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따라 구하라

By 담임목사 on February 17, 2019

본문: 히브리서4장4-16절
제목: 때를 따라 구하자

배구 경기에 ‘시간차 공격’이라는 기술적인 用語가 있습니다. receive를 받아 toss하는 선수와 spike하는 선수와의 timing이 관건입니다. timing 잘 맞아야 환상적적인 공격 point를 올릴 수 있습니다. ‘때를 타고 나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도 모든 일에 때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舊約聖書 전도서3장1절 이하에 보면 世上事가 다 정한 때가 있는데 하늘에 아래서 벌어지는 무슨 일이나 다 때가 있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말 가운데 ‘뒷북친다.’는 말이 있고 ‘버스 지나간 다음에 손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timing을 못 맞추었다는 뜻입니다.

제 방 한 구석 탁자에 육십 년이 다 된 흑백사진 한 장이 놓여 있습니다. 저의 부모님 사진입니다. 아무리 잡으려고 애를 써도 잡히지 않는 후회만이 남은 추억이고 아픔이고 위로입니다. 사진틀 속에 갇혀 말씀을 하실 수는 없지만, 때로는 꾸지람으로, 때로는 위로로, 때로는 희망으로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야, 김 목사, 그러면 안 돼,’ ‘김 목사, 힘들지 잘 될 거야 조금만 더 참자’ ‘아이구, 우리 김 목사, 많이 아프지’ 어루만져 주십니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강건하여 지기를 빌 뿐”이라는 사도바울의 말처럼 부모님의 기도의 응답으로 영적 교제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나 육적으로는 후회만이 남을 뿐 되돌릴 수 없는 시간입니다.

신약성서 마태복음26장45절에 보면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했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제자들과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시러 올라가셨다가 잡히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중요한 문제는 지금이 어떤 때이냐는 것입니다.

1. 악한 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십자가의 때를 몰랐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스승 예수님이 왕이 되시는 영광의 때만을 鶴首苦待 했지 십자가 고난의 때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말처럼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자 세월을 한탄하며 후회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스승 예수를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후에 닭 울음소리에 뉘우쳤지만 이미 때 늦은 후회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깨어 기도하라”고 했고, 사도바울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매순간의 경건 생활에 힘쓰라는 의미입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라는 마태복음24장45절의 말씀처럼 우리에게 나름대로 사명을 지닌 자들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미래를 향하여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로 이것 때문에 “내가 이것을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고 기도 하셨던 것입니다.

오후에 운동하려 가면 老人들만 만난 인사를 합니다. 한 노인은 항상 ‘other day’라고 인사를 합니다. 또 하루가 지나갔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는 세월이 기는 것 같더니, 청년이 되어서는 장거리 뛰는 것 같더니, 어른이 되어서는 세월이 비행기 같이 달아나더니 노인 되어서는 세월이 초음과 같이 지나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이 세대를 악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너무 많이 있지만, 신앙적인 면에서 하나만 이야기 하자면 너무 많이 가진 것 때문에 악하다는 것입니다. 절실함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바로 그것이 악함이라고 성경은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잠에서 깨어날 때입니다.

마태복음26장40-41절에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말씀이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시험에 든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13장11절에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 보다 가까웠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부요함에 세상 허영과 향락에만 취하지 말고 깨어 하라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모든 것은 세월 따라 지나쳐 버립니다. 그런데 이것들에 취하여 심판의 때를 바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누가복음12장40절에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고 야고보 사도도 “주의 강림이 가까 오니라”고 했습니다. 마귀 왕이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그동안 수고한 마귀들을 격려하고 그 동안 수행의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였습니다.

그중 한 녀석이 보고를 합니다. “저는 사막의 맹수들을 풀어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하게 했습니다. 아마 지금쯤 그들의 뼈들이 사막 위에 허옇게 말라 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왕 사탄아 “아 인마 그게 뭐냐? 그들의 영혼 구원을 받았잖아!” 그때 또 다른 녀석이 보고를 합니다. “저는 우주 강한 동풍을 불게 하여 그리스도인들이 타고 있던 배를 침몰시켜 그들 모두를 물에 빠져 죽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왕 미귀가 “아! 이 멍청한 놈 그건 또 뭐냐 그들의 영혼도 구원을 받았잖아!” 이번에는 세 번째 녀석이 일어나 보고를 합니다. “저는 단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의 영혼을 졸게 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더니 많은 사람이 졸고 있습니다. 왕 마귀가 환성을 올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잠에서 깨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마태복음25장 1절 이하에 보면 ‘열 처녀의 비유’에서 다섯 처녀는 기름이 떨어져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고 문 밖에서 문을 열어 달라 간청해 보지만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는 대답만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즉 깨어 있으라. 너희가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깨어있을 때 놓치면 손해 본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열심히 믿어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3. 은혜 받을 때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했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라고 했습니다.(사49:8)라고 했습니다. 믿는 자는 필요할 때에 꼭 필요한 은혜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은혜 받을 만한 때가 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고맙게 베풀어 주는 신세나 혜택.’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는 사랑.’이라고 국어사전에 정의해 놓았습니다. 영어로는 grace, 혹은 bless-ing이라고 합니다.

독일의 신학자인 본회퍼는 당시 독일 교회의 연약해진 원인과 독일 교회의 능력과 사회를 향한 영향력의 상실 원인을 말하면서 이는 교회가 값싼 은혜, 개념에 집착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본회퍼는 ‘값싼 은혜’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회개 없는 용서, 삶을 바꾸지 않고 용서만 가르치는 것, 고백이 없는 세례, 참된 신앙의 고백이 없이 의식에만 참여하려는 것, 교제가 없는 성찬,

하나님과 나 사이의 진정한 교제는 강조되지 않고 성찬이라는 형식만 강조되는 것, 십자가 없는 은혜, 희생이 없는 제자도, 그리스도를 따라가기를 원하고 축복 받기를 원하지만 희생을 거부하고 있는 성도들, 생활이 없는 그리스도, 삶이 없는 그리스도, 이것이 바로 값싼 은혜라고 그는 비판했습니다.

이 시대의 교회들로 마찬가지가 아닌 가 싶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이 세태 말입니다. “그 날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했습니다.

이것은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앞에 자신을 점검합시다. 나의 생활 속에 이런 행함이 있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삼았다면 참으로 내 삶 속에 이러한 행위가 나타나고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가? 누가 나에게 어떠한 신앙 사상을 가져와서 나를 미혹하거든 우리는 이 말씀을 가지고 그들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가? 사도바울은 고백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개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게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고전15:10)라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산 사도바울의 모습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기 바랍니다. 주의 전에 나와 기도하는 일을 계속할 될 때 이 은혜가 더욱 충만해질 뿐만이 아니라 영적으로 연약한 사람도 힘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의 불이 날마다 붙여 나가므로 교회가 부흥하고 우리 모두 신앙으로 성장하기를 주님의 으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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