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주시는 하나님

By 담임목사 on January 26, 2020

본문: 시편16편1-2절
제목: 복 주시는 하나님

中國 발 우한폐렴이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고 있고, 中東지역의 戰爭조짐으로 地球 村의 經濟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어 庶民들의 삶이 불안하기만 합니다. Asia인의 최대 명절인 舊正 民心이 뒤숭숭하고 모두들 살기 힘들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福을 이야기합니다.

福을 국어사전에 ‘편안하고 만족한 상태와 그에 따른 기쁨. 좋은 운수. 복조.’아고 정의해 놓았습니다. 사람마다 福 받기를 좋아하고 간절히 원하고 福 받는 길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찾아가 뛰어 들지만 보통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福 받겠다고 발버둥 쳐보지만 어디 한 사람 ‘편안하고 만족하다’말하는 사람 찾을 수 없습니다.

모두들 저마다 삶의 무게가 있고 남모를 고통이 있고 감추고 싶은 허물이 있고 그래서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고들 합니다. 本文은 다윗의 ‘믹담’인데 ‘죄를 덮는다.’ ‘죄를 속한다.’는 뜻으로 ‘속죄의 시’라고 합니다. 쉬운 말로 바꾸어 말하면 다윗은 힘들고 고단한 자신의 삶을 罪를 덮음으로 편안하고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한편의 詩로 자신의 모든 허물과 罪를 덮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는 것이 福중에 福이고 하나님만이 자신의 방패요 상급이라는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우리의 방패가 되십니다.

舊約聖書 創世記15장1절에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했습니다. 시편14편6절에 “너희가 가난한 자의 경영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 피난처가 되시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재난을 막아주시는 방패가 되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요즈음 故鄕 땅을 바라보면 점입가경, 갈수록 하는 짓이나 몰골이 더욱 꼴불견입니다. 교묘하게 잡으려는 集團과 교묘하게 피하려는 集團이 보이지 않은 방패 막을 가운데 만들어 놓고 갈라서기를 助長합니다. 그 방패는 理念이기도하고, 때로는 階層이기도하고, 때로는 지역이기도하고 학연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어떤 방패를 사이에 두지 않고서는 人生을 바르게 직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방패도 우리를 완전하게 지켜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본문에 다윗은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고백합니다. 하나님만이 모든 적과 악, 그리고 모든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완전하게 지켜 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지난 主日, 우리는 야곱에 대하여 말씀을 상고해 보았습니다. 創世記28장13절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라고 했고, 14절에는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 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고 했고.

15절에는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고 했고, 16절에는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고 했습니다.

世上事 法的으로나 哲學的으로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는 일인데, 정의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왜 야곱을 福을 주였나를 깊이 생각해 보면, 야곱은 아버지 이삭이 가지고 있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많은 재산을 축복받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 이삭을 통하여 역사하는 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능력을 원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삶을 방패를 삼고자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뿐만이 아니라 믿는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믿음의 방패를 주셔서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믿음의 방패는 악한 사람의 공격이나 악인들의 사나운 모든 공격이 힘을 잃고 믿음의 방패에 닿은 순간 소멸해 버립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보혈의 피가 견고한 방패가 되어 사탄이 이것을 보면 두려워 떨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보혈의 피를 의지하지 않고 세상 사람과 같이 세상의 낙이나 사치와 명예로 방패를 삼고자 한다면 파멸의 길로 가게 됩니다.

우리의 어떤 힘으로도 이것에 대항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전신갑주로 삼은다면 세상 그 무엇으로도, 세상 그 누구도 우리를 당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으로 방패를 삼아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지켜 보호해 주실 것인데 이 은혜가 함께 하시길 축원 드립니다.

2. 하나님께서는 평강의 복을 주십니다.

