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하소서

By 담임목사 on March 4, 2018

본문: 에베소서4장22-24절

제목: 새롭게 하소서.

立春이 지나 春三月이 왔는데, 싸리문 밖에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어 따사로운 햇볕이 애달픕니다. 봄이 오면 山川草木이 새 옷을 갈라 입고 새론 모습으로 우리를 반기고 겨우내 추위에 움츠렸던 동내 꼬마 녀석들이 골목마다 뛰어나와 버들피리 입에 물고 부르던 노래가 아직도 귓가 아른거려 고향의 봄이 그립니다.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되어 기억이 희미하지만 그래도 해마다 이때쯤에 늘 부르던 노래가 생각납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 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내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버들피리 반주에 맞추어 부르던 노래입니다.

그리고 학교에 가면 부르던 ‘기미년 삼월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 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한강 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아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 고등학교 때까지 불렸던 삼일절 노래인데 오십년이 넘은 세월이 지났나봅니다.

이 두 노래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의미는 변화, 즉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철따라 세월 따라 변하지 않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식민지의 고달픈 삶에서 새로운 세상을 갈망했고, 山川이 얼어붙는 매서운 추위에 따사로운 봄날로의 변화를 간절하게 기다리며 부르던 노래들입니다.

그런대 오늘 본문은 또 다른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심령이 새롭게 되어’ ‘새 사람을 입으라.’ 한 마디로 변하여 새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본디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해마다 새해가 되면 이런저런 계획도 세우고, 새로운 결심도 하고 마음의 각오를 다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作心三日, 龍頭蛇尾라고 말에만 그치고 맙니다. 저도 학창시절 책상머리에 투쟁적은 구호를 써 부치고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고 해보았지만 늘 그 타령이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도 생각하고 계획했지만 백분에 일도 이루지 못한 것 같아 지금도 ‘한 십년만 젊어도’라는 후회와 탄식뿐입니다.

사람이 변화한다는 것은 ‘버릇을 고친다. 습관을 바꾼다.’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 버릇이 있습니다. ‘善을 행하는 버릇, 惡을 행하는 버릇, 本能的인 버릇’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버려야 할 버릇은 악을 행하는 버릇과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은 버릇과 모이기를 폐하는 버릇입니다.

이 버릇을 고치지 못하면 양심이 악해지고 더러워지며 결국은 해산의 고통 같은 고통이 임하게 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가져야 할 버릇은 예배드리는 버릇, 성수 주일하는 버릇, 기도하는 버릇인데 어떻게 해야 우리가 나쁜 버릇과 습관을 고치고 변하여 새 사람을 입을 수 있는지 본문을 중심으로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옛 사람을 버려야 합니다.

본문22-23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은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입니다. 이 말은 새로운 사람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살려면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죄로 물들었던 과거의 생활을 청산하는 것이고 그래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유혹의 욕심에 따라”라고 했습니다. 즉 옛사람이란 무분별한 욕심에 따라 정욕대로 사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야고보사도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야1:5)고 했습니다.

가난에 恨이 맺혀 땅에 욕심이 많은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임금이 노인을 불러 말을 한 필 주면서 이렇게 제안합니다. ‘이 말을 타고 해가 질 때까지 달려서 출발점까지 돌아오면 그 달린 모든 땅을 주겠다.’ 이 말을 듣고 욕심이 생긴 노인 새벽부터 저녁까지 달렸습니다.

그리하여 그 넓은 땅을 다 돌아 출발점에 도착하자마자 너무 지쳐서 말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임금이 장례식을 화려하게 치려주고 묘비에 이런 글을 쓰게 했다고 합니다. “이 무덤 속에 있는 사람은 이 나라의 반이 되는 땅을 차지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소유는 한 평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것이 있습니다. 그 만큼 습관이나 버릇을 고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습관은 사람의 인격을 망가뜨리고 결국은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본문에 ‘구습을 버려라’는 성도들이 믿기 전의 모든 습관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어느 대학 교수가 화장실 벽에 낙서를 하는 어떤 교수를 보게 됩니다. 충격에 빠진 교수가 ‘아니 자네가 화장실 벽에 낙서를 하다니 나는 자네가 화장실 벽에 낙서나 하는 사람인 줄 정말 몰랐네.’ ‘오해하지 말게 나는 단지 문법을 고치고 있는 것뿐일세.’  습관은 무서운 것입니다. 오랫동안 몸담아 하던 일을 끊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인 된 이후에도 옛사람의 행실을 벗어버리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믿는 성도들의 나쁜 습관을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는 성전에 나오기 싫어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일하기를 싫어 습관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습관을 버려야 하는데 이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2. 심령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본문23절에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라고 했습니다. 心靈은 마음속의 영혼을 이르는 말입니다. 영어로 Spirit라고 하는데, 습관과 버릇은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심령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심령이 새롭게 된다는 것은 영혼이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인데 심령이 새로워지려면 무엇으로 될까요?

에베소서5장26절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했고, 베드로전서1장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새롭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일찍이 아모스 선지자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고 했고, 사도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고 했습니다.

Moody 선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면 마음을 평온해진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온갖 어둠을 물리치는 빛, 죽음을 이기는 삶, 주님의 재림에 대한 약속, 영원히 지속될 영광에 대한 보증을 읽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말씀을 듣고 깨달을 때마다 여러분의 심령이 새로워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1장8절에 주님께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권능은 우리가 새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성령이 우리를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모든 것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이 능력은 베드로를 변화시켜 주님의 종으로, 사도바울을 변화시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나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도 성령이 우리에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좋은 기계나 새로운 조직, 더 많고 고귀한 방법이 아니다. 다만 성령이 사용하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기도에 능한 사람을 필요할 뿐이다. 성령은 방법을 통하여 오지 않고 사람을 통하여 온다. 또한 성령은 기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온다.”고 했습니다.

3. 새 사람을 입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24절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범죄 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 함은 의와 진리 거룩함과 지혜인데 범죄 함으로 사람의 모습이 헌 사람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 사람을 입은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 즉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들은 예수를 본받아야 합니다. 본문에 ‘하나님을 따라’는 하나님 본받으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사도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마음을 본받아 날마다 예수의 인격을 닮아 가는 생활이 곧 새 사람을 입는 비결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버리고 사는 삶는 집 떠나 쥐엄나무 열매는 먹은 거지꼴이 된 탕자와 같은 삶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은 풍성한 열매가 축복된 삶인데, 이 은혜가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은 하나님께서 산채로 하늘로 데려가셨습니다. 우리도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여 살다가 말세에 주님이 재림하실 때, 주님께 데려감을 입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고 힘써야 합니다. 세 삶이란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옛날 나쁜 습관을 모두 버리고 좋은 습관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심령을 새롭게 하며 주 안에 새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고 그리고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도리어 덕을 세우는 데 소용이 되는 대러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4: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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