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속의 예수님

By 담임목사 on April 14, 2019

본문: 누가복음23장50-56절
제목: 무덤 속의 예수님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은 부활절 한 주 전 일요일을 종려주일이라 기념하여 지키는 축제일입니다. 종려주일의 기원은 요한복음12장12-13절에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 함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라는 말씀에 있습니다.

또한 종려주일은 십자가 수난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공식 입성하신 날로 사순절 6번째 주일이며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첫날이기도 합니다. 고난주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일반적으로 고난 주간은 경건하게 보내졌으며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목요일과 주님의 십자가 죽음을 기념하는 금요일은 더 경건하게 보내져 오락을 금하고 금식일로 정하여 지키기도 합니다.

때문에 오늘부터 시작되는 고난주간에 우리들도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경건하게 보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고난주간에 일어난 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기 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올라가셔서 온갖 모욕과 욕설 그리고 저주의 아우성 속에 숨을 거두시자 예수님을 따르던 모든 제자들이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숨어있는 제자와 그의 감동적인 미담을 만날 수 있습니다.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52절)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하는 아리마대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자신의 권세와 명예와 사회적 위치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허물어질까봐 드러내지 못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잡히시고 재판받는 과정을 보고 십자가의 처형을 보고 스스로의 행동을 깊이 후회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따르던 모든 제자들이 도망친 순간에 빌라도에게 나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한 것입니다. 오늘 믿는 성도들 가운데도 회개하였다고 하다 회개의 열매가 없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참된 회개는 열매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게 아리마대 요셉은 참된 회개를 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잘 못을 알고 즉시 빌라도에게 당당하게 나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자리가 회개의 자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열매가 다 맺어지기를 바랍니다. 본문53절에 보면 예수님의 시체를 내려 세마포에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하지 않은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넣어 두었다고 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인도받아 유대의 법대로 세마포에 싸서 장사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19장39절에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라고 했습니다. 니고데모 역시 숨어서 예수님의 주위를 맴돌던 사람이었습니다.

니고데모 역시 나와서 예수님의 장례를 도와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을 가장 가까운 곳에 따르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장례를 도왔다는 구절이 없습니다.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제자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달라났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제자 중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고 신앙고백을 했지만 그것은 그냥 말 뿐이고 예수님께서 잡히시자 세 번씩이나 부인하다 못해 저주 까지 하고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신앙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주님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을 따라 나서는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어느 대학의 저명한 두 교수가 심오한 사상과 삶의 의미에 대해 논하고 있었습니다. 對話중에 한 교수가 다른 교수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과에 동진이라는 학생이 있는데 면담 중에 자신이 자네의 제자라고 하더군.’ 이에 동료 교수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글쎄, 그 학생이 내가 하는 모든 강의를 쫒아 다니며 듣고는 있지만 그러나 나의 제자는 아니야’

멋모르고 쫒아 다니는 사람은 많아도 참된 제자는 없는 것처럼 슬픈 일이 있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거룩한 모습으로 신앙고백을 하였으나 그것은 그저 말뿐이었습니다. 끝까지 예수님 따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고난은 외면하고 육신의 안위와 영광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본문54절에 보면 “이 날은 예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운명하신 시산이 오후 3시쯤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오후 6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3시간 안에 예수님의 장례를 모드 마쳐야 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자기 소유의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옮겨다 놓았던 것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빌라도가 보낸 병사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는 것을 보고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안식일에 맞추어 예수님의 장례가 완성되었다는 점입니다. 그 의미는 더 이상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는 율법의 종이 아닌 자유자가 되었다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은 율법의 중심인데 주님께서는 이 안식일을 자신의 장례식과 함께 완성시킨 것입니다. 본문55절 이하에 보면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쫒아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둔 것을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여자들은 매우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들은 예수님에게 너무나 큰 은총을 받은 여인들입니다. 갈릴리 출신 여인들은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뒤를 따라 다니며 예수님이 사역을 도왔습니다. 이 여인들은 이제 주님의 십자가에 뭇 박혀 돌아가신 골고다 언덕까지 따라왔고 예수님의 장례식까지 따라왔던 것입니다.

이 여인들과 제자들을 비교해 보면 여인들은 예수님을 죽을 때까지 따르겠다고 말하지도 않았고 더욱이 앞에 나서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먼발치에서 묵묵히 뒤를 따라다니며 수많은 사랑의 수고를 하였을 뿐 아니라 어떤 순간에도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고 부인하지도 않았습니다.

요즈음 성도들 가운데 요란스럽게 신앙생활 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열심히 예수님을 섬기고 모든 일을 앞장서서 정성스럽게 최선을 다하면서 나는 죽을 때까지 예수를 잘 믿겠다고 고백하지만 교회에서 해가 되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제자들의 신앙고백보다는 여인들의 숨은 봉사가 더 절실하고 숨은 신앙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리마대 요셉, 빌라도, 여인들 등 여러 부유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 사람들의 삶의 태도 또한 가지각색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신앙생활 하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주저하는 사람이고 빌라도는 신앙과는 무관하게 세상 권력과 개인의 이득만을 살다가 예수를 못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인들은 비록 비천하고 연약한 사람들이었지만 끝까지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어느 부류에 속한 사람입니까? 계시록2장10절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글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도 여인들처럼 죽도록 충성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쓰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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