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예물

By 담임목사 on December 24, 2017

본문: 마태복음2장1-11절

제목: 세 가지 예물

Marry Christmas! 성탄절이라는 말보다는 더 익숙한 말입니다. 이네 童心의 세계로 나래를 펴고 잠시 추억 속으로 여행을 떠나봅니다. ‘징글벨, 징글벨’ 코 노래를 부르며 저녁마다 예배당에 모여 합창이며 성극 연습 끝나고 먹었던 꽈배기 맛이 지금도 생각하면 입가에 맴돌립니다.

그 입맛이 그리워서인지 이 때쯤이면 어디론가 돌아가야 한다는 설래 임에 서글프고 외로워 가슴앓이가 멈춰지지 않는 것이 타향살이 나그네의 恨이 아닌 가 싶습니다. 눈 내리는 창가를 바라보니 이 시름이 더해만 갑니다. 그러나 금년에도 우리 아기 예수님은 내 마음이 크나큰 위로와 평안을 선물로 줍니다.

이천년 전 오늘 동방박사 세 사람이 별을 보고 아기 예수를 찾아가 엎드려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보배 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는데, 그것은 만왕의 왕이요, 완전한 제사장이요, 만민의 구세주가 되실 것을 예언함과 동시에 오늘 우리가 드려야할 예물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기독교에서는 ‘믿음, 행함, 헌신’을 보배라고 부릅니다. 그 보배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황금처럼 변치 않는 믿음입니다.

아기 예수에게 동방박사가 드린 예물 중에 황금은 東西古今을 통해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가장 귀하게 쓰이면서 변하지 않은 금속 중에 하나입니다. 人類는 이것을 차지하기 위해 때로는 전쟁을 했고, 외계인들이 우주선을 타고 금을 얻기 위해 지구에 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처럼 황금이 귀한 것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황금과 같이 변하지 않는 믿음이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거둠과 같이 진리의 열매를 위하여 스스로 죽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기 예수는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십자가를 지고 죽었습니다.

人類는 황금을 안전의 도구로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변하지 않은 특성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황금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각종 범죄, 사기, 살인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황금이 인류를 지키지도 못했고 더구나 구원받을 수 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Helen Keller‘는 ’안전이란 미신이다. 세상에 안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긴 안목으로 보면 무조건 위험을 피하려는 것은 해결 방법이 되지 못한다. 모험을 택할 것인가, 허무를 택할 것인가? 그대의 길은 이 둘 중 하나밖에 없다. 감사함으로 모험하라. 그것이 믿음의 길이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믿을 건 예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오래 전에 미국 LA에 지진이 일어났을 때였습니다. 노인Apt에 사는 노인들이 모두 겁에 질려 이리 뛰고 저리 피하고 야단법석이었는데 나이 많은 두 권사님이 자기 집에 조용히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지진이 진정된 후에 옆집 사는 나이든 집사님이 무엇인가 가슴에 품고 집안 앉아 있는 권사님을 찾아가서 묻습니다.

“아니, 권사님 어떻게 그런 소동 속에서도 집에 걱정스런 얼굴로 앉아 계실 수가 있습니까?” 권사님 “아니 내가 우리 아이들 돌 반지부터 한 평생 모은 금덩이가 침대 밑에 있는데 그것을 두고 어떻게 나가” 그러면서 내가 죽으면 죽었지 이걸 놓고 어딜 가, 자기 목숨보다 금덩이가 더 소중하다는 말입니다.

이번에는 아주 편안하게 집안에 앉아 계신 권사님에게 묻습니다. “아니, 권사님 어떻게 그런 소동 속에서도 집에 기쁜 얼굴로 앉아 계실 수가 있습니까? 권사님 “나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그토록 흔드시는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생각과 그러는 가운데서도 나를 그의 손안에 안전하게 붙들어 주신다는 믿습니다.“

그리고 권사님이 “설령 지금 내가 죽어도 주님께서 함께해 주실 줄 믿기 때문에 기쁨에 잠겨 무서워 할 겨를이 없었다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어느 편에 속한 사람입니까? 황금 같은 믿음으로 의롭고 경건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성탄을 맞이하여 복되고 하늘 위로와 평화가 임하는 Christmas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유향처럼 향기로운 행위를 드려야 합니다.

동방박사가 드린 예물 가운데 유향은 아라비아 지방의 관목에서 채취한 향기로운 송진으로 성전 제사나 헌물로 자주 사용하는 것입니다. 유향을 드린 것은 아기예수를 제사장적 권위와 신성을 인정하는 예물이었습니다. 야고보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약2:14)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일학교 선생님이 어린이들에게 성도 안에 있는 옛 성품과 새 성품을 가르치면서 설명합니다.