시편29편11절에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평강의 복’이란 히브리 原語的 의미로 ‘평화에 의한 복’ ‘평화를 통한 복’이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평화 안에서 축복하시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평화 안에 있으며 하나님의 무한하고 영원한 평화를 통해서 주시는 복이라는 말입니다. 平和의 반대말은 戰爭 혹은 不和, 다툼이라고 합니다. 우리 마음이 편하지 못하면 天下眞味도 世上 富貴榮華도 아무 소용없는 百害無益합니다.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福은 마음의 평안이 아닌 가합니다.

平安이 없는 마음이 가장 치열하게 부딪치는 곳이 음력설 고향 집 저녁 밥상머리가 아닌 가 생각합니다. 그것도 주로 시댁에서, 처가댁은 和氣靄靄합니다. 우리는 설이나 추석에 대한 추억이 전혀 없습니다. 명절이라고 해야 부활절이나 성탄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 동내 돌아다니면서 받았던 세뱃돈은 기억하지요.

가큼 韓國에 가면 나이가 든 위로 누이 둘은 따로 따로 만나고 아래 누이 둘과 동생들은 같이 만나 식사를 합니다. 길게는 수년 만에 만나기도 합니다. 아무리 적어도 다섯 여섯 끼는 먹어야 합니다. 이 모습을 본 이웃들이 다 부러워합니다. 和氣靄靄하기 때문이지요.

왜 서로의 마음에 엉켜있는 서러움과 아픈 사연들이 없겠습니까만 서로 내색하지 않고 참아내는 모습들이 보이지요. 왜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믿고 모신 자들로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로서 평화도 함께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한 목소리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되었다는 공통된 고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너무 과하지도 않게 너무 모자라지도 않게 내 은혜가 내개 족하다고 여기며 불만이 없이 평화로운 마음으로 하루하루 견디어 갑니다, 그리고 순간순간 삶의 고비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해 주십니다. “너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사람들은 영혼의 평화와 마음의 평화와 생활의 평화와 함께 평강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富貴榮華를 다 누린다 하여도 영혼과 정신과 생활의 평강이 없으면 아무리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축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평화를 통해서 평화와 함께 오는 평화의 복이므로 우리가 복을 받으려면 모든 사람과 화평하고 화목해야 합니다. 이웃이나 형제 그리고 가족이나 친구나 누구하고든 척을 지고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평화를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금년 한 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의 복을 받으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3. 하나님께서 영원한 복을 주십니다.

시편21편6절에 “저로 영영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의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영원토록’는 ‘영원까지’ ‘영원을 향하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영원한 복이고 또한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영원한 복입니다.

오랜만에 교회 나온 남편이 돌아가는 차안에서 夫人 집사에게 ‘오늘 목사님 설교 정말 은혜로웠지’ 하자 옆에 앉아 있던 夫人집사가 ‘무슨 은혜는 은혜야 성경구절이 다 틀리는데’라고 대꾸를 합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한 마디 합니다. ‘지가 얼마나 안다고 잘난 체야 설마하니 목사님이 틀리겠냐?’합니다.

순간 은혜고 뭐고 다 사라지고 고함소리만 요란합니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놀라서 울자 엄마가 소리칩니다. ‘왜 우냐 그만 그치지 못해’그리고 상소리로 아이들을 나무랍니다. 우리 집 사람하고 저녁마다 성경을 읽는데 서로 다른 Version 성경이라 다르게 변역되어 있습니다. 가큼 보면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그래서 교회가 모든 성도들이 같은 Version의 성경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데, 가큼 다른 교회에서 온 성도들이 꼭 같은 이유로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이 夫婦싸움도 마찬가지로 다른 Version의 성경을 가지고 있어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렇게 성경을 바꾸라고 해도 돈이 아까워 못 바꾸고 있다가 한 순간에 은혜가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복은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복이 아니고 영원토록 누리는 복입니다. 세상의 복은 있다가 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이 세상에서도 저 나라에서도 영원히 누리는 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최대 목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섬기며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으로 모셔야 하겠습니다. 남은 금년 한 해도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과 평강의 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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