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에 들어가서

By 담임목사 on September 15, 2013

본문: 이사야26장20-21절

제목: 밀실에 들어가서

어릴 때 저희는 兄弟가 많아서 아무나 잘못을 저지르면 한껏 번에 꾸지람을 듣고 매를 맞기 때문에 눈치 있게 피해 숨을 곳이 필요했습니다. 그 순간만 피하면 됩니다. 저는 조금 미련해 피하지 못하고 늘 매를 맞곤 했습니다. 그리고 늘 집안이 북적북적해서 저는 늘 나만이 空間을 상상하고 갈망하며 자랐습니다.

끝내 나만의 空間을 가져보지 못하고 자라 집을 떠났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지금까지도 그 공간을 가져보길 원합니다. 이 空間은 物理的인 공간과 精神的인 空間 두 가지를 의미하는데 조용히 명상하고 독서를 하고 설교원고를 쓸 수 있는 空間을 원하지만 쉽사리 허락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은 두 가지 空間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하나는 ‘처소’ 또 다른 하나는 ‘밀실’입니다. 여기서 처소란 하나님이 계시는 곳으로 속죄소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에 계시기를 기뻐하시지만 인간을 심판하실 때는 그곳에서 나오십니다. 밀실이라는 본문에서 심판을 피해 숨은 곳을 말합니다.

본문20절에 보면 “밀실에 들어가서”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여호와의 심판이 임하는 동안 동요되거나 낙심하지 말고 견고한 믿음으로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가지라는 뜻입니다. 선지자 하박국도 유다에 임할 재앙을 예언한 후에 ‘파수하는 곳’ 곧 안전한 곳으로 가서 결과를 기다릴 것을 권고한 적이 있습니다.

‘밀실’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密室을 國語辭典에 “남이 출입하지 못하게 하고 비밀히 쓰는 방.” 다른 말로는 감추어진 어떤 공간으로 피난처나 은신처를 의미합니다. 적에게 공개된 곳은 피난처나 은신처나 밀실이 될 수 없습니다. 꿩 사냥을 하다보면 위급할 때 아무 곳에나 머리를 처박고 몸뚱이는 모조리 드러내 놓고 숨어 있습니다.

피난처나 은신처는 우선 은밀한 곳이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안전한 곳이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危機를 만나면 꿩처럼 다른 사람 눈만 속이는 된다고 생각하고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머리만 감추려고 야단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밀실 즉 피난처나 은신처는 안전하고 평안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밀실은 안전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6장6절에 보면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골방은 바로 밀실을 의미합니다.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는 기도할 밀실이 필요합니다.

본문20절에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으라.”고 했습니다. 문을 닫으라는 것은 외부와의 단절과 차단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문을 닫으라는 것은 세상으로 향한 입과 귀와 눈을 닫고 그 대신 밀실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향하여 입을 열고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떠들면 하나님께서는 잠잠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잠잠하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세상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오면 하나님의 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내가 들어가는 밀실의 문을 닫고 하나님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본문은 “네 밀실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네 밀실로 들어가라는 말은 남의 밀실에 들어가지도 말고 기웃거리지도 말고 간섭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밀실이 없는 사람이나 할 일이 없는 사람은 남의 집 밀실을 기웃거리고 시비 걸고 하지만 자기 밀실이 있고 거기 들어가 하나님을 듣기에 바쁜 사람은 그럴 겨를이 없습니다.

그리고 본문은 “네 문을 닫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일단 문을 닫고 사람의 소리나 도움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사라진 文明 Atlantis을 수중 탐사하는 모습을 television으로 보면서 진짜 存在했던 文明일까 의구심이 있었지만 바다 속에 잠긴 都市를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아틀란티스는 “헤라클레스의 기둥 앞에” 위치한 해상 국가로, 솔론 시대에서 9,000년 전에 혹은 약 기원전 9,600년경에 서유럽과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을 정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테네 침공이 실패한 뒤 아틀란티스는 “하룻밤 새 재난으로” 대양 속으로 가라앉았다고 자신의 著書에 밝히고 있습니다.

