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여시는 예수님

By 담임목사 on March 22, 2020

묵도
찬송: 53장
신앙고백: 사도신경
찬송: 82장
기도: 각자
본문: 사도행전16장11-15절
제목: 문을 여시는 예수님

門(문)이라고 우리말에는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 중 ‘문이 열리다’라는 ‘합격하다’ ‘통과하다’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사용됩니다. 우리 인생이 참으로 다양하게 수많은 문을 통과하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생을 ‘한 고비 넘어 또 고비’라고들 합니다.

우리가 어릴 때 유년주일학교에서 Christmas가 되면 한해를 결산하며 상을 줍니다. 그 중에 가장 큰 상이 전도 상입니다. 상품도 아주 값이 나가는 좋은 것이었습니다. 출석상이야 열심히 나오면 되는 것이고 암기상도 열심히 외우면 되는데 전도 상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동내에서 같이 놀던 친구들도 교회만 가자고 하면 손사래를 치며 도망가기 일 쑤었습니다. 사도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4)고 전도에 목숨을 내놓은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은 유럽에 최초의 교회가 세워지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럽 최초의 교회는 빌립보 교회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자주 장사 루디아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루디아가 복음을 받아 드리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주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전도 상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예수님께서 마음의 문을 열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도 믿음의 길을 걸어가노라면 열어야 할 문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때 굳게 닫힌 문을 열어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문을 두르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마7:7)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예수님께서 열어 주시는 문이 무엇인가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본문에 예수님은 두아디아 성의 루디아의 마음을 여시어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사도행전14장27절에 보면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고”라고, 예수님께서 많은 이방인들의 마음을 여시고 믿음을 주셨습니다.

미국의 대통령 Trump의 말로하면 중국Virus고 우리말로 하면 Coronavirus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중소형의 교회들입니다. 한국교회는 4만개가 넘는 교회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이대로 한 달 여만 계속되면 교회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라고 합니다. 미국교회들이나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상 받을 길도 없고 도움의 손길도 사각지대입니다. 그래서 저도 요즈음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매일 사순절 새벽을 깨우며 주님의 전에 나와 앉아 있어도 그 근심과 걱정은 끝이 없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근심과 걱정을 생각하니 더욱이 그 골이 깊어만 갑니다.

그러던 어느 새벽에 문득 스스로에게 ‘너의 믿음은 어떠한가?’라고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믿음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랐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그래서 예수님을 향해 믿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여신 것처럼 저의 믿음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는 세미한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세상사 뜻대로 되지 않아 노심초사하고 게십니까? 인간적인 방법으로 몸부림치지 마시고 믿음의 주님께 그 마음의 문을 열어달라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금보다 귀한 믿음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후로 믿음의 문을 활짝 열어 달라고 주님께 매어 달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는 히브리서 기자의 말씀대로 믿음의 문을 활짝 열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2. 지혜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구약성서 역대하1장11-12절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이런 마음이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존영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너로 치리하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존영도 주리니 너의 전의 왕들이 이 같음이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이 같음이 없으리라”

솔로몬이 왕이 되어 일천번제를 하나님께 드리자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느냐? 묻자 솔로몬이 부귀와 존명을 구하지 아니하고 백성을 다스릴 지혜를 구하자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귀와 존명까지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24장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매일 기도하고 성경 말씀을 읽는데 심오한 진리를 다 깨우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모르는 더 많고 의심의 안개가 앞을 가리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 아닌 가 하는 데, 바로 이것이 우리들의 진정한 모습이요 한계가 아닌 가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야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까요?

무조건 주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우리의 영안을 가리고 있는 사탄의 권세는 오직 예수님께 나올 때만 벗겨질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고린도후서3장14절에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미년 3월1일 독립만세 사건 때, 한 시골 장터에 한글도 깨우치지 못한 여자 성도가 참석해 잡혀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기도는 할 수 있는데 말씀을 들을 수가 없어 말씀을 듣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자 한 교도관이 휴지 한 장을 던져줍니다. 펴보니 성경 한 장인데 한글을 몰라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간절하게 기도했더니 한글을 읽을 수 있도록 영안이 열러 말씀을 읽고 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야고보서1장5절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구하는 데로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예수님께 말씀을 읽을 때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간구하셔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것처럼 우리의 무딘 심령에 영적인 문을 열어달라고 간구하셔서 솔로몬의 지혜와 말씀의 능력을 얻어 이 위기를 넘어서는 지혜를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3. 축복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우리 인간들의 공통된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축복을 받아 잘 살 수 있을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네 조상들은 복 받는다 하면 동내 고목나무에 절하고 이상하게 생긴 돌에 절하고 정한 수 떠놓고 빌고 좀 산다하면 무당 물러 굿하고 심지어 믿는 성도들까지도 점치고 사주팔자보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 우리는 세계에서 못사는 나라 가운데 두 번째이었습니다. 국민소득이 연 50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전염병이 돌면 속수무책 수많은 사람들 죽어갔습니다. 세상이 주는 축복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일시적인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인데 그것조차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 성도들에게는 참되고 영원한 축복의 근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이 세상의 주인이시며 주관자이시오 영원한 기쁨과 생명을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자들에게 나아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자들에게는 크고 놀라운 하늘 축복의 문을 여시고 기쁨과 만족과 평안함을 넘치도록 베풀어 주십니다.

Coronavirus로 인하여 전 세계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유일하게 부각되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역사 이레 국가 Brand가 가장 높다고 합니다. 주목해야 하는 점은 ‘투명’과 ‘신뢰’입니다. 그리고 서로 고통을 나누고자 하는 국민의 모습, 감동적으로 마음에 다가와 닫쳐 있는 우리 마음을 열게 합니다.

우리가 사노라면 자기 앞에 버티고 있는 여러 종류의 산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것은 고독과 낙심일 수도 있고 육체적인 고통이나 정신적인 스트레스, 슬픔 또는 경제적인 궁핍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들은 높고 험준하여 산들을 가로지르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산들을 옮기는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만큼 작은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산들을 바다에 던질 수 있습니다. 신앙으로 열등감을 극복한 어느 성도의 고백입니다. “나 자신의 산은 자신감의 결핍이요, 고통스러운 수치심이며, 모든 것에 대한 열등감이었다.

그것은 나의 삶을 거의 파멸로 이끌었다. 나는 새로운 것이나 색다른 것을 시도하기를 두려워했다. 나의 젊은 친구들이 춤을 추거나 수영을 하러 갈 때, 스케이트나 스키를 타러 갈 때, 파티나 여행에 갈 때 나는 집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마치 조개 속에 갇힌 듯이 살았다.

그런데 성경연구와 기도를 통하여 나는 특별한 은총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처음에는 자갈만큼, 다음에는 돌만큼 마침내는 바위만큼씩 자기 멸시의 산을 옮겨 놓았다. 예수께서는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하셨으며 나는 그 분을 믿게 되었다.”

마태복음6장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우리는 믿음의 문, 지혜의 문, 축복의 문을 두드리되 열어 주실 때까지 간절히 두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좋은 응답이 올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 순간에도 강퍅한 우리의 심령을 열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말씀과 기도로 무딘 자신의 마음을 열게 해달라고 간절히 부르짖는 성도가 되셔서 가로막힌 문을 여는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찬송: 513장
주기도문으로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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