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자

By 담임목사 on August 11, 2019

본문: 요한일서4장7-12절
제목: 서로 사랑하자

‘서로’의 명사적 의미는 ‘짝을 이루거나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로서 예를 들면 ‘서로 이해하다’ ‘서로 힘을 합치다.’ 그리고 부사적 의미로는 ‘관계를 이루는 둘 이상 사이에서, 각각 그 상대에 대하여. 또는 양방이 번갈아서.’라는 의미로 예를 들면 ‘둘은 서로 모르는 사이다. 서로 가깝게 지내다.’라고 국어사전에 정의해 놓았습니다.

Greek의 철학자 ‘Aristoteles’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주장하면서 ‘인간이 개인으로서 존재하고 있어도 그 개인이 唯一(유일)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 하에 존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개인이 없는 공동체는 존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建國이레 ‘뭉치면 살고 흘어지면 죽는다.’라는 표어를 내걸고, ‘독불장군 없다’는 우리 말까지 있었지만 ‘서로 이해하고’ 서로 힘을 합치다‘가 가장 어려운 민족이 한 민족이 아닌 가 생각합니다. 특히 기독교인들 더욱 안 된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異口同聲으로 ’믿는 것들이 더해’라고 합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 교회가 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우리 믿는 사람들 향하여 ‘지들 밖에 몰라’ 즉 지독하게 이기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우리는 그들의 지탄을 축복이라고 표장해 넘기기 일쑤입니다. 천억이 넘는 예배당을 지어놓고 그 안 서로 둘이 이상은 없습니다.

이런 이 시대의 믿는 우리들을 향하여 사도요한은 종말적 말씀을 묵시적으로 기록하면서 본문7-8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사랑을 세 번씩 강조합니다.

사랑을 혼자 하는 것을 짝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서로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랑은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행위입니다. 자신을 희생하고 내어줄 때 사랑이 이루어지고 열매가 맺게 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사랑은 자기 자신을 주는 것입니다. 인간 사회에서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우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요3:16)고 했습니다. 십자가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십자가 사랑이야 말로 세상에 제일 좋은 것이며, 제일 귀중한 것이요, 가장 아름다운 것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고 합니다.

1.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본문7절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사랑의 원천은 하나님이고 하나님은 우리 사랑으로 이끌어 주시는 분이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자들은 사랑으로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5장4절에 예수님께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믿는 자들은 사랑의 열매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많은 성도들에게 존경을 받는 장로님께서 나이가 많이 드셔서 임종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 친구가 임종을 보려고 찾아 왔습니다. 친구를 보자 반가운 눈빛으로 ‘방금 막 나를 찾아온 세 사람을 만났는데 그들 중 둘과는 헤어졌지만 나머지 한 사람과는 아마도 나와 영원히 함께 할 걸세’합니다.

친구가 묻습니다. ‘그들이 누군데?’ 아! 첫 번째 사람은 ‘믿음’이었네, 그를 보자 나는 ‘믿음이여, 고맙네. 처음 그리스도를 만난 이래로 지금까지 늘 나와 함께 있어 준 자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네, 하지만 이젠 헤어져야 할 것 같군. 자는 자네의 도움이 더 이상 필요치 않은 곳으로 가려던 중일세.’

그러고 ‘소망’이 찾아왔지. 그에게도 이렇게 말해 주었지 ‘잘 있게 소망이여. 자네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과 시련 그리고 실패와 고난 속에서도 수 없이 나를 도와주었지. 하지만 이제는 자네의 도움이 없어도 될 것 같네 이제는 소망이 결실로 맺어지는 곳으로 가게 될 테니까.’

마지막으로 ‘사랑’왔었네. ‘어서 오게 사랑, 자네도 나의 좋은 벗이었지, 자넨 나와 하나님을 그리고 네 이웃과 동료들과 맺어 주었다네. 내 모든 순례의 여정을 자네는 편안하고 기쁨이 넘치게 해주지 않았나? 그렇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자네를 뒤에 남겨 두고 갈 수 없네.

왜냐고? 자네는 나와 함께 천국 문을 지나 하나님의 도성에 함께 가야 할 테니 말일세. ‘사랑이란 하늘에서 비로소 완전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사랑은 하나님과 함께 해야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고린도전서13장13절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2. 사랑은 새로운 창조를 합니다.

태초에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께서 세상만물을 창조하시고 한 가운데 사람을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은 사랑의 실체입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것, 너무 어렵게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Iris Murdoch’는 ‘사랑은 자신 외에도 다른 것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렵게 사리 깨닫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할 때 새 세상이 열리고 새로운 미래가 창조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가 인도 켈커타에서 선교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사명을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가난한 자 중에서 가장 가난한 자에게’라고 그리고 그는 가난한 자, 병든 자, 죽어가는 자, 도시에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자신의 생애를 바쳤습니다.

우리 믿는 자에게 새로운 창조란 비참하고 희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관심과 희망과 긍지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창조의 시대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어떻게 날마다 그러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사랑할 수 있느냐?’ 질문에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그리스도를 발견합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라고 알고 있습니다.’라고.

3. 사랑은 행동해야 합니다.

‘Benjamin Franklin’는 ‘사랑받고 싶다면 서로 사랑하고 사랑스럽게 행동하라’고 했고, ‘본회퍼’ 목사는 ‘Christian이란 다른 사람을 위한 인간이다.’고 했고, Martin Luther는 ‘Christian이라면 이웃에 대하여 작은 그리스도가 되라.’고 했고,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음은 죽은 믿음이다.”고 했습니다.

‘Thomas Watson’는 ‘믿음은 선행으로 가득 차 있다. 행함이 전혀 없는 것처럼 믿고, 전혀 믿지 않는 것처럼 행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6장3절에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말에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Sunday School Times’에 실린 글입니다. 열 살 된 소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국경일을 맞아 어머니가 소년에게 용돈을 7센트를 주었습니다. 소년은 그 돈으로 빵과 사탕을 사먹으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때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중에서 1센트나 2센트는 파러 아주머니 댁에 있는 선교 모금함에 넣는 것이 좋지 않겠니?”

소년은 파러 아주머니 댁으로 가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골치 아픈 문제였습니다. ‘선교헌금으로 1센트를 넣어야 하나, 2센트를 넣어야 하나? 어머니가 딱 몇 센트를 넣으라고 정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한참 동안 고민 하던 소년은 2센트를 넣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양심의 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뭐라고? 배를 채우는 데는 5센트를 쓰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는 겨우 2센트를 내겠다고?’ 그리하여 소년은 군것질에 4센트, 헌금에 3센트를 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이 가볍질 않았습니다.

드디어 선교 헌금함에 다다른 소년은 순간적으로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얼마를 넣는 것이 옳은지를 결정하는 것이 어린 소년의 마음에는 커다란 점이었습니다. 소년은 눈을 딱 감고 용돈으로 받은 7센트 전부를 헌금함에 털어 넣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소년은 허기로 지쳐 있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자기가 굶게 된 경위에 대해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접시에 빵과 우유를 가득 담아 소년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자랑스럽게 웃고 계셨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사랑하는 속에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새로운 창조가 있습니다. 사랑이 행동으로 움직일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미 받았고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한 자들로 성령 충만함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서로 사랑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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