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충만한 삶

By 담임목사 on May 26, 2019

본문: 사도행전2장42-47절
제목: 성령 충만한 삶

언제부터인가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이 改新敎 안에서 나돌기 시작하다가 요즈음 들어 잠잠해졌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닌 가라는 결론지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오순절 이후 초대교회의 모습을 그려 놓았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본문은 초대교회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지도자에게 말씀을 배우고, 형제끼리 서로 화목하고, 항상 기도하기를 힘쓰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성전에 부지런히 모이고, 함께 떡을 떼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백성의 칭찬을 받고, 신자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라고

우리 주님께서는 이러한 교회에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십니다. 때문에 베드로가 거리로 나가 복음을 전할 때 하루 삼천 명씩 회개하고 교회로 모여왔다고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경외와 찬송, 그리고 교회가 부흥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 동안 한국교회에 성령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교회 내에서 문제가 일으켰습니다.

또한 그들로 인하여 목회자들이 가큼 고통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능력을 받았다고 목회자를 우습게 알고 교회를 어렵게 했습니다. 주일날 교회는 안 나오고 기도한다며 기도원으로 올라가고 성경을 임의로 해석하기도 하고 방언으로 기도하고 예언한다하여 성도들을 미혹하기 했습니다.

때문에 목회자들이 성령 충만을 두려워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런 부작용 때문에 성령 충만했던 초대교회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구제문제로 헬라파와 유대인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성령이 강하게 일어난 곳에 문제가 따라 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목회자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성령 충만으로 일어나는 부작용에 대처하는 슬기로운 지혜가 절실하게 요구됩니다. 그래서 이 시간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을 살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기도에 힘썼습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씩 오전9시, 정오, 오후3시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루 세 번씩 기도하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성도들이 모여 전혀 기도에 힘쓸 때에 성령이 충만하게 임했다고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았다고 해도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기를 쉬면 점차 성령이 소멸되어 갑니다. 문제는 성령만 소멸되면 그만인데 그 사이에 사탄이 그 심령에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악령이라고도 하고 사탄 마귀라고 하는 영이 성령의 빈자리를 채우면 메마른 삶을 살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사탄의 노예로 전략하게 되고 맙니다.

혹자는 성령 충만함을 받고 골방에 들어가 혼자 기도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도 혼자 따로 행동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얼마가지 못해 시험에 들거나 기도의 불이 꺼져버리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Two heads are better them one’말처럼 따로따로 둘보다는 하나하나가 하나인 것이 낫습니다.

여러 해 전 달나라를 향하여 아폴로 13호를 쏘아 올릴 때에 미국의 과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아폴로 13호는 현대 과학의 걸 작품입니다. 이것은 매우 정교하면서도 완벽합니다. 이것이 고장 날 확률은 백만 분지 일입니다.” 모든 사람의 확신 속에 아폴로 13호는 달나라를 향하여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지구로부터 2만 마일을 벗어나지 못한 지역에서 그만 고장이 나고 말았습니다. 산소통이 터져 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여행을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돌아올 방법도 막막했습니다. 우주 비행사들은 미국 텍사스 휴스톤에 있는 우주 지휘소에 비상연락을 취하고 회신을 기다릴 수밖에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휴스톤에서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2만 마일이나 떨어진 우주선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우주 지휘소에서는 다만 북극성을 바라보며 방향을 잡아서 돌아오라고 회신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주 비행사들은 영원한 우주의 미아가 될 위험에 빠진 것입니다.

그때에 미국의 대통령은 전 국민에게 함께 아침 9시에 기도하자고 호소했습니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군인도, 어린이도, 온 국민이 함께 기도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폴로 13호가 무사히 태평양에 떨어진 것입니다. 구조된 우주 비행사는 배에 오르자마자 군목의 손을 잡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머리를 숙이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장면이 그 주간 타임지 표지로 크게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우주 비행사 중의 한 사람인 스위저트는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들은 지구에 계신 여러분들과 함께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기도의 힘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2. 교회로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스라엘나라가 로마에 의하여 멸망하고 유대인들은 온 세계에 흩어져 유린하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는 예루살렘 중심의 제사가 점차 상실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백성들의 결집력이 약해졌고 결국은 예루살렘 성전도 파괴되고 나라도 역사 속에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요즈음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갈수록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성도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미국의 중요교단들의 교인가 감소되고 있는 것 또한 심각한 문제입니다. 중요한 경기가 있는 날이면 거의 모든 교회에 성도들이 없다고들 합니다. 특히 성령 충만한 성도들 일수록 교회 예배를 등한 시 합니다.

