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의 덕

By 담임목사 on November 5, 2017

본문: 고린도전서13장13절

제목: 믿는 자의 덕

德이란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행하려는 어질고 올바른 마음이나 훌륭한 인격”으로 ‘겸양의 덕을 갖추다.’ 그리고 누구에게 은혜를 입었을 때, 혹은 은혜를 베풀 때, 즉 ‘남에게 이득이나 혜택을 얻다’ ‘남에게 이익이나 도움이 된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요즈음 덕이 없는 사람 덕스럽지 못한 사람으로 Trump 大統領이 떠오릅니다. 같은 말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덕스럽지 못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全世界가 혼란스럽습니다. 김정은이 보다 더 위협적으로 보입니다. 공통점은 같은 말해도 너무 감정적으로 상스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본문을 통해서 우리 믿는 성도들이 갖추어야 할 덕을 이야기합니다. 11절에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 어린아이와 장성한 어른을 대비시킴으로써 믿는 자의 덕을 어린 아이 일을 버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방언과 지식 그리고 예언을 가리켜 ‘말과 깨닫는 것, 생각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 모든 것이 사랑이 없으면 교회에 유익도 도리 수 없고 유치한 것이라 폐하여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 믿는 성도들이 지녀야할 덕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죄에 물들어 사는 인간을 그리스도의 자녀로 변화시켜 의인으로 인정받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는 자의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음 중심에 있는 믿음을 보시고 그 통로를 통해 한 없는 은혜와 사랑을 부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에베소서2장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씀처럼 우리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죄와 무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와 하나님의 긍휼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문제는 우리 안에서 그 믿음이 행하여지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40절에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하셨는데 네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 것은 내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는 질문 중에 가장 많이 하는 것이 “어떻게 해야 믿음으로 사는 것이냐?” 질문입니다. 젊은이 둘이서 깊은 강을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건너가는 도중 한 청년이 다리 밑을 보니까 강물이 소용돌이를 치며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자꾸 내려다보면 그 청년이, 현기증이 나서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것을 본 다른 친구가 그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위를 봐! 하늘을 봐!”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속에 앞을 가로막은 여러 장벽을 바라보면 도저히 꿇고 나갈 수 없을 것 같지마는 위를 바라보고 믿음을 가질 때에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에게는 절망이란 없습니다.

어떤 역경과 슬픔이 점령하더라도 결코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서양 속담에 “흐르는 냇물에서 돌들을 치워버리면 그 냇물은 노래를 잃어버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역경과 고난의 돌을 치워버리면 우리는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없게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를 바라보는 믿음입니다.

입으로 주여, 주여 외치는 자가 아니라 우리 생활의 군원이 믿음이어야 합니다. 기도 한 마디를 드려도 믿음으로 드려야 하고 말씀을 받아도 믿음으로 받아야 하고 봉사도 믿음으로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믿음은 결코 이론이 아닙니다. 믿음은 행할 때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2. 소망으로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6장19절에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고, 우리 인생은 소망을 가진 동물이라고 하였습니다. 때문에 희망이 없는 인생은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합니다.

비록 오늘 우리들의 삶이 고달프고 어렵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믿음으로 바라는 내일 대한 소망이 있기에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행한 소망은 무너지기 쉽고 쇠하기 쉬운 것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은 혹 이루어졌다고 해도 또 다시 무너질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자의 소망은 하늘에 속한 소망으로 천국에 가서 누릴 소망인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 1월 15일이 미국의 국가 경축일로 결정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어느 개인의 생일이 국가의 경축일이 되기는 죠지 워싱톤 이후 두 번째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킹 목사의 위치는 높이 평가된 것입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위인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였는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 그는 꿈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대표적인 연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의 내용처럼 그는 불가능한 현실에 대해서도, 전혀 씨조차 찾아볼 수 없는 부조리와 불의와 모욕과 패배의 현실 속에서도 결코 꿈을 잃지 않았고 그 꿈을 믿으며 그 꿈의 성취를 위해서 빈손으로나마 잠긴 철문을 쉬지 않고 노크했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꿈꾸는 신앙인들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 내용들을 살펴보면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그들의 꿈이란 그들의 이상이요, 소망이요, 믿음이요,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이 지배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결과였음을 알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의 꿈은 이스라엘의 밝은 미래에 대한 확신을 대변했습니다.

욥의 꿈은 의인이 받는 고통이라고 하는 부조리에 대한 굴하지 않는 소망을 뜻했습니다. 야곱의 꿈은 광야의 도망자에 대한, 용서와 은혜와 내일에 대한 축복의 언약을 대변했습니다. 다니엘의 꿈은 권력횡포와 압제자의 최종적인 멸망에 대한 확신을 뜻했고. 동방박사의 꿈은 헤롯에 대한 타협거부와 구세주에 대한 기대와 애정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꿈을 가진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는 모든 성도들이 이 소망이 주는 기쁨과 평강 안에서 충만하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참 소망을 가지고 세상이 주는 시험을 이기고 환난과 고난을 극복하며 복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3. 사랑하여 살아야 합니다.

본문13절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과 소망은 영생을 얻게 하는 방편일 뿐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과 소망은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지만 사랑은 하나님 앞에 가서도 영원토록 유지되는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古傳 ‘흥부전’에 보면 놀부 형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오장육부인데 놀부는 하나 더 있어, 그것을 ‘심술보’라고들 합니다. 심술보 안에 무엇이 있을까? 늘 궁금했습니다. 그 안에는 ‘질투와 시기 그리고 조급함 무례함’등이 들어있었고, 심술보 안에 없었던 것은 ‘배려와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형제간의 이야기이지요. 흥부는 가난하고 놀부는 부자고 그런데 부자 형 놀부는 하나 밖에 없는 동생 흥부를 돌보기는커녕 무시하고 구박까지 해댑니다. 굶다 못해 양석을 얻으러 온 동생 흥부의 볼기짝을 몽둥이로 구렁이 감기듯 때리고, 재비 다리 고쳐주고 박 씨 얻어 부자 된 흥부에게 질투가 나서 재비 다리 부서트리고. 한 마디로 사랑이 없어서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오늘 본문4-7절에 사랑의 15가지 특성을 교훈해 줍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아주 추운겨울날 아침, 고슴도치 한 쌍은 추위에 떨며 지내다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서로의 체온으로 몸을 데우기 위해서 몸을 마주했습니다. 그러나 몸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몸에 돋친 수많은 가시가 서로를 찔러댔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몸에는 상처만 늘어날 뿐이었습니다. 고슴도치는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상황 때문에,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까이 하자면 서로의 가시가 부딪쳐 서로를 찔러댑니다. technology의 발달이 사람 사이를 물리적으로 더 좁혀놓았습니다.

프로이트는 그의 집단 심리학 이론 속에서 사이가 가까워갈수록 마음도 자라나고 상처를 입게 된다는 상징으로 앞서 고슴도치가 등장하는 쇼펜하우어의 우화를 인용하였습니다. 쇼펜하우어의 말대로 서로의 모순과 차이와 관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서로 화합하여 조화를 이울 때 아름다운 꽃도 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며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133:1-3) 노래 불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랑하는 곳에 이해가 있고, 사랑하는 곳에 관용이 있고 단합이 있으며, 사랑하는 곳에 화평이 있고, 사랑하는 곳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덕을 세우며 살아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 깊은 웅덩이에서 건져 내셔서 반석 위에 세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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