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지 못한 사람

By 담임목사 on July 22, 2018

본문: 열왕기하7장1-2절

제목: 믿지 못한 사람

본문은 내일 일어날 사건 두 가지를 예언하고 있는데, 하나는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한다는 것과 한 장관은 눈으로 보기는 하지만 먹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마리아 성문에서’는 시장같이 사용되던 곳입니다.

오늘의 사건의 배경은 여호람이 왕이 북 왕국 이스라엘을 집권하던 때에 아람 왕 벤하닷이이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와 수도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고 보급로를 차단하자 사마리아 성안에는 기근과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양식이 다 떨어지고 온갖 짐승도 다 잡아먹고 자식까지 잡아먹어야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비규환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에 선지자 엘리사가 여호람 왕에게 나가 희망적은 예언을 합니다.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가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보리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왕 옆에 이 소리를 듣고 있던 한 장관이 그 소리를 조롱하듯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라고 이때 엘리사가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불신이 가져오는 결과를 알게 되는데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여호람 왕의 불신입니다.

열왕기하 6장에 보면 여호람 왕은 나라가 겪고 있는 불행한 사태가 엘리사 선지자 때문이라고 믿고 엘리사를 죽이려 했습니다. 왕의 불신 때문에 당하고 있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위기의 상황을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엘리사에 뒤집어씌우려 했고, 엘리사를 죽이려고 사람까지 보냈습니다.

열왕기하6장28절에 “또 가로되 무슨 일이냐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오늘날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라고 했고, 29절에 보면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이르되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저가 그 아들을 숨겼나이다.” 했습니다.

성 안에 기근이 심해져 배가고파 견딜 수 없게 되자 두 여인 사로 공모를 합니다. 이러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이니 오늘은 네 아들 잡아먹고 내일 내 아들을 잡아먹자고. 그런데 한 여인이 약속을 깨뜨리고 아들을 숨겼습니다. 그러자 먼저 아들을 잡아 먹은 여인이 왕에게 나와 자신의 억울함을 고소하는 장면입니다.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반인륜적인 행동이지요.

이 여인의 말을 듣고 왕이 30절에 보면 “자기 옷을 찢으니라. 저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웃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는 다는 것은 회개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왕은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었지만 마음을 찢진 않았습니다. 회개하는 척 한 것입니다. 그러니 책임을 물어 엘리사를 죽이려 한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란 얼마만큼의 눈물을 흘렸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고 기도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 섰느냐가 아니라 진정한 회개란 마음 찢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다 심각한 문제는 이 비극의 책임을 엘리사에게 전가하여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교만과 불신으로 점철되게 하는 원리가 가운데 하나가 그것은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설상가상 32절에 보면 “이 살인한 자의 자식이 내 머리를 취하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느냐”고 했습니다. 여호람 왕은 자신의 힘을 이용해서 엘리사를 죽이려 했습니다.

웃기는 동영상 하나를 보았습니다. 애완용 강아지를 기르는 어느 집에 갓난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강아지와 갓난아이가 서로 의지하며 잘 놀고 있어 엄마가 믿고 잠간 시장에 다녀왔습니다. 문제 돌아와 보니 아주 비싼 카펫에 오줌을 누어 커다란 얼룩이 지었습니다.

얼룩 바로 옆에 아이 고이 잠들어 있습니다. 어마는 아이구! 내가 깜빡 잊고 귀저기를 안 채워놓고 나갔구나, 중얼거리며 이 비싼 것을 어떻게 하지 남편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인데 걱정을 합니다. 오후에 남편이 퇴근하여 돌아오자 지초지경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부주의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저녁을 먹고 남편이 서제에서 cctv를 점검하다가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 비싼 카펫에 오줌을 싼 강아지가 옆에서 자고 있는 갓난아이를 입으로 물어 자기가 오줌 싼 곳으로 끌어다 놓는 것입니다. 즉시 평화롭게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행복하게 살던 집안에 쫓겨나 어두운 강아지 집에서 더위와 모기에게 시달리며 일생을 살게 됩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심은 대로 거둔다.’ 하고 ‘제 꾀에 지가 넘어 간다’고 합니다. 우리 어리석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힘보다 더 강한 하나님의 힘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자신의 힘을 믿고 살다가 몰락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강아지가 cctv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사정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던 사람들은 그 믿는 힘으로 부자로 행복하게 잘 살게 되는 것입니다.

