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여 예수님의 말을 들으라

By 담임목사 on November 12, 2017

본문: 요한복음13장34-35절

제목: 믿는 자여 예수님의 말을 들으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하신 말씀입니다. 이는 주님이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이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를 교훈하신 말씀이면서 오늘 우리 믿는 성도들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세상을 살 것인가? “서로 사랑하라” 그리고 이것이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라는 성경에 처음 나오는 말은 아니지요. 구역성서 레위기19장18절에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분문에서 새 계명이란 사랑해야할 동기가 새롭다는 말입니다. 그 동기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새 계명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나타난 새로운 세대를 위한 계명인데, 중요한 것은 “새 계명”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할까?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성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편협 적이거나 제한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원수까지도 사랑해야하는 광범위합니다.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가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나를 사랑하십니다.

병거타고 하늘로 올라간 선지자 엘리야 이야기의 climax는 아마 Carmel산상에서 450명의 바알 제사장들을 상대로 참신과 거짓 신을 입증하는 건곤일척의 대결을 해서 하늘에서 불을 내리고 3년6개월 닫혔던 하늘 문을 열어 비를 내리는 기적을 행하여 거짓 종교를 박살내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엘리야에게 시험이 왔습니다. 황후 이세벨이 죽이려 해서 광야로 쫓겨 가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 홀로 죽기를 원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영혼의 심연을 거쳐 다시 금식 40일의 광야 길을 거쳐 호렙산 동굴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폭풍 속에도 지진 속에도 불 가운데도 하나님은 안 계시고 세미한 음성 속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15장11절 이하에 탕자 아버지의 마음을 통해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5장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할만한 사람을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셨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기 위하여 당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제물로 내놓으셨습니다. 십자가는 단순한 고통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고통이상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십자가의 참뜻을 알기 위해서는 언제나 예수님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에게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스도에게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그분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것이 그분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 십자가야말로 그리스도의 사명이었고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신약성서 마태복음22장27절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성서 신명기13장4절에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고 그 목소리를 청종하고”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시험에 빠지게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듣게 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좀처럼 설악산 단풍 구경을 간 여자 집사님이 흔들다리를 건너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만일 무사히 건너게 해주신다면 5만원을 헌금하겠습니다.’

기도한 덕분에 다리를 거의 다 건너갈 무렵 여자집사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 5만원은 너무 많습니다. 이 정도는 그냥 공짜로 해 주시는 거죠.’ 바로 이때 다리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깜짝 놀란 여자가 크게 비명을 지릅니다. ‘농담 삼아 말했는데, 너무 하지 않습니까!’

어느 목사님이 서울 총회에 오셨다가 구경삼아 남산을 오르다가 쓰러져 있는 함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구경이고 뭐고 그 아이를 들쳐 업고 병원 응급실로 뛰었습니다. 그런데 의사 이 아이가 굶어서 쓰러진 것 같다는 것입니다. 등록을 하려고 주머니를 살피니 돈이 있습니다.

한참 후에 아이가 깨어나자 묻습니다. ‘돈이 있는데 왜 굶었느냐’고 아이는 ‘이 돈은 제 돈이 아니라 하나님 돈이기 때문에 쓸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려고 떼어놓은 돈이라는 것입니다. 그 돈을 주머니에 넣고 일주일동안 일자리를 찾아 해매다 배가 고파 쓰러진 것입니다.

바로 그 이아가 사랑의 원자탄의 주인공 손 양원 목사님이셨습니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라’는 말씀은 바로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보통 한 달에 주일이 네 번 있는데 다섯 번 있는 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섯 번 주일이 있는 주간이 되면 불안합니다. 전화 bell소리 나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급한 일이 있어 교회를 못 나온다.’는 전화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헌금 없어도 교회는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시험에 들까봐 말 못합니다. 때문에 늘 죄스러운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혹시 그 분이 천당에 못가면 어떻게 하나 싶어. 다른 교회로 간다는 성도들의 이유를 물으면 바쁘다는 것과 아이 교육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 번은 꼭 남아 있으면 하는 성도가 다른 교회로 갔습니다. 어떻게 돌아올 수 없을까 싶어 새벽에 나와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환상이 보입니다. 헌금 봉투에 돈을 넣었다 뺐다 하는 모습이. 안 할 수는 없고 조금하자니 무시당할 것 같고 밥을 안 먹는 다고 하니 밥값도 못할 것 같고.

불순종보다 다 큰 죄는 하나님 앞에 거짓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 드릴 예물로 장난치는 자는 저주를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스스로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드러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바로 믿는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입니다.

3.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어느 Christian 두 사람이 깊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대화는 영적 대화로는 최고조에 달한 것이었습니다. 한 집사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사랑합니다.” 그러자 다른 집사님이 “나는 예수께서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를 사랑합니다.” 라고 응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힘으로 열심히 일해서 자기 가족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까마귀가 눈먼 올빼미를 먹여 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자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할 필요가 무엇인가? 사람들은 맘씨가 좋아서 가난한 사람을 잘 도와주는데!’

그래서 그는 일하는 것을 그만 뒀는데, 오래지 않아서 그는 거지처럼 가난해졌습니다.  이 사람의 형편을 본 지혜로운 이웃 친구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일을 그만 두었소?” 그는 까마귀가 눈먼 올빼미를 먹여 살리는 것을 봤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이웃 친구는 말했다.

“여보시오, 당신은 왜 하필 눈먼 올빼미 신세가 되려는 거요? 왜 까마귀 노릇을 하지 못하는 거요? 당신은 눈먼 사람이 아니지 않소? 당신은 까마귀처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어야 하오. 당신 아내와 자녀들을 도와주어야 할 것 아니오?” “당신 말이 옳소. 나는 어리석었소.

이제 마음을 고쳐먹어야겠소. 하나님께서 내게 남을 도울 수 있는 힘을 주셨는데, 눈먼 올빼미처럼 남에게서 얻어먹고만 있어서야 되겠소?” 베드로전서4장8절에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이며 힘이 있습니다.

아가서8장6절에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람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여 불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사랑하는 법은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랑이 식어가는 말세에 있어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십자가의 수직적인 관계가 나의 삶에서 완성되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할 때 십자가의 수평적인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십자가의 신앙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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