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기적

By 담임목사 on April 1, 2018

본문: 마태복음28장1-10절

제목: 부활의 기적

부활은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입니다. 교회는 그 위대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가장 큰 절기로 지키고 있습니다. 부활절 날짜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는데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춘분이 지나고 그 다음 첫 만월이 지난 후 첫 주일을 부활절로 지낼 것을 결정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소생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기독교적 용어로 부활이라고 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것이 죽음입니다. 죽음은 생명이 없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께서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은, 인간이 죽음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수없이 지나버린 부활절 예배에 그 많은 설교를 통해 부활의 message를 들었지만 아직 몸이 다시 산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고 그 많은 달걀을 먹었지만 그 의미는 깨닫지 못하고 또 다시 한 번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절 설교를 준비하면서 dilemma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부활의 말씀을 전하지? 우리 인생살이 속에서 부활을 경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확실하고 실감나게 부활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 생각한 가장 근접한 언어가 ‘전화위복’이라는 말입니다. 轉禍爲福이란 ‘재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됨’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전화위복이 생각하기에 따라 매일매일 우리 삶의 현장에서 자주 일어나는 아주 평범한 일입니다. 제가 연이어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 결과 보험료가 엄청 올랐습니다. 후회막급 한 일입니다. 올라간 보험료를 생각하니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자정이 넘어 computer를 커고 이리저리 검색을 하다 새벽녘에 잠이 들었습니다.

잠을 부족하여 정신이 멍멍하여 사순절 새벽 제단에 나와 복잡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데 ‘뭐가 그리 걱정이냐?’는 음성이 들려요. 그리고 이어서 ‘그래도 살았잖니, 60mile로 달리는 Highway에서 10ton truck에게 받히고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는 것이 말이 되냐? 내가 너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이 바로 이와 같이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전화위복의 사건입니다. 올라간 보험료만 생각하면 근심과 걱정뿐인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나를 안위해 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니 기쁨이 충만합니다. 바로 이것이 부활의 역사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부활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의 사고로 보험사가 지불한 액수를 계산해 보니 앞으로 20년 동안 보험료를 지불해도 다 갚을 수 없어요. 은혜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 보험료와 같은 것입니다. 일주일 하루 쉬어야 하는데 아침 일찍부터 교회 나와 하루 종일 식사당번이다. 성가대다. 이런저런 궂은일 해야 하고 경기도 안 좋은데 헌금도 내야하고.

그런데 세상 살아가면서 위기에 처하고, 환난을 당하고, 육신이 병들고,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되는 일을 당할 때, 生死를 넘나들 때 마다 우리의 헌신과 봉사와 희생은 보험료와 같이 우리의 문제들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능력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1.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왜 고초 당했나 이 벌레 같은 나위해 그 보혈 흘렸네
  2. 주 십자가 못 박힘은 속죄함 아닌가 그 긍휼함과 큰 은혜 말할수 없도다
  3. 늘 울어도 그 큰은혜 다 갚을수 없네 나 주님께 몸 바쳐서 주의 일 힘쓰리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눈 밝았네 참내기쁨 영원하도다.

사람에게 죽는 것이 최악의 절망이라면 우리에게 희소식 중의 희소식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입니다. 예수가 자기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고, 죄와 죽음과 사탄의 노예였던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을 주었다는 사실은 개념이나 신화나 소망스런 생각이 아니라 육체의 피 묻은 현실이요, 시공의 사건이요, 부활의 영이신 성령의 실존사건입니다.

부활의 영은 나의 피요, 살이요, 심장이요 호흡과 같은 것입니다. 나를 창조하신 역사보다 예수와 함께 나를 부활시킨 성령의 역사는 나의 삶의 순간순간에 죽음을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성화와 영화의 영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부활절예배를 드리면서 십자가를 바라보시고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추어진 큰 고통이 사라지고 눈이 밝아져 나를 안위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고 죽음을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역사가 함께 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부활절 색칠한 삶은 달걀을 먹은 관습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옛 부터 달걀은 풍요로운 복을 상징했습니다. 달걀은 죽은 것 같아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생명이 계속되고 있어 마치 겨울 뒤에 숨어있는 봄과 같은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봄이 오면 달걀을 서로 주고받았습니다.

중세 기독교가 사순절 기간에 달걀 먹은 것을 금했기 때문에 신자들이 부활 주일에서야 달걀을 서로 나누어 먹을 수 있어 이것이 관습이 되어 내려와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학교에 나오는 여덟 살짜리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잔병치레가 많아 몸이 늘 아프고 휠체어에 실려 교회에 나오는 소년이었습니다.

부활주일을 앞두고 교회학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속이 비어 있는 플라스틱 계란을 하나 씩 나눠주며 그 속에 무엇이든 생명이 있는 것을 넣어오라고 했습니다. 부활절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이 차례로 계란을 열어 보았습니다. 꽃이나 나뭇잎, 곤충 등 아이들은 생명이 있는 여러 가지를 준비해 왔습니다. 소년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소년의 계란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걸 본 몇몇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웃었지만 앓고 있는 소년을 동정해서 교사는 부드럽게 “준비하지 못했어도 괜찮아. 많이 아팠나 보구나.”라고 위로하였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생명을 준비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무덤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살아났기 때문에 그 무덤이 비어 있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생명 있음, 살아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잖아요.” 우리 기독교는 빈 무덤의 종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무덤에서 나와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절 예배를 드리면서 사망의 공포가 사라지고 빈 무덤의 기적이 일어나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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