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게 효도하자

By 담임목사 on May 10, 2020

본문: 잠언23장22-26절
제목: 부모님께 효도하자

Coronavirus로 인해 인류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입니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때와 장소의 문제이지 호흡 있는 생명체는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가큼 새벽기도예배를 나오면서 길가 죽어있는 사슴이나 짐승들을 봅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나도 때가되면 별수 없이 저 모양이 되겠구나.

그래서 사람이라면 오래 살기를 원합니다. 오래 살수 있다고 하면 그것저것 안 가리고 먹어치웁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이 죽지 않고 장수할 수 있는 방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중 다섯 번째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라라”

늘 하는 말이지만 그냥 오래 사는 것보다는 부자로 잘 사는 것이 중요하지요? 한 마디로 부모에게 효도하면 이 땅에서 부자로 잘 살다가 죽지 않는 영생을 얻고 영원한 세상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新約聖書에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처럼 이 세상에서 부자로 잘 살다가 지옥에 가느냐. 아니면 나사로처럼 거지로 살다가 천당에 가느냐?

聖經은 부자로 잘 살다가 천국에 가는 길은 오직 부모에게 효도하는 길뿐이라고 합니다.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믿는 성도들이 각성하고 촉구해야할 교훈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뀐다 해도 하나님의 법은 바뀔 수 없고, 불안하고 두려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 말씀인데 그 의미를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부모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舊約聖書에 나오는 人物 중 가장 장수하며 부자로 잘 산 사람은 이삭입니다. 이삭을 두 單語로 이야기하면 ‘배려’와 ‘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이 백세에 아들을 얻었는데 아이가 성장하여 열 나무 살 되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더니 너는 내가 지시하는 곳으로 가서 아들이삭을 제물로 삼아 제사를 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삭이 장성하여 얼마든지 아버지 아브라함을 거역할 수 있지만 제단에 올라가기까지 순종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고, 본문22절에는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너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고 했는데 그것은 ‘나를 낳아준 부모이기에’라는 血緣과 人倫의 道德的 의미에서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모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와의 절대적 관계를 교훈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삭이 살던 古代 Palestine는 사막으로 물이 귀했습니다. 주로 목축을 생업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물은 생명과 같았습니다. 이삭은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파면 물이 넘쳐흐릅니다. 그러면 이웃 부족이 와서 빼앗습니다. 이삭은 다투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서 우물을 팝니다. 물이 넘칩니다, 그러면 또 와서 빼앗아 갑니다. 이삭은 싸우지 않고 양보합니다. 남의 배려했습니다.

이 時代에 그렇게 살면 거지꼴을 못 면합니다. Virginia에서 Coronavirus 진단키트를 들어오면서 州 방위군까지 동원해서 경비를 섰다고 합니다. 혹시 연방정부나 다른 주에서 빼앗기지 않을까 해서요. 이것이 이 時代의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배려가 없이 이기적인 生存競爭만이 존재하는 세상.

마태복음26장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성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시므로 온전히 하나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부모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은 성경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삭이 부모님께 순종하고 큰 복을 받았던 것처럼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도 부모님께 효도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순종의 덕을 세워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사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부모님을 즐겁게 해 드려야 합니다.

본문25절에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권고함으로서 부모님을 즐겁게 해 드려야함도 자녀들의 의무인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려야 하냐는 것입니다. 한국 TV에 85살 먹는 딸이 95살 먹은 새어머니와 동거하는 모습을 담아 방영한 것을 보았습니다.

지극 정성으로 어머니를 모시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일찍 지아비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전처자식들을 키워 시집장가 보내려고 온갖 고생을 다한 새어머니에 대한 딸들의 고마움은 갚을 길 없는 감사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늙어 의지할 자신의 피붙이 없는 새어머니를 모시는 의붓자식들의 정성은 감동적이었습니다.

자기 속으로 낳은 자식도 힘들다며 버리는 세상에 보기 드문 사람다운 삶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고려장이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부모가 나이 들어 늙으면 산에 갔다 버리는 풍습입니다. 요즈음 Coronavirus로 인하여 죽은 사람의 대부분이 늙은 老人이라고 합니다. 치료 우선순위에서 밀려 방치된 체 죽습니다.

참으로 말로 할 수 없는 비애를 느낍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이려니 생각하니 허무하고 헛되고 헛되다고 한탄한 솔로몬의 말을 실감나게 합니다. 상상력을 동원하여 유다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봅니다. 그를 훌륭한 소년으로 생각하면 그의 존재는 가룟 시몬 집안의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는’고백자’ 혹은 ‘하나님에 대한 찬송’을 의미하는 유다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이 총명한 소년이 장난치며 노는 것을 지켜보면서 도대체 누가 먼 훗날에 성육신한 진리께서 그에 대하여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리라고 상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 얼마나 슬픈 사랑의 신비며 부모의 고통입니까? 그런 일은 또 얼마나 자주 되풀이되고 있습니까? 어른이 된 자식의 불행으로 말미암아 눈물을 흘리도록 운명 지어진 부모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세월이 지나면 모든 것이 잊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로나 우리는 잊지 않고 부모님을 공경하며 즐겁게 해드려야 하겠습니다.

3. 부모님의 은덕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약성서 에베소서6장2-3절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부모님의 은덕을 잊지 않으면 축복을 내려 주시겠다는 약속의 첫 번째 계명은 우리를 낳아 주신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고통이 내 고통이고, 부모의 기쁨이 바로 내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모와 자식은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부모에게 불효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눈에서 눈물 나게 하는 것은 바로 내 눈에 눈물을 뽑아내는 것입니다.

독일 속담에 ‘한 아버지 열 자녀 기를 수 있어도 열 아들 한 아버지 모시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자녀에게 하는 것 반의반만 부모에게 해드려도 효자가 되고 남편이나 아내에게 하는 것 십분 일만 해도 효자비를 세우려 할 것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하고 복을 받기를 원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일 뿐입니다.

부자유친의 나라 우리 조상들의 가르침에도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불효다고 했습니다. 잠언1장8절에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고 했는데 오늘 이 시대의 모든 믿는 성도들이 살아생전에 부모를 잘 공경하여 복을 받고 화평과 사랑이 넘치는 축복을 누리시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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