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뱀과 놋 뱀의 기적

By 담임목사 on June 7, 2020

본문: 민수기21장4-9절
제목: 불 뱀과 놋 뱀의 기적

‘雪上加霜’이란 ‘눈 위에 또 서리가 덮인다는 뜻으로 난처한 일이나 불행이 잇따라 일어남을 이르는 말인데, 오늘 우리들이 처한 상황을 이르는 말이 아닌 가 싶습니다. 무섭고 두려워 밖을 나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리니 더욱 더 平和와 自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Africa American’들이 모여 사는 洞內에서 Business하는 성도가 LA 폭동으로 큰 피해를 입고 난 후에 간증을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빈손으로 아이 둘 데리고 移民와서 밤낮 안 가리고 죽기 살기로 일해서 겨우 가게 하나 열었는데 하루 밤사이에 알거지가 되어 거리로 나 앉을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저런 생각에 ‘나는 참 재수가 없는 놈이구나.’ 생각하니 원통하고 분해서 견딜 수가 없더랍니다. 한 푼이라도 더 번다고 보험도 안 들고 세금도 속이고 그래서 빈털터리가 되어 오갈 곳이 없어 左右를 살펴보니 일가친척도 이웃에게도 연락할 곳이 없어 移民 초기에 도움이 필요하면 가큼 찾던 敎會 생각이 나 밥도 얻어먹을 겸 갔습니다.

그 날 설교재목이 ‘범사에 감사하라’인데 말씀을 들으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감사할 일이 없어 그냥 나올까 하다가 기왕 왔으니 밥이라도 먹고 갈까하는 생각에 앉아 있는데 설교가 끝나고 목사님이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하자 온 성도가 지붕이 나아갈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으며 기도를 합니다.

바로 옆 자리에 믿음이 좋고 성품도 좋아 많은 성도들에게 존경을 받은 권사님 앉아 기도를 하는데 ‘주여, 주여, 내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악을, 악을 쓰는데 감사하지 못한 죄를 용서해 달라며 눈물 코물 흘리며 손을 들고 기도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스스로의 지난 모습이 떠오르는데 ‘아이고! 내 팔자야’ 늘 원망하며 지내온 날들입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늘 한 숨 쉬며 팔자타령하며 부모 원망하고 세상 원망하며 살던 자신의 모습이 죄이었구나. 그 순간 그래도 살아 숨 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는 생각이 들어 용서와 감사의 기도를 했다고 간증하며 그가 남긴 한 마디는 ‘원망과 불평하는 인생에게는 늘 불 뱀이 옆에 있다.’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의 기적을 경험하며 기쁨 마음을 뒤로 하고 이어지는 행진이 피곤하고 먹고 마시는 것도 불편하자 또 다시 모세를 향하여 원망을 발하였습니다. 그들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서는 벌하기 위하여 불 뱀을 백성 중에 보내어 물게 하시므로 많은 무리가 죽었습니다.

이에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며 애소하매 다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놋 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달고 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 뱀을 쳐다본 즉 살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놋 뱀 자체에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과 순종 여부를 알려는 것이니 쳐다보는 자는 살았고 불순종하는 자는 다 죽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인생이 광야에 내려진 불 뱀 때문에 생사의 기로 서있게 되었습니다. 모양만 다르지 불 뱀보다 더 강력한 것들이 우리들의 생명과 생업을 위협하고 있어 風前燈火 사면초과에 처해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 지혜와 교훈을 찾아 벗어 날 수 있는 능력을 덧입고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5절에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 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고 하나님께 감사할 바를 오히려 원망거리로 삼아 모세와 하님을 향하여 원망합니다.

그들은 조상대대로 노예로 살던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온 것은 천번 만번 감사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고 날마다 하늘의 만나가 떨어지고 메추리를 먹고사는 奇蹟적인 생활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만나가 질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출애굽기16장31절에 보면 만나는 결코 박한 식물이 아니었습니다. 만나는 맛이 꿀 섞은 과자 같다고 했으니 원망한 자들이 거짓말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78편29절에 “하나님은 그 맛있는 만나를 저희 소욕대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탐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78편10절에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저희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지도자에 대한 원망과 시비는 덕을 세우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시켜 불 뱀에게 물리는 비극을 빚어내었습니다.