“옛 성품은 첫 아담에게 물려받은 것이고 새 성품은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에게서 물려받은 것이거든”이라고 설명을 듣고 있던 한 어린이가 샛별 같은 눈으로 보고 있다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우리 안에 두 아담이 살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지, 우리 안에 두 아담이 살고 있어. 이번에는 선생님이 묻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를 어떻게 해서 짓게 되는 것일까?”

한 꼬마가 명답을 했습니다. “선생님 그거는요, 유혹이 와서 문을 두드릴 때 첫 아담이 마중 나가면 죄를 지어요.” “그러면 어떻게 승리하니?” “네 유혹이 올 때 마지막 아담이 나가면 승리해요.” 성도여러분! 유혹이 자신의 문을 두드릴 때 새로운 성품이 반응을 보입니까?

이것이 우리가 사는 동안 계속적인 삶의 선택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의심하지 않지만 너무 연약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거룩하신 성령님께 자신의 삶을 드리며 사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성령님의 지배 아래 우리가 살아야 할 의로운 행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최초로 하늘을 날았던 라이트는 어떤 만찬에 초청 받아 갔다가 친구로부터 핀잔을 들었습니다. 그 만찬에서 처음으로 비행한 사람은 라이트 형제가 아니라 랭글리 교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라이트가 이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비난합니다.

“자네는 입이 너무 무거워 말이 없는 것이 탈이야. 자네는 자신의 권리를 충분히 주장하지 않고 있어. 자네 자신을 더 많이 선전해야 할 걸세. 이 사람아, 어서 말을 해봐!” 이때 라이트는 친구의 독촉에 못 이겨 조용하게 한마디 합니다. “여보게, 새들 가운데서 가장 말은 잘하지만 제일 날지 못하는 것은 앵무새라네.”

청산유수처럼 말을 잘 하는데 행함이 없는 성도를 앵무새 같은 성도라고 하지요. 동방박사가 아기예수에게 드린 유향은 그 냄새가 2km 밖까지 풍기고 그 냄새가 백일동안 지속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아름다움 행실로 그 향기를 세상 끝까지 풍기고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라(마5:16) 말씀처럼 우리의 행위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3. 몰약처럼 썩지 않는 회생을 드려야 합니다.

몰약은 Cistus라고 하는 나무에서 나오는 진입니다. 주로 시체를 염하거나 방부제로 사용되는 아주 값진 기름이지요. 예수님의 생애는 몰약으로 시작하여 몰약으로 끝났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탄생하셨을 때 몰약을 예물로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마지막으로 받은 선물도 바로 몰약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자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을 100근쯤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시체에 발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과 죽음을 모두 인류구원을 위하여 다 내어 놓으셨습니다. 희생은 이웃을 위하여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잘되고 나도 잘되어야 합니다.

제가 어릴 때 매일 저녁식사 전에 성경을 한 구절씩 암송해야 했습니다. 위로 누나가 둘, 아래로 남동생 둘입니다. 저녁에는 가큼 김을 기름을 바르지 않고 구워 한 사람 앞에 두 장씩 나누어 줍니다. 다른 형제들은 김부터 먹어치우는데 바로 밑에 동생은 아껴두고 마지막에 김을 먹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막내누나가 이리저리 눈치를 보다가 동생 김을 재빠르게 낮아 채 먹어치웁니다. 그런면 동생이 악을, 악을 쓰며 울면 아수라장이 됩니다. 이때 아버지께서 둘째누나에게 묻습니다. “오늘 저녁 성경구절이 어디지?” 자동반사로 “요한일서 4장11절.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였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줄줄 암송하듯 대답합니다.

이것은 말씀을 알고 있지만 그대로 살지 못한다는 작은 실례입니다. 매일 새벽 예배드리고 또 저녁 예배드리고 성경구절 암송을 해도 방에 들어가 또 싸웁니다. 그래도 아무 의미 없는 것 같은 일상은 계속되었습니다. 그 결과를 가큼 한국을 방문할 때 확인합니다. 그래서 남들이 다 부러워합니다.

기독교 서적과 음반이 쏟아져 나오고 방송설교가 넘쳐흐르고 있습니다만 범죄, 자살, 마약중독 등이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발전하는 것만큼 죄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해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우리 삶의 현장인 가정, 학교, 직장, 적용하고 실천할 때 가능해 질 것입니다.

일찍이 아모스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문제는 말씀을 듣지 못함이 아니라 그 말씀을 실천하지 못하고. 그대로 살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는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들은 앞으로 황금과 같은 믿음과 유향과 같은 행함으로 아름답고 귀한 인생을 살뿐 아니라 몰약과 같은 희생의 정신으로 가치 있게 살아가야 할 것인데 이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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