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돌로 치라

By 담임목사 on July 15, 2018

본문: 요한복음8장1-11절

제목: 먼저 돌로 치라

나사렛 목수의 아들 예수라는 사람이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율법에 맞지 않다 여기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병자도 고치고, 귀신도 내쫓고,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한다는 소리를 들은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이 궁금하기도 하고 자기들에게 위협적이기도 하여 뒤를 따라다니며 트집 잡아 들추어 낼 것이 없나 살피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계시는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본문5절에 이렇게 묻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이렇게도 저렇게도 말하기 힘든 난감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율법의 가르침으로 대답하면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시고 일곱 번씩 일흔 번 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이 거짓이 되고, 무죄를 선언하거나 옹호하는 입장에 선다면 신성한 율법의 적으로 간주 되어 정죄 될 것이고, 치밀하게 계산된 함정이고 간악한 음모이며 교활한 도전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Law and Gospel’ 율법과 복음의 문제를 성서적으로 또는 신학적으로 고찰해볼 필요가 있는데, 결론은 복음과 율법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기본정신은 인간을 속박하거나 불행하게 하거나 죽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지킴으로써 사랑받고 보호받고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입니다.

어느 집사님이 자신의 어머니 권사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 중에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홀로 된 어머니가 아들을 등 업고 매일 새벽기도를 다니는데 논밭을 지날 때는 찬송을 부르시며 가시다가 시장 통에 들어서면 아들의 눈을 가리고 가셨다고 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세상에 더러운 모습을 보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아들이 자라서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아주 새로운 문화를 만나게 됩니다.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더 많은 문화를 접하면서 자신이 자란 가정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엄격한 신앙생활, 절대적은 어머니의 가르침, 그래도 공부를 잘해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됩니다.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만난 문화는 어머니의 가르침이 송두리 채 부정하게 만들었고 우리 어머니는 예수에게 속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 길로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도 하고 선생님을 하다가 미국으로 이민 와서 박사학위도 받고 좋은 직장도 가졌는데 여전히 교회를 멀리하다 못해 조롱까지 합니다.

하도 제가 찾아다니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어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무엇이 문제일까?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머님의 가르침인데 바로 율법적이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스스로 완벽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속으로 생각만 해도 죄라고 하셨는데 피조물인 우리가 어떻게 완벽할 있겠습니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실수하고 질투하고 별의별 상상을 다 하면서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완벽하게 살며 자녀에게 완벽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끝으로 이 집사님은 완벽해질 수 없는 자신에게 두려운 것입니다.

어머니 권사님의 모습에서 오늘 본문에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의 주위에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는 양 숨을 헐떡거리며 손에 돌을 움켜쥐고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 권사님이 아들을 사회에 참여하게 하고 용서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교육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본문에 예수님께서 손 돌을 들고 서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 말씀은 죄 없는 사람만이 정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재미있는 유머로 말하자면 길 가다가 예쁜 처자를 처다 보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돌로 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문제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스스로 완벽하다 생각하고 자식도, 부인도, 남편도, 형제도, 이웃도 돌을 들어 치며 정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본문 9절에 보면 어린 아이부터 젊은이 어른까지 다 떠나고 오직 여인만 남았다고 했습니다. 아들 집사님이 이성적으로 생각하니 자기 어머니가 율법적으로 완벽하지 못했다는 배신감에 사로잡혀 있음을 대화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하고 일생을 방황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야기 중 흥미로운 것은 전 세계 교회 가운데 성미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 오래 전에 교회 마다 성미 함이 있어 추수감사절이나 성탄절에 그것으로 떡이나 음식을 만들어 잔치를 하곤 해셨습니다.

양식이 모자라 굶기를 밥 먹 득 할 때인데 아침저녁으로 밥을 하면서 십 분지 일을 때어서 성미 함 넣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권사님이 성미를 올바로 띠지 않고 조금씩 모자라게 했다는 것입니다. 더욱 집사님의 마음을 강퍅하게 한 것은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어머니 권사님만 훌륭하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3장에 “의인은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에는 그 누구도 돌을 들어 사람 정죄하고 돌로 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호흡하며 살아가는 세상에는 돌을 든 사람과 그 돌을 피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다하는 사람만 있다는 것입니다. 집요하게 돌을 던지려는 사람과 간교하게 그 돌을 피하려는 사람만 있을 뿐 그 누구 하나도 ‘나 때문이다’고 나서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인류 최초의 비극은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문제는 선악과를 따먹고 그 책임을 남에게 떠넘겼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와에게 떠넘기고 하와는 뱀에게 그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해 입히심으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본문9절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주님의 말씀에 양심의 가책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둘 다 떠나고 죄 많은 여인만 남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여인에게 묻습니다. “너를 고소한 사람들은 어디 있느냐?” 여인이 “주여, 없나이다.”라고 대답하자 이네 주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십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 동안 앉아 있는 병자가 있었습니다. 예고 없이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바로 그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병자가 어떤 병에 결려있든지 낮게 되는데 이 병자는 스스로 뛰어 들 수 없어 누가 들어 던져 줄 사람을 기다리며 38년 동안 한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어느 날 연못가 예수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38년 된 병자에게 묻습니다. “네가 낮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합니다. 조금 투정하는 말투로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님께서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하셨습니다.

본문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죄 많은 여인에게 “다시는 범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과 여인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정죄와 용서, 복음과 율법의 조화를 발겨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함부로 누군가를 정죄해서는 안 된다는 진리와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돌을 남을 정죄하려면 먼저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집사님,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무엇으로도 전도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3년 세월이 지난 어느 심방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니고데모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당시 유대사회에서 니고데모는 최고의 지성이었고, 산헤드린 회원으로 권력도 가지고 있고, 부자였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사람인데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의 공포가 몰러와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밤에 예수님을 찾아가 이렇게 묻지요.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안 죽고 살 수 있는 방법을 물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뜻밖에 대답을 하십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그러자 니고데모가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라고 묻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시면서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마치자 집사님이 묻습니다. ‘무엇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냐’ 고, 아주 간단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내려놓은 것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권력을 내려놓은 것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제물을 내려놓은 것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명예를 내려놓은 것이라고, 보험 드는 샘치고 믿어보라고.

그리고 오늘 본문은 이 대답을 “오직 예수와 그 여자만 남았더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직 예수’라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역사를 심판하실 분도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도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나를 용서해 주시고 사죄를 선언하시는 분도 오직 예수뿐이십니다. 나의 죄를 사하시고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분도 오직 예수뿐이십니다. 내가 맞아 피투성이가 되었을 때 나의 피할 바위가 되어주시고 막아 주실 분도 오직 예수밖에 없습니다. 그 주님이 오늘 이 자리에 오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가서 죄를 범치 말라.” 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시간 우리 모두 두 손에 쥐고 있는 돌을 내려놓아 버립시다. 남의 허물과 약점을 찾기에 급급했던 눈과 귀를 예수님 십자가 보혈의 피로 씻습니다. 그래서 용서받고 구원받은 감격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갑시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 놀라운 사죄의 은총과 십자가의 사랑에 감격하여 죄인 길에서 돌아섭시다. 그리고 주와 함께 주를 위해 살아갑시다. 사람답게 살고, 하나님 자녀답게 살라고, 우리 주님께서 주신 기회를 헛되이 하지 말고 올바르게 사용합시다. 더 이상 죄를 범하지 말고, 또 돌을 들지도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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