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아끼라

By 담임목사 on June 9, 2019

본문: 에베소서5장15-17절
제목: 세월을 아끼라

歲月을 국어사전에 ‘흘러가는 시간. 광음’ ‘지내는 형편이나 사정 또는 재미. 기간이나 때.’라고 정의해 놓았습니다. 또한 세월은 주어진 기간 혹은 합당한 때나 기회 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세월 속에는 삼라만상, 만휘군상이라고 하는 우주에 존재하는 온갖 사물과 현상이 다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본문에 사도바울 선생은 위에 모든 것을 포함할 수 있지만 특별히 세월은 합당한 때나 기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 믿는 성도들은 주어진 기회와 시간을 잘 사용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라는 의미에서 세월을 아끼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을 행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주신 기회를 잘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시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時間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시각과 시각과의 사이. 어떤 행동을 할 틈. 어떤 일을 하기로 정해진 동안. 과거·현재·미래가 무한하게 연속하는 것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3장1절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과 아울러 시간을 허락해 주셔서 사용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물질 뿐만이 아니라 시간도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게 맡기신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잘 사용하여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사람을 위해 또한 자신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잘 알아야 하고 기억해야 것은 내가 세상에 살 동안에 시간을 얼마나 받았으며 어떻게 사용했냐는 것이고, 또한 우리에게 선한 청지기의 사명을 맡기신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회계할 때가 반드시 온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달란트의 비유로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제한적이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인생 고희 칠십’이라고 했는데 설교를 준비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너는 그 시간을 어떻게 썼냐고? 유수와 같은 세월 속에 후회뿐입니다.

금요일마다 빵을 가지고 오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돌아옵니다. 왜 그리 빨리 오는지 모릅니다. 속담에 ‘슬기로운 자는 기회를 잘 선용한다.’했고, 본문에 사도바울 선생은 “세월을 아끼라”고 했습니다. 시간은 저절로 없어집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절약하여 잘 사용해야 하는데 이 시간 그 방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부지런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구약성서 잠언6장6절에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고 했고, 사도바울은 로마서12장11절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시간을 아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지런해야 성경도 열심히 읽고 봉사도 열심히 하며, 기도도 잘하고 사업도 잘됩니다.

데살로니가후서3장10절에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사도바울은 경고를 합니다. 어떤 농부가 가난이 한이 되어 땅을 늘리기 위해 밤낮없이 밭에 나가 일을 합니다. 문제는 갈수록 땅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 재미에 빠져 문만 뜨면 밭으로 나가 해가 저물어야 들어옵니다.

그러다 살만해지니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아들딸 오남매를 두었는데 喪家 집에서 유산문제로 자식끼리 싸우다 원수가 되고 돈을 쓰는 법을 배우지 못한 자식들 모두 얼마 못가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일하대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고, 잘 때 자고, 깰 때 깨는 규칙적인 생활이 매우 중요합니다.

집을 떠나 학교에 간 아이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Time Management를 못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 결과 할 일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쪼개서 규모 있게 규칙적은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한국 극장가에 화제가 되고 있는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칸 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아 큰 화제를 불러왔지요. 저는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내용은 반 지하에 사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식구 전원이 백수로 한국사회 짙은 어둠을 파헤친 영화라고 합니다.

주목해야 봐야 할 내용이 식구 가운데 처음으로 직업을 갖는 사람이 명문대학 졸업장을 위조해서 부자 집 가정교사가 된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다른 사회적 contents를 만나게 됩니다. 기성세대의 사회적 contents는 빈곤묘사 문학으로는 세계 재일이라는 흥부전에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차이는 서류를 위조해서라도 돈을 벌겠다는 도덕적 윤리관과 죽으면 죽었지 술장사만은 안 된다고 울부짖은 도덕적 윤리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의 평가가 다 다릅니다. ‘근즉 필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지런하면 꼭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세월을 아끼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약속 시간을 가장 안 지키는 사람이 불행하게도 목사라고 합니다. 미리 와서 예배를 준비해야 하는데 꼭 5분씩 늦게 옵니다. 바쁜 일이 있어서, 차 막혀서, 이런저런 핑계가 많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시간을 엄수해야 합니다.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악입니다.

‘버스 지나간 다음에 손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번 흘러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옛말에 ‘천시’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의 때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늘이 준 기회라는 뜻입니다. 때를 놓치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천하만사가 다 천시가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때를 소중히 해야 합니다.