고린도전서10장10-11절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남의 탓하며 서로 원망하는 것입니다.

聖經은 바로 이것이 말세의 조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합니다. 우리의 때에 이 재앙이 지나가길 위해서, 人權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자신이 처한 환경을 남에게 전가하며 원망하는 행동에 불과합니다. 이런 기회에 약탈이라도 해서 자신의 소욕을 채우려는 수단에 불과한 행위인 것입니다. 그 결과 불 뱀이 난무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2. 주의 종을 찾아야 합니다.

7절에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우리와의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 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불 뱀에 죽은 문제를 해결을 하는 길은 하나님에 종 모세를 찾아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는 길밖에 없다고 믿었습니다.

聖經에 보면 하나님께 종들을 찾아가 해결을 본 일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舊約聖書 열왕기하4장1절 이하에 보면 한 여인 엘리사를 찾아와 남편이 큰 빚을 지고 죽었는데 그 빚 때문에 두 아들이 노예로 끌러가게 생겼으니 해결해 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이에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이웃집에서 빈 그릇을 빌려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문을 닫고 한 병에 기름을 빌려온 빈병에 붓게 합니다. 많은 그릇에 한 병의 기름이 붓는 대로 다 채워졌습니다. 미망인은 이 사실을 엘리사에게 고했습니다. 엘리사는 그 미망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아들이 생활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하나님께 종을 찾으므로 빚 문제 아들들의 종살이 문제 경제문제가 다 해결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新約聖書 요한복음11장2-3절에 보면 마리아가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으며 오라비가 병들었다고 간구할 때 오리비의 병이 나음을 얻었습니다.

舊約聖書 열왕기하5장9-14절에 보면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도 엘리사를 찾아가 그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더니 자기 문둥병이 깨끗이 씻음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어려운 문제를 만나게 되면 쉬쉬하며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주의 종을 찾아가서 의견을 나누면 좋은 결과가 있게 될 것입니다.

3. 놋 뱀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본문 9절에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 뱀을 쳐다본 즉 살더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놋 뱀을 만들어 높은 장대 끝에 매달고 하나님 앞에 범죄 한 것을 회개하는 마음으로 쳐다본 즉 뱀에게 물린 상처가 나음을 얻고 이를 불순종하고 믿지 않는 자들은 다 멸망하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놋 뱀을 쳐다본 즉 살더라.” 이 얼마나 쉽고도 간단한 구원 방법입니까? 하나님께서 불 뱀에게 물린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 끔찍한 불 뱀을 연상시킨 놋 뱀을 쳐다보게 하신 것은 하나의 역리적인 처사입니다. 사람에게 신앙을 발생시키려는 계시의 원리는 어떤 때에는 이렇게 사람의 理性을 거슬립니다.

놋 뱀을 쳐다본다는 것은 첫째 죄를 회개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본문7절에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께 원망하므로 범죄 하였사오니”라고 했습니다. 독을 제거하는 데는 먼저 자신들의 죄를 발견하여 고백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자 백성들은 즉시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진노가 그치게 해 달라고 모세에게 호소했습니다.

요한계시록3장19절에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행하시는 회유의 채찍으로써 범죄의 길로부터 돌아오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니느웨 성의 백성들이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로 놋 뱀을 바라보는 것은 순종할 때 가능합니다. 본문9절에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 뱀을 쳐다본 즉 살더라.” 뱀에 물린 자들에 있어서 생명을 유지하는 길을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데 있었습니다. 그 순종은 또한 아주 쉬운 것이니 놋 뱀을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기독교의 眞理는 理性的 고안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구속의 교리는 非理性的 고안입니다. 예수의 피가 모든 죄를 씻는다는 것은 非理性的 고안입니다. 놋 뱀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요한복음3장14-15절에 예수님께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구리 뱀이 장대위에 높이 달린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예표 합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 죄 구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면 세 힘을 얻습니다.

독수리가 날개 치며 하늘을 오르는 그런 피곤을 모르는 힘을 얻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모두의 죄를 다 사해주셨으니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 죄를 다 사함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을 전파하여 언약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우리를 벌하여 죽이시려고 이 재앙을 우리에게 내리신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여 믿게 하려는 것이요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바라보는 자에게 놀라우신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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