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수 같은 사람

By 담임목사 on October 7, 2018

본문: 사사기19장11-21절

제목: 생명수 같은 사람

슬하에 두 딸을 둔 어느 농부가 地主의 횡포가 극심하여 목에 풀칠하기조차 힘든데 雪上加霜 아내가 병들어 죽자 살길을 찾아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두 딸과 함께 큰 도회지로 나가 일자리를 찾던 중에 어느 富者집 창고지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山賊들이 내려와 곡간의 제물을 다 빼앗아 갔습니다.

구두쇠로 소문난 주인은 화가 나서 농부와 두 딸을 노예로 팔아 조금이라도 빼앗긴 제물을 채우자고 생각하고 헛간에 가두어 놓았습니다. 이들을 가엾게 여긴 이웃집 처녀가 밤마다 오가며 먹을 것을 넣어 주었습니다. 이를 알아차린 주인이 울화가 치밀어서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처녀를 잡았습니다.

잡고 보니 그 소녀는 자기 집에 또 다른 노예의 딸이었습니다. 주인은 소녀를 동내 한 가운데 느티나무에 달라 들 짐승의 밥을 만들었습니다. 밤마다 이 소녀의 비병소리가 하늘까지 들러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두 천사를 내려 보내 무슨 일인지 살피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두 천사가 동내에 들어서자 비명소리가 그치고 조용합니다. 이미 소녀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두 천사는 富者 집으로 들어가자 이번에는 가난한 농부와 두 딸을 멍석에 감아 멍석마리를 준비해 놓고, 온 동내 사람들 다 불러 모아 구경하게 하고 머슴들에게 때리도록 명령을 합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두 천사는 하나님께 불을 내려달라고 애원하여 땅이 가라지고 하늘에 불이 내려와 온 집과 전 재산 그리고 모든 가족과 식솔까지 불에 타 죽게 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인데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오랫동안 이 전설 같은 이야기가 우리 사회 속에 만행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한 레위사람이 자기 여종과 소년을 거느리고 자기 고행 에브라임 산지로 가다가 해가 저물어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라는 성으로 들어가 일어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나그네 일행은 긴 여정에 지치고 굶주림에 쉬고 먹을 찾아 도움을 청해 보지만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아 길가에서 노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저녁 늦게까지 밭일을 하고 돌아오던 한 노인이 딱한 나그네 일행의 형편을 돌아보아 나그네 일행을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편히 쉬고 먹고 머물러 갈 수 있도록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이 노인을 가리켜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이 생명수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곳 나에게 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흔하지는 않지만 이 노인과 같이 지치고 피곤한 인생들에게 힘과 용기와 삶의 의욕과 생기를 북돋아 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것 봐! 그럴 줄 알았어. 비웃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생명수 같은 사람에게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무엇인지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아름답고 선한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보냐는 것입니다. 본문에 많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나그네 일행을 거지로 보았고 귀찮은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본문17절에 보면 “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거리에 행객이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뇨?”라고 했습니다.

노인은 선한 눈을 들어 성안의 모든 사람이 저버린 하나님의 종 레위사람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노인은 선한 눈과 긍휼의 눈을 가지고 나그네 된 레위사람을 보고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 같은 것을 보며 살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보냐에 따라 악인과 죄인으로 전략한다는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선한 눈으로 보지 않고 악한 눈으로 보는 까닭입니다. 남의 약점만 찾아내고, 남의 결함만 살피고, 남의 치부만을 들추려 하고, 남의 단점만 노려보려는 그 눈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명수 같은 사람은 선한 눈을 가지고 만물은 관찰하며 인생들을 살핍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121편1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 서로다”라고 했습니다. 눈을 들어 산을 볼 때 여호와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요한복음4장35절에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서있는 자리에서 좌우를 살펴보면 무엇이 보입니까? 슬픔사람, 병든 사람, 배고픈 사람, 다양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양한 사람들 가운데 믿는 않은 사람들을 다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에게 보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긍휼의 눈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그들에게 구원의 기쁨을 나누어 주라는 말씀입니다.

  1. 들을 귀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에 노인은 나그네에게 묻습니다. 뉘시오? 나그네가 본문18절에 대답을 합니다. “우리는 유대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생명수 같은 사람은 나그네 인생의 딱한 사정을 들을 수 있는 특별한 귀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생명수 같다고 부르는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들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그 귀를 가지고 병든 자, 가난한 자, 환란 받는 자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신약성서 마가복음9장17절에 보면 “무리 중에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이여 벙어리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거품을 잡으면 거꾸러져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 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라고 예수님께 소리칩니다.

악인들 같으면 그런 말 듣는 귀가 없기 때문에 시끄럽다고 소리를 질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생명수 같은 인생이기에 들을 귀를 가지고 계셨고 그 딱한 소리를 들으시고 귀신을 내쫓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자들의 소리를 들어야 하겠습니다.

인류문명에 Digital시대가 도래하면서 모든 사람들은 귀로 듣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Analog시대 귀로만 듣던 음악이 Digital시대에는 눈으로 보는 음악으로 변화되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얼굴 없는 가수’가 생긴 것입니다. 이 또한 성형수술이 발달하여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만

Digital시대의 음악은 화려하고 충동적이고 단순해졌습니다. 그래서 Analog시대의 감성이나 지성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보고나면 그냥 지나쳐 버리지 남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Analog시대의 음악들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만들고 마음을 움직이는 그 무엇인가가 여운을 남겼습니다.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여 뭐가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의 귀는 Analog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이여야 합니다. 주위에서 들이는 모든 소리에 감성이 자극하여 무엇인가를 생각하여 지성이 행동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이런 귀가 열리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3. 격려의 입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20절에 “노인이 가로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모든 쓸 것은 나의 담책이니 거리에서 자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노인은 나그네에게 ‘왜 거리에 잠을 청하고 있느냐? 잠자리가 없어서이냐, 방이 없어서이냐 이 모든 것을 내가 준비할 터이니 우리 집으로 가자’ 이 한 마디가 피곤한 나그네에게 얼마나 힘이 되고 격려가 되었겠습니까?

저는 늘 이맘때가 되어 아침저녁으로 찬 기운이 들면 놋그릇에 담아 아랫목 이불 밑 에 하얀 쌀밥과 된장국이 그리워지고 어머니가 애달파집니다. 그 어머니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집에 들어가든 늘 반가워하시고 격려해 주시던 그런 어머니이셨습니다.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진심어린 격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서로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늘 ‘지가 뭔데’ 서로 직시와 시기로 일괄되게 말하고 있습니다. 거로 격려하여 삽시다.

4. 봉사의 손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21절에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막 같이 메마른 세상에서 어떤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생명수 같은 인생으로 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인생살이가 힘들어 고단하고 지친 몸과 참담한 심정으로 새벽을 깨워 나와 앉아 있는 저에게 귀를 열고 들으라며 시편23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생명수 같은 인생은 선한 눈, 들을 귀, 격려의 입, 그리고 봉사의 손길을 가지고서 이 손으로 하나님께 봉사하며, 이 입으로 인생을 위로하며 이 귀로는 사람의 사정을 들어주며 이 눈으로는 사람의 필요를 살펴 힘과 용기와 의욕과 생기를 복 돋아 주는 것입니다.

No Response to “생명수 같은 사람”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