희랍 신화에 Orpheus와 Eurydice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Orpheus는 몹시 사랑하던 Eurydice의 갑작스런 죽음을 애통해 하던 나머지, 지하의 나라에 가서 지하 왕국의 Pluto 왕을 만나 간청합니다. 애인 Eurydice를 세상에 다시 돌려보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플루토 왕은 오르페우스의 뼈에 사무치는 간청을 들어주기로 하는 대신 다음과 같은 조건을 걸었습니다.

“너의 애인 Eurydice를 지상으로 돌려보내 주겠다. 그런데 이곳을 출발하여 흑암 속을 전진해 가는 동안 지상의 광명을 볼 때까지 결코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 내가 약속하지만 Eurydice는 언제나 너의 뒤를 달려가고 있으니 그를 믿고 뒤를 돌아보지 마라.” Orpheus는 희망에 넘쳐 기쁜 마음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처음 얼마 동안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의 마음에는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Eurydice가 정말 자기를 따라오고 있을까? Pluto 왕이 거짓말을 했거나 자기를 놀리는 것이 아닐까? 한 번 죽은 사람이 정말 다시 살아나서 자기를 따라 지상으로 환원될 수 있을까?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자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점점 더 크게 확대됩니다. 그래서 결국 지상에 도착하기 직전에 그는 뒤를 돌아보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그는 자기 뒤를 열심히 따라오고 있는 Eurydice를 발견하였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Pluto의 말대로 Eurydice는 다시 지하의 나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간을 맡길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인데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시간을 우리의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때때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자신의 시간을 물론 남의 시간까지도 잘 사용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3. 시간의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세계교회역사에 한국 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언어가 있습니다. ‘날 십일조’라는 말입니다. 가난했던 시절 하나님께 드릴 물질이 없어 일주일 하루를 교회 땅에 농사를 지어 봉사하는 것으로 드린 헌금을 ‘날 십일조’라고 부릅니다. 물질도 십일조를 드려야 하지만 시간도 일주일 하루는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칠일 중에 하루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 주님의 전에 나와 예배드리고 전도와 봉사를 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살라는 말씀입니다.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 생각하는데 그 중에 ‘현재는, 바로 지금 이 시간’이 제일 중요합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니 우리 것이 아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우리가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젊은이가 자기 목사님께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 옆에 이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만일 하나님이 저를 번영케 해 주신다면 제가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 중에서 십분의 일을 드리겠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서 그 목사님은 그 젊은이 옆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이 그를 번영케 해 주시고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 하였습니다.

그 젊은이가 받는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릴 것이라고 하나님께 약속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 젊은이를 축복하셨고 그는 번영하였습니다. 얼마 후 그 젊은이가 돌아와서는 “목사님, 저와 함께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제가 더 이상 서약에 매이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그것이 너무 많아서 드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목사님은 “좋다. 네가 십분의 일을 드릴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이 너를 번영케 하셨다고 하나님께 기도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주님께서는 젊은이가 한 서약을 취소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십일조를 시작한 날의 수입으로 되돌리셔서 십일조를 계속하고 그 서약을 지킬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자 그 젊은이는 기도를 중단시켰습니다.

“아니오. 그렇게 기도하지 마십시오. 주님께 내가 시작했을 때로 나를 돌아가게 해 달라고 구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일을 계속하겠으니 나에게 계속해서 축복해 달라고 하나님께 말씀해 주십시오.” 존 록펠러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만일 내가 가난한 소년이었을 때에 내가 십일조 드리는 일을 배우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 수백만 달러의 십일조를 결코 할 수 없을 것이다.”고

본문에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는 말씀은 ‘기회를 사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과거를 돌아보거나 미래의 꿈만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최대한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아무도 시간을 멈출 수 없고 훗날을 위해 보관해둘 수도 없으며 자기가 원하는 만큼 늘릴 수도 없습니다.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이다. 독수리 한 마리가 나이아가라 폭포 쪽으로 떠내려가는 얼음덩이 위에 앉아 죽은 물고기를 건져먹고 있었습니다. 얼음덩이가 폭포에 가까워 거의 떨어지려 할 때 독수리는 훌쩍 날려고 했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어느새 발이 얼음에 얼어붙은 것이지요.

결국 소리를 지르며 폭포 아래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너무 늦은 것입니다. ‘범사에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으로 임하는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기회가 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섬겨야 합니다.

젊음과 정열과 총명이 있고 건강이 있을 때에 주님 섬기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기회가 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기회보고 있다가는 한마디 말도 못하고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시간을 바로 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주신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위한 선한 일과 헌신을 뒤로 미루지 말고 시간이 돈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 세월을 아낌으로 지혜롭게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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