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해야 하나요

By 담임목사 on January 7, 2018

본문: 누가복음3장7-14절

제목: 무엇을 해야 하나요?

舊約聖書 시대가 끝나고 新約時代가 시작되는 사이를 암흑시대라고 하는데, 그 기간이 400년간이고, 하나님께서 당신께서 창조한 인간 세상에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시고 멈춘 시대를 이르고, 오늘 본문은 암흑의 끝자락에 새 시대를 여는 세례요한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사역은 ‘그는 흥해야 하고 나는 쇠해야 하리라’

세례요한을 예수님의 선구자, 주의 길을 앞서 예비하는 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선지자로 분류하여 부릅니다. 중간시대라고도 하는 암흑시대의 이야기를 여러 책을 통하여 종합해 보면 예루살렘 성전 제사가 회복되고 이 제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유대인들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바로 세례를 받으러 나온 사람들을 향하여 본문7절에 보면 세례요한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책망을 합니다. 그 이유는 실제로는 그릇된 생활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겉으로만 세례를 받음으로 장차 올 진노를 피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열매가 없다고 책망하고 “찍혀 불에 던지 우리라.”고 했습니다.

이때 세례를 받으러 나온 稅吏들과 軍兵들이 세례요한에게 던진 질문이 “우리가 무엇을 하리니까?”입니다. 이 질문에 세례요한은 ‘늑징치 말라, 강포하지 말라, 무소하지 말라, 족한 줄로 알라’고 대답을 합니다. 저는 2018년 새해 첫 예배를 드리며 세리와 군병의 심정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리니까?’스스로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英語로 ‘What shall we do?’ 스스로에게 ‘What shall I do’ 우리 주면에는 많은 일들이 있고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하지만 막상 무엇을 해야 하냐? 막막하기만 하지요. 때문에 질흙 같은 암흑이 거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생살이가 고달프기만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지? 발만 동동 구르며 마음만 급합니다.

본문은 ‘What shall we do’라는 질문의 대답을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고 합니다. 左右를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나만, 우리만 바라보니 ‘무엇을 해야 하나’ 막막하기만 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기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 어떻게 암흑시대를 벗어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스스로 할 일을 찾아야 합니다. 설교를 준비하다가 우연히 한 귄의 책을 만났습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原文으로는 ‘A Mother’s Reckoning’이라는 책입니다. 著者는 이 책에서 ‘평범하고 사랑스런 내 아들은 어떻게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살인자가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1999년 4월, 미국 Columbine High School 졸업반 학생 ‘Eric Harris, Dylan’ Klebold‘이라는 두 학생이 특별한 이유 없이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해 같은 학교 학생과 교사 13명을 죽이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힌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입니다.

이 책은 사건 발생 17년 후에 가해자 중 한 명인 ‘Dylan’ Klebold’ 엄마인 Sue Klebold가 아들이 태어나서 사건을 벌이기까지의 17년, 사건 발생 후 17년, 총 34년간의 일을 정리하고 있는데, 사건의 발생 이유, 사건을 벌인 아이들에 이야기를 중심으로 가해자 가족들이 겪은 생각과 감정들이 솔직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著者는 책을 통해서 아들의 변명이나 가족의 명예회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폭력성과 마주한 인간이 그것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또 예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쓴 책인데, 인간의 폭력성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탕에 부정할 수 없는 ‘엄마의 사랑’을 깔고 있습니다.

엄마는 그 사랑을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정말로 나는 고통 너와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하나, 내 불, 내 침대를 같이, 아, 끔찍하게도, 머리를 같이 쓰며? 게다가 내가 먹으면 너까지 먹이면서?’ 엄마는 가해자의 엄마로써 누구 탓을 하거나 불평하지 않지만 그 엄마는 그 끔찍한 암흑 가운데 할 일을 찾았습니다.

내용 중에 나를 가장 생각하게 만든 말은 “아들이 변화를 몰랐다”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한 마디 말이 ‘평범하고 사랑스런 내 아들은 어떻게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살인자가 되었을까?’라는 물음에 답이 아닌 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左右를 돌아보지 않고 나만, 우리만 바라본 이기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이 책을 대하며 舊約聖書에 나오는 욥의 이야기를 생각했습니다. 욥기2장7절에 보면 사탄이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합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으로 몸을 긁고 있자 9절에 그의 아내가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합니다.

