라고 고백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 시간에 애타게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의 고백을 들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우리 다 함께 “주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여 천국 문을 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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