가큼 전도를 하다 보면 ‘나는 교회는 안 나가도 믿음은 나가는 사람보다 좋습니다.’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 안 믿는다고 하는 소리지요. 더 이상 말해봐야 소용없어 그냥 뒤돌아서고 맙니다. 히브리기자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교인에 대하여 그들이 주어진 권세를 사용치 않음으로 인해 기독교인의 권능이 상실되는 것에 대한 책을 편집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주일에 집에 머무르는 성도는 용서받을 수 없을진대”란 제목으로 다음 내용을 우송하였다. 그 용서받지, 못 할 자는 아래와 같은 사람들이다.

첫째, 주일이 잠잘 수 있는 유일한 날이라고 하여 잠자는 오두막이 필요한 사람, 둘째, 토요일 저녁 TV프로그램을 시청하느라 눈이 빨갛게 충혈 된 TV광으로 눈약이 필요한 사람, 셋째, 교회에 나오면 지붕이 내려앉아 함몰 당할 것 같아 강철 안전모가 필요한 사람, 넷째, 교회가 너무 차갑다고 생각되어 이불이 필요하거나 너무 뜨겁다고 여겨져 선풍기가 필요한 사람

다섯째, 모든 이중신자를 적어두려고 타인의 점수를 매기고 있는 사람, 여섯째, 성탄절의 꽃 포인세티아와 부활절의 꽃 백합으로 장식된 성전만을 보았으므로 그것들이 없는 성전은 생각할 수 없는 사람. 영적 교만으로 성전에 모이기를 등한시한다면 시험에 빠져 고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게을리 하지 말라고 열심히 모이기를 바랍니다.

3. 찬양에 힘써야 합니다.
아무 교회든지 들어가 그 교회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영적 수준을 점검하려고 한다면 찬양 소리를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면 찬송을 불러도 기쁨이 없고 감동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면 저절로 찬양이 따라 나오고 춤이라도 추고 싶어집니다.

사무엘하6장16절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 올 때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춤을 추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지요. 이와 같이 우리도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다윗과 같이 어린 아이와 같은 심정으로 춤추고 찬양을 하게 됩니다.

테오크리트는 수도원의 성가대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가난한 이탈리아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했으나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교황이 되어 하나님을 모실 수만 있다면. 그러면 정말 장엄하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그 소년의 인생에서 그렇게 자리를 바꿔 놓으려면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인가? 아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소년이 교황의 보좌를 끔찍이 동경하였으므로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그의 소원을 들어 주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가브리엘 대천사가 지상에 내려와 그 수도원의 성가대를 돌보았고 테오크리트는 마침내 교황의 성좌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자리에 앉게 된 그는 이전보다 오히려 더 슬퍼졌습니다.

하나님 역시 매일 수도원에서 들려오던 작은 소년의 찬송소리가 그치자 매우 아쉬워하셨습니다. “한 연약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창조의 화음도 생겨나질 않는구나.” 천사의 노래가 사람의 찬송소리를 대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테오크리트는 기꺼이 수도원으로 돌아왔고, 자신의 성가대 자리를 지키며 소박하게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도 내 자신의 마음속에서 기쁨으로 찬양을 할 수 없습니까? 지금 이 시간 성령 충만을 받고 즐거운 마음으로 찬양을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마리아와 사가랴가 성령 충만 할 때 기쁨으로 찬송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함으로 기도하며 찬양으로 산제사를 드릴 때 아벨의 제사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에게 성령의 단비를 내려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성령 충만함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삶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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