10절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 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 치 아니하니라.” 고 합니다. 그 엄청난 고난 가운데서도 욥은 스스로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오늘 첫 날, ‘What Shall we do?’라는 질문의 답을 본문을 중심으로 찾아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늑징치 말라

‘늑징’은 ‘관원이 돈·물품을 강제로 징수하거나 징발함.’이라는 뜻입니다.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이 말씀을 통해서 세례요한이 하고자 하는 말은 이기심을 버리라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이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마찬가지입니다.

사업을 하던, 직장생활을 하던 먹고살기 위한 일이지는 하지만 그러나 그 일을 통해서 누구에겐가 봉사한다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가장 가까운 이웃인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엄마의 절규, 사업을 하면서 남을 위한 봉사의 정신은 없고 오직 돈 벌은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직장생활도 자신만을 위해서 하는 사람들을 향한 사도요한의 교훈입니다.

2. 강포하지 말라

‘강포’ 영어로 ‘violence’로 ‘폭력, 난폭; 폭행, 강간 등을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타고난 성품이나 기질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최초에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때문에 본디 인간은 선한 성품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인간의 선한 성품이 죄로 오염되었습니다. 그래서 의를 행할 줄 모르고 영적으로 불구가 되었고, 윤리적으로 선을 행할 줄 모르는 도덕적 불구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을 치유해야 하는데, 성경은 오직 예수로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 방법을 예수님께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11:29)고 하셨고 사도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라고 교훈합니다. 우리는 이 교훈의 말씀으로 스스로 타고난 성품을 치유해야 합니다.

3.무소하지 말라

‘무소’는 ‘일을 거짓으로 꾸미어 관청에 고소함.’이라고 국어사전에 정의해 놓았습니다. 세례요한은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남을 속이지 말고 정직하게 살 것을 교훈해 줍니다. 우리말에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것과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세상을 사람답게 살고자 한다면 많은 배우고 출세해서 높이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남을 속이고 이익을 얻고자 하면 많은 지식과 높은 자리가 큰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이용해서 약하고 무지한 사람을 얼마나 속이며 살았습니까?

우리 믿는 성도들이 가장 익숙하게 듣는 말 가운데 ‘성령이 가라사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계명을 범할 수 있는 말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은사를 바탕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 또한 ‘너는 몰라’하는 말입니다. 이 말로 나보다 못한 사람을 얼마나 속겨와 습니까? 세례요한이 경고합니다. 결코 하나님이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4. 족한 줄 알라

‘받은 요를 족한 줄로 알라’ 이 말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할 줄 알라고 교훈하는 말씀입니다. 선한 꿈, 원대한 포부는 가지되 과욕은 부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욕구를 절제할 줄 모르는 사람은 결코 큰일을 할 수 없습니다. 남의 손에 떡이 커 보이는 사람은 큰일을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항상 적은 일에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알고 좌우로 치우침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큰일을 맡기십니다. 그리고 더 많은 축복을 해 주십니다. ‘무엇을 해야 하나요’라고 중얼거리면서도 ‘나는 못해 나는 못해 나는 못해’하고 의기소침하지 말라고 ‘아이구, 난 못해 난 못해’하는 사람에게 용기를 줍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못 하는 게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해 낼 수 있습니다. ‘네게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말씀처럼 네 속에 계시는 하나님과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 주시네. 새 힘을 주시네, 도와주시네.’ 나는 할 수 있다‘

잠언14장4절에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고 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이런저런 소리 듣지 않고 조용하고 깨끗합니다만 그러나 상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행함으로 상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무엇을 해야 할까?’ 열심히 일거리 찾아서 일하고 무슨 일이든지 맡겨달라고 매달리고 애원하여 열심히 일하면 아픈 것도 달라나고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되는 우리 주님이 해 주실 것입니다. 열심히 알하고 주님께 칭찬 받는 성도되시기 축원 합니다.

No Response to “무엇을 해야 하나요”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