2.한 장관의 불신입니다.

본문에 보면 선지자 엘리사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내일 이맘때쯤이면 성안의 온 백성이 배부르게 먹을 것이라고 예언을 합니다. 아비규환 기근에 허덕이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2절에 보면 한 장관이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라고 조롱을 했습니다.

사실 합리적인 사고와 과학적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옛적에 조상들이 광야에서 하늘에 만나와 메추라기가 쏟아져 내렸다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몰라도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연한 소리인지 모릅니다. 사람의 머리로 생각하고 계산했을 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옛날 어느 곳에 오래된 고목이 한 그루 서 있었습니다. 너무나 큰 이 나무 위에는 매들이 날아와 둥지를 짓고 새끼들을 기르고 있었고 나무 밑에는 산돼지들이 새끼를 기르며 살고 있었습니다. 매들이 떨어뜨리는 나뭇잎과 찌꺼기들은 밑에 있는 돼지들의 먹이가 되었고 돼지들의 찌꺼기는 매의 먹이가 되었으므로 이들은 서로 공생하며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이들의 사이가 샘이 난 여우가 이들을 갈라놓기 위한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습니다. 여우는 곧장 매에게로 달려가 “나무 밑에 있는 돼지들이 너희 매를 잡아먹으려고 매일 나무 밑동을 갉아먹고 있단다. 얼마 못 가서 나무가 쓰러지면. 네 새끼들은 떨어져서 돼지의 밥이 될 것이다. 이따금 나무가 심하게 흔들리지 않던. 그게 바로 밑동이 넘어지려는 징조야. ”

그리고 이번에는 돼지에게로 달려가서 “나무 위에 있는 매들은 너희 돼지새끼들을 잡아먹으려고 항상 기회만 노리고 있단다. 어미돼지가 먹이를 구하러 멀리 가면 그때 새끼를 잡아먹기 위해 이따금 어미 매가 내려와서 너희 집을 기웃거리며 먹이를 찾지 않던. 그게 바로. 매가 새끼를 노릴 때란 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때부터 매와 돼지의 생활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생활이 되었습니다. 매는 모이를 구하러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나간 사이에 나무가 쓰러지면 새끼들이 돼지에게 잡혀 먹힐 것을 생각하니 꼼짝 못하고 항상 새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는 돼지도 마찬가지여서 먹이를 구하러 가지 못하고 매와 돼지는 서로 경계하면서 새끼들만 지키고 있었습니다.

결국 매도 돼지도 굶주려서 죽고 말았습니다. 사단은 우리의 마음에 불신을 심어주어 우리를 파멸시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의지하면 우리의 삶은 풍성해집니다. 내일 이맘때에 풍요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한다면 우리는 날마다 아멘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3. 불신의 결과입니다.

본문2절에 “네가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17절입니다. “왕이 그 손에 의지하였던 그 장관을 세워 성문을 지키게 하였더니 백성이 성문에서 저를 밟으매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죽었으니 곧 왕이 내려왔을 때에 그의 한 말대 로라.” 무서운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믿는 사람들이 받는 축복을 구경할 수 있지만 그것을 누리지는 못합니다. 선지자의 말을 믿지 못하고 조롱까지 한 장관은 불신 때문에 그 엄청난 기적을 성문에 구경하면서 백성들의 발에 짓밟혀 죽고 말았습니다.

성경 주석가 ‘Metthew Henry’는 ‘불평하던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눈으로 보긴 했으나 불신앙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처럼 장관도 보긴 했으나 먹진 못했다.’고 했고, patrick은 ‘영생의 약속을 믿지 않은 자들 역시 그것을 바라는 보지만 그것을 차지하지는 못한다.’고 했습니다.

믿지 못한 사람들의 마지막은 무엇입니까? 우물가에서 목말라 죽는 것이며 떡 앞에서 배고파 죽는 것입니다. 죄 중의 죄는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임하는 축복을 걷어차 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에게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신뢰가 없고 의심만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마귀가 역사할 뿐입니다. 마귀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불신과 원망을 조장하여 평화를 깨뜨리고 감정도 파괴하고 교회도 뒤흔들어 놓습니다. 불신이 쌓이면 바벨탑이 되고 결국은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신을 몰아냅시다. 불신을 추방합시다. 그리고 믿는 사람, 믿는 가정, 믿는 교회가 됩시다. 믿음은 구원과 성공과 축복의 비결입니다. 믿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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