좀 억지인긴 하지만 저는 노아의 방주를 생각했습니다. 죄악으로 만연한 세상을 보시고 한탄하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물로 심판하실 것을 계획하시고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은 하셨습니다. 창세기7장16절에 보면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방주로 들어가고 모든 짐승이 방주로 들어가고 난 후에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방주의 뚜껑을 닫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방주에 들어간 노아의 가족과 세상을 완전히 차단해 버리셨습니다. 왜냐하면 물로 세상을 심판하셔서 멸망시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수도 없이 노아의 방주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聖徒가 밤늦게 전화를 해서 큰일 났다고 하며 울먹입니다. 잠자다 말고 뛰어 갔습니다. 사연인즉 남편이 도박을 해서 전 財産을 날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도박장에 가서 잡아오면 몇 칠 후에 다시 도망가고를 반복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잡아다가 문을 닫고 가둘까 했지만 이런 物理的인 방법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 靈的으로 가둘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靈的으로 가둘 수 있을까?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기도란 세상으로 행했던 나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바라보고 사람에게 사정했던 삶의 태도를 바꾸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호소하고 하소연하는 것입니다.

기도란 세상으로 향한 온갖 창문을 다 열어놓고 무슨 수가 없을까, 무슨 길이 없을까, 두리번거리고 세상과 사람에게 귀를 기울였던 태도를 바꾸어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나의 밀실로 들어갑시다. 그리고 이 소리 저 소리 이말 저말 들리지 않게 문을 닫고 하나님께 향한 문을 엽시다.

어떤 나이 많은 어부가 젊은 어부에게 너를 맡겼습니다. 그 젊은 어부는 두 손으로 노를 젓다가 한쪽 노에는 ‘기도하라’ 다른 쪽 노에는 ‘일하라’고 쓰여 진 것을 보았습니다. “할아버지 일만 열심히 하면 되지, 기도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노인은 아무 말하지 않고 ‘기도하라’고 쓰여 진 노는 묶어 두고 ‘일하라’는 노만 젓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배가 앞으로 나가지 않고 뱅글뱅글 원을 그리면서 제자리에서 돌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때 노인이 말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일만 하면 전진이 없소.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는 법이오. 또한 일은 안하고 기도만 하여도 안 되는데 그것은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오.”

본문20절 하반 절에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 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밀실에 들어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라는 것과 고통과 시련이 지나갈 때까지 참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노아도 방주 안에서 홍수가 끝나고 물이 마를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성낼 만한 일이 있었다면 빨리 밀실로 들어가서 무릎 끊고 기도하면서 그 분노가 사그라지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절망이나 고통이 닥쳤다면 빨리 골방에 들어가 원망이니 불평의 문을 걸어 잠그고 하나님의 처치를 기다려야 합니다. 골방은 기다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2. 영원한 밀실은 어디입니까?

여호와의 처소, 즉 하나님이 계신 곳이 영원한 밀실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그곳을 소망하여 바라보고 사는 存在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32편7절에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이다. 라고 노래 했고 119편114절에는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고 노래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추격해 오는 사울을 피해 다니며 때로는 들에 잠을 자고, 때로는 숲속에서 찬이슬을 맛으며 밤을 지세우고, 때로는 동굴 속으로 숨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다윗이 겪은 불ㅇ나이나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세상에 완전한 은신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은신처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 한 곳, 안전한 은신처나 피난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주는 나의 생명, 나의 은신처, 나의 구원, 나의 승리”라고 교훈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원한 은신처요 피난처인 예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평안이 있고 안정이 있습니다. 내가 나를 지키고 방어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제 아무리 잘 지킨다고 해도 어느 한 곳은 구멍이 뚫리고 담이 무너져 아무리 이를 악물고 몸부림쳐도 실패하고 되고, 아무리 운동하고 보약을 먹어도 병들어 죽게 됩니다.

제 아무리 철벽으로 둘러싼다고 해도 불안은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평안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고 주님이 내 안에 계시면 나는 언제나 어디서나 평안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이 내게 평안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21절을 보면 “보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은신처로 피하면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 종횡 무진 활동하시면서, 벌할 것은 벌하시고 멸할 것은 멸하시고 물리칠 것은 물리치시고 없앨 것은 없애 주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처리하시고 승리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좋은 길이 잇고 방법이 있는데 왜 내가 서둘고 몸부림을 처야 합니까? 밀실로 들어가 기도의 무릎을 꿇기만 하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시는데 왜 밀실로 들어가지 않고 그것에 서있습니까? 밀실로 들어갑시다. 그리고 밀실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합시다.

No Response to “밀실에 들어가서”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